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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스우드와 노루

입력 2022.03.28 11:38

수정 2022.03.28 17: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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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익상 만화평론가

식물의 종말, 실현돼선 안 될 미래

산불. 대선과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같은 커다란 뉴스에 골몰해 있던 기간에도 ‘산불 뉴스’는 계속 터져나왔다. 경남 합천과 경북 고령에서, 강원 강릉에서, 또 경북 울진에서 연이어 산불이 일었다. 그중 마지막이자 최대인 울진 산불은 3월 13일에야 진화됐다. 열흘 동안 약 2만헥타르의 숲이 피해를 입었다. 타버린 나무가 몇그루인지 셈조차 어렵다. 너무 큰 피해에 망연자실해 있다 문득 생각했다. 죽어간 이 나무들은 어디로 갔을까? 나무에게도 저승이나 사후세계가 있는 걸까?

웹툰  한 장면 / 네이버 웹툰

웹툰 <키스우드> 한 장면 / 네이버 웹툰

황당한 질문이지만 유래나 근거가 없지는 않다. 아마도 <키스우드>일 것이다. <키스우드>는 포스트 아포칼립스 세계를 유려한 작화로 담아낸 판타지다. 독특하게도 <키스우드>의 아포칼립스는 인간의 기준에서 도래한 종말이 아니다. 식물이 사라져가는 세계, 식물에 닥친 종말에 관한 이야기다.

꽃과 나무가 사라진 회색의 세계. 당연히 사라지는 직업이 있다. 정원사다. 주인공 설씨는 정원사였으나 이제는 은퇴해 그나마 남은 식물을 자택에서 가꾸며 살아간다. 어떻게 돼먹은 세계인지 알 수 없으나, 식물은 이 세계에서 존재가치가 없는 정도가 아니라 아예 혐오의 대상이다. 이웃들은 설씨의 식물을 보며 핀잔을 늘어놓기 일쑤다. 벌레가 꼬인다거나, 흉하다거나, 옻나무 때문에 피해를 봤다거나. 인류 최후의 산림 보호구역인 ‘공존’ 외의 모든 곳에서 식물은 이미 사라졌다. 설씨의 집이 거의 마지막이다. 그런 설씨의 집에 의문의 화재가 발생하고, 설씨는 큰 부상을 입어 혼수상태에 빠진다.

나무들의 고향이라 불리는 곳, ‘언덕’. 혼수상태의 설씨가 의식 너머에서 깨어나 맞닥뜨린 세계다. 엄청난 규모의 숲이 펼쳐져 있고, 이미 멸종했다고 알려진 고대 식물들마저 눈에 띈다. 정원사였고 아마도 지구상에 몇 남지 않은 마지막 식물 애호가인 설씨는 꿈만 같다. 하지만 ‘언덕’은 녹록지 않다. 그 숲은 인간 대다수에게 적의를 품고 있다. 나무를, 숲을 해한 인간을 적대하는 세계다. 나무와 식물을 아끼는 설씨에게만은 예외다. 어쩌면 숲은 인간을 더 이상 적대하고 싶지 않아 마지막 기대를 품고 설씨를 초대했을지도 모른다.

요즘 작품들에 비하면 무척 짧은 34화 안에서 깊이 있는 이야기와 숨 막힐 정도로 아름다운 그림을 보여준 안성호 작가는 이후 ‘공존’이 등장하는 새 작품을 발표했다. 판타지를 빼고 더 SF에 가깝게 구현한 단편 <노루>(카카오웹툰·2012)다. 총 18화 속에 <키스우드>의 회색 도시가 삭막하게 이어진 미래, 사막만이 남은 세계를 그렸다. ‘기후위기’를 주제로 주한 영국문화원과 주한 영국대사관의 지원하에 제작한 작품이다.

10년 이전에 발표한 <키스우드>와 <노루> 모두 숲이 점점 더 사라지고 기후위기가 더 가까이 다가온 지금 읽어야 할 작품들이다. 숲이 인간을 적대하는 이야기, ‘실현돼선 안 될 비극적인 미래’를 담은 이야기 속에서 현재를 다시 보는 눈을 얻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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