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경남 사천 문학잡지 ‘마루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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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경남 사천 문학잡지 ‘마루문학’

입력 2022.02.25 15:00

수정 2022.03.02 17: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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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정수 시인

삼천포로 빠지다? 아니 사천에 빠지다

오늘은 삼천포로 빠져볼까 합니다. 왜 하필 삼천포냐고요. 사실은 삼천포, 아니 경남 사천에서 ‘마루문학’이라는 잡지 한권이 왔습니다. 봉투가 거의 뜯어졌는데도 무사히 배달된 것이 신기할 정도였습니다. 내용물이 삼천포로 빠질 뻔했는데도 제대로 찾아왔지요. 삼천포는 1995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당시 사천군과 통합돼 사천시가 됐지요. 삼천포로 빠진다는 부정적인 의미가 지명을 바꾸는 데도 영향을 미치지 않았을까요. ‘마루문학’의 마루는 머리와 그 뿌리를 같이하는 우리말이라 합니다. ‘높다, 시작하다, 처음이다, 거룩하다’는 뜻과 삼천포의 옛이름인 말문리(末文里), 즉 ‘마르골’에서 유래했다고 합니다. 수도권을 비롯한 대도시, 거대 문학단체에서 발간하는 문학잡지 운영도 어려운데, 남해안 바닷가에서 만드는 잡지는 어떨까요. 사천에서 온 잡지는 어떤 색깔을 보여줄까요.

안채영 시인(왼쪽)과 ‘마루문학’ / 마루문학협회

안채영 시인(왼쪽)과 ‘마루문학’ / 마루문학협회

지역 문학 통해 전체를 보려는 작은 시도

‘마루문학’ 표지에서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41’이라는 숫자입니다. 그런데 그 옆을 보니 ‘since 1990’이라네요. 32년을 발간했는데 41호라니, 좀 이상합니다. 연간지라면 32호, 반연간지라면 64호, 계간지라면 128호가 되겠지요. 의문은 금방 풀렸습니다. 잡지 맨 뒤에 있는 ‘마루문학族을 모십니다’라는 안내글을 보면 “마루문학이 계간지로 창간된 후 어려움에 봉착하자 문화 예술에 관심을 가진 지역 여성들 주도로 마루문학 후원회를 결성”했다네요. 그러니까 시작은 계간으로 했다가 경제적 어려움으로 연간으로 발간한 것이지요. 중간에 부침도 있었을 겁니다. 꾸준히 이어온 것이 대견합니다. 마루문학회장을 맡고 있는 안채영 시인은 ‘발간사’에서 “지역 문학을 통해 나라 전체를 보고 외부의 시선으로 내부를 보려는 작은 시도”를 해보려 했다면서 이를 “작은 역설”이라 했습니다. ‘부분과 전체’라는 말이 떠오릅니다. 전체는 부분의 합으로, 부분을 정확히 알면 전체도 알 수 있다는 의미로 읽힙니다. 또한 부분과 전체는 상대적으로 규정되며 부분이면서 동시에 전체일 수 있습니다. 부분과 전체가 단절되지 않고 연관돼야 서로 발전할 수 있다는 것이겠지요. 그런 의도는 잡지 곳곳에서 감지됩니다. 우선 필자가 눈에 띕니다. ‘권두언’은 최문자 원로시인과 송창섭 전 삼천포여고 교장 겸 마루문학 회원이 썼습니다. 문학의 논쟁을 다룬 ‘시각’에서도 박명호 작가와 서지월 시인의 글과 회원인 신진균 옥종고 역사교사와 이승리 시인의 글을 수록했습니다. 문학잡지에서 빼놓을 수 없는 신작시도 회원인 이종만, 송창섭, 박종현, 이승리 시인과 민왕기, 윤선길, 우혁 시인으로 균형을 맞췄습니다. 특이한 것은 연변작가협회 소속 김상군 시인의 시 2편을 수록했다는 것입니다. ‘명태국’, ‘겨레의 꿈’ 같은 제목에서 알 수 있듯, 고향을 그리워하고 통일을 염원하는 내용입니다.

전문가·아마추어가 함께 만드는 잡지

경남 사천시 갈대샘길 30-6번지에 삼천포 뱃사람들의 쉼터 한일여인숙이 있습니다. 여인숙 벽면에는 ‘since 1971, 그리움이 머무는 그곳, 낭만여인숙 in 사천’이라 쓰여 있습니다. 이 여인숙을 소재로 최문자, 박우담, 박해람 시인이 시를 썼습니다. 최문자 시인은 “사천 낭만여인숙에서 하루 묵을 때/ 무음에서 나는 무쇠 냄새”(‘무음의 밤’)를 맡고, 박우담 시인은 “마룻바닥에 축축하게 덧댄 상처와 기호의 얼굴”(‘낭만 여인숙’)을 마주하고, 박해람 시인은 “밤늦어 끊어진 길들이 6호실”에 머물며 “투숙(投宿)하지 않은 인생”에 대해 철학적 질문을 던집니다. 사천의 삶과 정서가 배어 있는 공간을 외부 시인들이 맛깔나게 시로 쓴 돋보이는 기획입니다.

