그의 꿈은 대서양을 넘지 못했다
우리 집 화장대에는 200달러가 있다. 긴 봉투가 벽에 기대 소리 없이 웅크리고 있다. 그것은 이모를 위한 것이다. 그를 위해 직접 은행을 찾아 환전해둔 것이다. 이제 그 돈의 주인은 없다. 그가 더 이상 그 돈을 쓸 수 없게 됐기 때문이다. 길을 떠나는 그에게 그 돈을 얼마간의 비상금으로 드릴 요량이었다. 알록달록한 해바라기 탈을 쓴 곰돌이가 반복적으로 그려진 봉투에 담은 것도 그 때문이었다. 크고 낯선 나라로 향하는 길에 부적처럼 건네고 싶었다. 그는 들떠 있었다. 65년 만에 처음으로 이국땅을 밟아보게 됐다고. 말로만 듣던 큰 대륙의 공기를 맡아볼 수 있게 됐다고. 그곳에 가는 것만으로도 무언가 엄청난 일이 일어날 것처럼 말했다. 아메리칸 드림이었다.
일러스트 김상민 기자
이모가 다니는 교회 신도의 물 건너 친척이 간병인을 찾은 게 화근이었다. 집에 모시는 노인이 나이가 들고 치매에 걸려 옆에서 돌봐줄 사람이 필요했단다. 코로나19로 의료인력이 턱없이 부족해졌다. 말이 통하는 사람을 찾기란 더욱 쉽지 않았다. 종일 언제 일어나 무슨 짓을 할지 모르는 치매노인을 돌보고 집안일도 돕는 간병인 겸 가정부 조건으로 숙식을 제공받기로 한 모양이었다. 그렇게, 서울 은평구에 사는 이모가 미국 플로리다까지 대양을 넘게 됐다. 이미 늙은 사람이 조금 더 늙은 사람을 돌보려고 떠나는 길이었다. 두둑한 보수는 고된 일이라는 의미였다. 영어도 못 하고 차도 없는 그가 그 동네를 벗어나는 일은 일어나지 않으리라 생각했다. 관광은커녕 집을 나오는 일 자체가 없을지도 모른다. 그저 서울의 한 방에서, 플로리다로의 한 방으로 길고 긴 이동을 뜻하는 건지도 모른다. 그도 그걸 알고 있는 듯했다. “아마 일하느라 밖에 나와볼 틈 같은 건 없겠지.” 그러다 언제 그랬냐는 듯 신난 목소리로 말했다. “하지만 그래도 좋아. 공기는 역시 미국 공기니까.”
먼 길 떠나는 그
책장에는 그가 부탁한 비자 서류며 비행기표 예매 내역서가 깨끗한 클리어 파일 안에 정갈하게 꽂혀 있다. 컴퓨터에 서툰 그를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일들이었다. 역 앞에 있는 프린터 가게에서 그것을 흑백으로 뽑을지 컬러로 뽑을지를 두고 한동안 고민했다. 컬러가 흑백보다 다섯 배나 비쌌다. 곧이어 총천연색으로 인쇄된 빳빳하고 따듯한 종이를 품에 안은 채 집으로 돌아왔다. 그 모든 과정이 그를 향한 기도 같았다.
이모는 석 달째 집 밖을 나오지 않은 이유를 코로나19 때문이라고 일축했다. 언젠가부터 출근도 하지 않았다. 하지 않았는지 하지 못했는지는 알 수 없었다. 다시 공장을 다닌다고 했고 3일쯤 뒤엔 공장을 옮겼다고 했다. 공장이 너무 멀어 새벽부터 세 번씩 버스를 갈아타며 서울 밖으로 긴 이동을 한다고 했다. 다시 공장을 옮겼고, 그러면 그곳은 더 먼 곳에 있었다. 기상 시간이 점점 빨라졌다. 집에 돌아올 때쯤엔 사방이 어두워져 있었다. 세 번의 버스를 기다리는 동안 그는 무엇을 했을까. 갈아타고, 갈아타고, 갈아탄 뒤에 도착했으리라. 평소처럼 그는 아주 부지런히 움직였다. 손이 빠르지만 성격이 급한 그는 실수를 반복했을 것이고, 어렵고 복잡한 일이 쉽게 익숙해지지 않았을 것이다. 밤마다 손가락 마디마디가 팅팅 부르터 저렸음에 틀림없다. 주말이면 병원에 다니느라 하루가 우습게 가버렸을 것이고. 그마저 하지 않는다면 이튿날 손가락이 움직이지 않을 것이다. 아무도 없는 집에 홀로 불을 밝혔을 테고, 밥은 자주 싱크대에 서서 해결했을 게 뻔하다. 시작과 끝을 알 수 없이 켜져 있었을 티브이, 그것이 그 집의 유일한 소음이었으리라. 다시 아침이 되고, 갈아타고, 낯설고 서투른 일들, 실수, 티브이 소리, 통증, 새로운 공장 그리고 다시 밤이 온다. 전화로 안부를 물을 때마다 깜빡이는 전구처럼 그의 일자리는 여기서 저기로, 저기서 거기로 바뀌어 있었다. 별로 새로운 일이 아니게 됐다. 그는 전전하고 있었다. 그러다, 멈춰섰다.
