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리-가난한 청춘들의 ‘자리’를 찾아서



주간경향

공유하기

  • 카카오톡

  • 페이스북

  • X

  • 이메일

보기 설정

글자 크기

  • 보통

  • 크게

  • 아주 크게

컬러 모드

  • 라이트

  • 다크

  • 베이지

  • 그린

컬러 모드

  • 라이트

  • 다크

  • 베이지

  • 그린

자리-가난한 청춘들의 ‘자리’를 찾아서

입력 2022.02.18 13:56

수정 2022.03.21 15:36

펼치기/접기
  • 황순욱 초영세 만화플랫폼 운영자

한국의 서사물에서 부동산은 빠지지 않는 소재다. 아니 부동산을 빼고는 이야기가 성립되지 않는다.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한국영화 <기생충>은 주거의 격차에 대한 우화이고, 가장 유명한 드라마 <오징어게임>은 대단지 아파트 개발을 본격적으로 시작하기 전의 골목 문화에서 영감을 얻었다. 지난해 개봉한 <싱크홀>은 대출이 부족해 아파트 대신 연립주택을 구매한 주인공의 집이 싱크홀로 사라지는 내용이었고, <소공녀>처럼 지난 몇 년간 주목받은 독립영화들의 상당수도 주거 불안이 이야기의 중심이었다.

김소희 작가의 만화 의 한 장면 / 만만한책방

김소희 작가의 만화 <자리>의 한 장면 / 만만한책방

김소희 작가의 만화 <자리> 역시 한국의 주거 문제에 관한 처절한 현실 에세이다. 작품은 그림 그리는 일을 업으로 삼고 싶은 20대의 송이와 순이가 제한된 보증금과 저렴한 월세를 조건으로 이곳저곳 작업실 겸 주거공간을 옮겨다니는 자전적 이야기다.

첫 작업실은 고층 아파트가 ‘내려다’보이는 동네, 목욕탕으로 쓰던 지하였다. 송이와 순이는 ‘인더스트리얼 콘셉트’라며 애써 자신을 속여 보았지만, 겨울을 견디지 못하고 나왔다. 두 번째 집은 4층이었지만 <빨강 머리 앤>이 떠오르는 지붕집이었다. 햇빛이 비치는 게 기분이 좋았다. 얼마 후 그곳은 아래층 사람들의 창고였으며 부동산에서 의도적으로 등기부 등본을 확인시켜주지 않고 싸게 임대한 것으로 밝혀졌다. 건물이 팔리며 그사이 생긴 고양이 식구와 함께 결국 쫓겨났다. 다음으로 구한 반지하 집은 불법개조로 화장실 창문이 다른 집과 연결돼 있었고 강도까지 들었다. 이후에는 변기와 싱크대가 한 공간에 있는 집에 살았다. 다음에 본 집은 거실 한가운데 자개농으로 간이화장실을 만들어둔 집이었다. 기겁하며 도망쳤다. 겨우 구한 3층집은 다른 입주자와의 관계로 스트레스를 극심하게 받았다.

집을 구하러 발품을 팔아본 이들은 알 것이다. 내가 가진 예산으로 내가 원하는 집을 구할 수 없음을. 이렇게 건물도 많고 아파트도 높은데 내가 들어가 누울 곳은 없음을. 지금도 많은 사람이 최소한의 존엄도 지키기 힘든 곳에서 살고 있다. 서울에서는 한명이 누우면 가득 차는, 창문도 없고 방음이 되지 않는 고시원의 월세가 흔히 말하는 ‘종부세 폭탄’보다 비싸다.

코로나19 유행 이후 한국의 부동산 문제는 더욱 잔인하게 다가왔다. 밖으로 나갈 수가 없게 됐을 때, 겨우 눈만 붙일 수 있을 정도의 공간에 있는 이들의 몸과 마음은 얼마나 상처를 입을까. 추위와 더위를 피해 가던 노인회관을 폐쇄하면 혼자 사는 노인들은 어떻게 견뎌야 할까. 비싼 임대료를 내고 얻은 사업장에 영업을 제한하면 그 손실은 누가 떠안을까.

<자리>로 돌아와서, 결국 순이와 송이는 차례로 류머티즘에 걸린다. 심할 때면 붓을 쥐기가 힘들 정도로 중증이다. 인과관계를 밝히진 않지만 아마도 열악한 환경에 오랫동안 노출됐던 결과가 아닐까 싶다. 싸게 얻을 수 있는 집은 매우 춥고, 매우 덥고, 매우 시끄럽고, 매우 위험하다. 가난의 대가라고 하기에 대한민국의 사계절은 너무 잔혹하고, 같은 세상의 사람들은 무심하다.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