가족이 함께 시를 쓴 ‘파릇파릇-문학 싹이 파랗다, 벌써’ 코너도 눈길을 끕니다. 채춘자 회원(엄마)이 “7월 뙤약볕/ 여기저기 땀방울이 매달렸다/ 이 방망이로 시원하게 홈런 어때?”(‘조롱박’) 하고 묻자 막내딸 구가을(정동초 3학년)이 시합에서 “이겼을 땐/ 마치 강아지가 꼬리를 흔들 때처럼 기쁨// 졌을 땐/ 마치 천둥번개처럼 슬픔”(‘변덕쟁이’)이라고 화답합니다. 동생 구가람(정동초 6학년)이 여름마다 찾아오는 모기를 “몰래 찾아오는 불청객 같아/ 아! 그만 물어 간지러워”(‘모기’)라고 하자 형 구가온(사천중 2학년)은 “겨울은 항상 신나서 항상 웃지만/ (…) 눈물이 모여 눈을 이룬다// 어쩌면 겨울은 슬픈 계절일지도 몰라”(‘겨울’)라며 의젓하게 화답합니다.

손글씨와 그림을 곁들인 이우찬·이라희 쌍둥이 남매(삼성초 3학년)의 시는 파릇파릇합니다. 이우찬은 치킨을 좋아하나 봅니다. ‘내 사랑, 치킨’에서 “바삭바삭 치킨/ 어제 먹어도 맛있어// 겉바속촉 치킨/ 오늘 먹어도 맛있어// 후라이드, 양념/ 메뉴 안 가리고 다 맛있어// 내 사랑, 치킨/ 매일매일 먹고 싶다”고 합니다. 이라희는 탁구를 좋아하나 봅니다. 그림을 곁들인 ‘탁구’에서 “내가 이기면 아싸! 말한다”면서 “쇼트를 하면 배가 아프다”네요. 그 이유가 재미있습니다. “탁구채가 배를 꾹꾹 누르기 때문”이랍니다. 그래서 선생님이 “탁구 재밌지” 하고 물어보면 머뭇거리게 된다네요.

고성중 1학년들의 디카시도 빼놓을 수 없습니다. 디카시는 디지털카메라로 자연이나 사물에서 시적 형상을 포착해 찍은 영상과 함께 5행 이내의 문자로 표현한 시를 말합니다. 백종윤은 의자에 앉아 통로로 내놓은 다리 사진과 함께 “안진의 다리는 조곤조곤 말하는 것 같다/ 반장의 다리는 잔소리처럼 보인다/ 김시형의 다리는 시처럼 짧아 보인다// 다리는 오늘도 시끌시끌하다”(‘다리’)라고 했습니다. 반 친구들의 다리를 통해 교실의 풍경을 잘 표현했습니다.

지역 문학은 지역에 머물러서는 안 됩니다. 오히려 중심과 주변의 경계를 해체해 경계가 없는 탈중심의 세계를 지향해야 합니다. 한국적인 것이 세계적인 것처럼 문학도 지역성이 살아 있어야 합니다. 지역의 다양성을 담아내고, 인문학으로서의 문학 정체성을 회복하고, 문학을 통해 지역민과 소통해야 합니다. 지역 잡지 ‘마루문학’을 주목한 이유입니다.

시인의 말

[김정수의 시톡](7)경남 사천 문학잡지 ‘마루문학’

안부
나호열 지음·밥북·1만2000원
내게 시는 내면에서
솟구쳐 오르는 안타까움의 고백이었을 뿐이지만,
이 말은 나름대로
생(生)을 통찰하려는
의지의 표현이기도 하였다.

[김정수의 시톡](7)경남 사천 문학잡지 ‘마루문학’

낯설게도 다정해라
장순금 지음·문예바다·8000원
길은 멀고 시작 없는
끝은 늘 돌아가고
싶어했다. 달빛이 혼자
기우는 늦은 저녁엔
당신이 온통 허공이었다.

[김정수의 시톡](7)경남 사천 문학잡지 ‘마루문학’

오늘은 눈이 내리는 저녁이야
김점미 지음·산지니·1만2000원
30여 년의 문을 닫고 아직은 낯선 문을 열려는 마음으로
두 번째 시집을 묶는다.
새로운 문고리가
손끝에 살짝 닿는다.

[김정수의 시톡](7)경남 사천 문학잡지 ‘마루문학’

버스 기사 S시인의 운행일지
서수찬 지음·시인동네·1만원
오랫동안 혼자 버텨 온
〈시금치 학교〉에게
짝을 드디어 안겨줘서
훨훨 날아갈 것 같다.
세상의 부모 마음이
다 같으리라.

[김정수의 시톡](7)경남 사천 문학잡지 ‘마루문학’

맨 뒤에 오는 사람
이문희 지음·한국문연·1만원
그 말들이 다른 말이
될 때까지 나는
좀더 다른 내가
되려 한다.
내가 어딘가에서
자꾸만 태어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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