그렇게 화장대에는 200달러가 든 봉투가 있다. 비자와 비행기표 예매 서류는 그 자리에 가만히 웅크린 채로 효력을 잃었다. 그의 꿈은 대서양을 넘지 못했다. 낯선 방으로의 긴 이동은 우연한 사건으로 그만 너무도 쉽게 좌절되고 말았다. 봉투와 서류 몇개만 남긴 채 없던 일처럼 사라졌다. 소풍을 가듯 모든 것을 남겨둔 채 그 멀고 험한 길을 떠나려 했던 그 마음을 나는 결코 헤아릴 수 없다. 그 희망찬 얼굴을 다 더듬을 수도 없다. 그가 그곳에서 뭘 얻으려 했던 건지 영영 알 수 없다. 어쩌면 공기일는지도 모른다.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어떤 말을 건네야 할지 몰랐다. 그는 말했다. “그래, 어차피 거기 가서도 병원도 제대로 못 다닐 텐데.” 전화를 끊은 그의 집은 다시 고요했다. 그때쯤일까, 피로가 폭풍처럼 몰려왔다. 졸음이 파도처럼 덮쳐왔다. 더는 아주 조금도 눈을 뜨고 있을 수 없을 것 같았다. 그는 홀린 듯이 침대로 향했다. 그렇게 그가 집 밖을 나오지 않은 지 하루가 됐다. 이틀이 됐고 사흘, 열흘, 두 달이 됐다. 아무도 그의 집을 두드리지 않았다. 그는 집 밖으로 나서지 않았다. 아무도 그를 만지지 않았다.
깊이 잠든 그
그는 웅크리고 있었다. 가만히 누워 길고 느린 꿈을 꾸고 있었다. 나에게 그것만큼 두려운 일은 없었다. 가난한 자가 움직이지 않는 것만큼 무서운 일은 없다. 가난한 사람은 끊임없이 움직여야 한다. 그래야만 한다. 가난은 움직이지 않는 자를 보살피지 않기 때문이다. 끊임없이 움직여 자신을 책임지고, 살기 위해 기꺼이 지금을 숫자로 환산해야 한다. 그런 사람에게 몸이 아프거나 마음이 지치거나 우울할 겨를은 없다. 아무리 합당한 이유로 누워 있다고 해도 다음 주의 양식이 알아서 찾아오지는 않기 때문이다. ‘쉬고 싶을 때 쉴 수도 있는 노동력’을 반기는 시장은 없다. 누구나 아프고 지치고 우울할 수 있다. 모르는 척한다고 사라지지 않는다. 훗날 더 크고 무시무시한 것이 되어 돌아올 뿐이다. 몹시 단순한 해법이 있긴 하다. 쉬는 것이다. 한껏 웅크리고 있는 것이다. 그냥 아무것도 하지 않음으로써 비로소 벗어날 수 있다. 하지만 나는 그에게 쉬라고 말할 수 없다. 쉬지 말라고도 할 수 없다. 살아 있기 위해 돈을 벌어야 한다고, 살기 위해 쉬어야 한다고 말할 수는 없다. 그저 시간이 멈췄으면 했다. 새로 태어날 수 있을 정도로 깊이 잠든 그가, 긴 단꿈에서 깨어나 나른한 기지개를 켤 때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