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김명기 시인의 세 번째 시집 <돌아갈 곳 없는 사람처럼 서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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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김명기 시인의 세 번째 시집 <돌아갈 곳 없는 사람처럼 서 있었다>

입력 2022.01.14 15:04

수정 2022.01.17 16: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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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정수 시인

“산다는 건 그냥 어디론가 움직이는 일”

한번 오라 하는데도 가지 못한 곳이 있습니다. 그런 곳은 환한 낮이 아닌 어둑어둑 땅거미가 질 무렵 홀로 터덜터덜 찾아가야 합니다. 시인은 미리 통기라도 받은 듯, 처마 끝에 불을 밝힌 채 마루에 앉아 있겠지요. 낯선 이가 나타나도 짖을 줄 모르는 강아지가 꼬리를 흔들며 반기고, 시인의 어머니는 급히 술상을 봐 불청객을 맞이하겠지요. 그런 곳은 겉으로 드러내지 말고 마음 깊이 간직해야 마땅하지만, 새해 들어 시집을 한권 받고 보니 문득 그곳에 가고 싶은 마음이 간절해집니다.

김명기 시인(왼쪽)과 김명기 시인의 세 번째 시집  / 걷는사람

김명기 시인(왼쪽)과 김명기 시인의 세 번째 시집 <돌아갈 곳 없는 사람처럼 서 있었다> / 걷는사람

시인은 무엇으로 먹고사는가

경북 울진에 사는 김명기 시인(1969~ )이 세 번째 시집 <돌아갈 곳 없는 사람처럼 서 있었다>를 냈습니다. 시인은 시를 쓰고, 시집을 묶는 동안 “중장비 기사에서 유기동물 구조사로 밥벌이가 바뀌었다”고 했습니다. 시만 써서 먹고살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겠지만 그럴 수 없는 게 현실이지요. 그동안 시인은 여러 직업을 전전했는데, 그중 최악은 도축장이었다고 합니다. 거기서 시인이 한 일은 막 도축돼 컨베이어 벨트를 타고 올라온 지육을 거대한 냉장창고에 정리하는 일이었답니다. 지육(枝肉)이란 도축 후 머리와 내장, 족을 제거하고 각을 뜨지 않은 고기를 말합니다. 뒤집어쓴 우의 위로 핏물이 떨어지고, 그 지독하고 역겨운 냄새 때문에 후각을 상실했다고 합니다. 비염과 천식은 군식구쯤 되겠지요. 그만두고 싶어도 돌아갈 곳이 없어 막막했다고 합니다.

“볼 때마다 통박을 주던 아버지마저 선산의 산감이 되고서야”(이하 ‘큰사람’) 시인은 고향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장자로 태어난 시인은 집안에서, 아니 마을에서 유일하게 대학에 갔지만 아버지의 기대엔 미치지 못했습니다. 할머니는 손자가 큰사람이 될 것이라고 만나는 사람마다 자랑을 했답니다. 시인은 “큰사람이 되기 위해 객지와 바다 위를 무시로 떠돌았지만 서른이 지나 마흔 넘도록 일에 쫓겨 다니기 일쑤”였다고 하네요. 오십이 넘어 거울 앞에 선 시인은 키 182㎝, 몸무게 100㎏이 넘는 ‘큰사람’을 발견하곤 장탄식을 내뱉었습니다.

고향에 돌아온 지 10여년 동안 시인은 낮엔 구휼미 배달하는 일과 중장비 기사, 유기동물 구조사로 밥을 벌고, 밤엔 시를 쓴 결과 첫 시집 <북평 장날 만난 체 게바라> 이후 2권의 시집을 냈습니다. 두 번째 시집 추천사를 쓴 어머니는 “시를 쓰는 네가 자랑스럽다”며 “길고 어두운 시간을 혼자 보내며 흐트러지지 않은 건 다 시 덕분”이라고 했습니다. 앞집 할매가 “동네 고예이(고양이) 다 거다 멕이고/ 집 나온 개도 거다 멕이고/ 있는 땅도 무단이 놀리고/ 그카마 밥에다 자꾸 꽃만 심는/ 느 어마이도 시인”(‘시인’)이라 했지요. 시적 감수성은 어머니의 피를 그대로 물려받았습니다.

생명을 살리는 일이 죽이는 일이라니

시인의 삶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원양어선 3년, 도축장 1년이 생명을 거두는 일이라면 구휼미 배달 일과 유기동물 구조사는 생명을 살리는 일입니다. 이 모든 게 우연은 아니겠지요. 시집 2부 13편은 유기동물 구조에 관한 시입니다. 삶이 그대로 시가 된 것이지요. 유기동물 보호소에 버려진 개 한마리를 데려오면 “칠십 마리의 개가 일제히 짖”(이하 ‘유기동물 보호소’)는 것은 “슬픔이 슬픔을 알아”주기 때문이라는군요. “슬픔은 다 같이 슬퍼야 견딜 수 있다”고 합니다. 유기동물 구조도 쉬운 일은 아닙니다. “살리겠다고 내민 손을/ 해치는 줄 알고 물어”(‘손의 이력서’)버리기 일쑤라네요. 보호소에 데려온 개는 먹지도 않고 “벽에 머리를 찧으며 끊임없이”(‘악을 쓰며 짖는 개에게’) 짖어댑니다. 그러다가 결국 체념하고 친구 옆에 눕습니다.

“수녀원 뒷산 공터에서 만난 파티마”(‘공터에서 샌프란시스코까지’), “호젓한 골짜기 초입에/ 버려졌던 검은 개 두 녀석”(‘검은 개’), “산속에 버려진 채 거머리투성이가 된 개”(‘리기다소나무 아래에서’) 등 지난해 시인이 구조한 동물이 400여마리나 됩니다. 하루에 “강아지 다섯 마리와 다리 부러진 고양이/ 한 마리를 데려다 놓”(‘버려지는 것들에 대하여’)은 적도 있습니다. 시인은 “바깥 견사에 갇힌/ 개들의 이름을 지어 주다 그만”(‘돌아갈 곳 없는 사람처럼 서 있었다’)두었습니다. 다 부질없는 일이라는 걸 알았기 때문입니다.

보호소의 동물들은 입양을 기다립니다. 그런 일은 구조의 손길만큼이나 어렵습니다. “감당할 수 없는 버림에 대한/ 보호소 준칙”(이하 ‘인도주의적 안락사’)은 인도주의적 안락사를 강요합니다. 시인의 고민과 갈등이 머무는 지점입니다. “버려진 목숨을 앗아 가는 일이/ 어떻게 인도주의인지 알 수 없”습니다. “사는 건 늘 그랬지” 자조하지만, 시인은 견딜 수가 없습니다. 구조라는 명목하에 잡아와 비좁은 견사에 가둔 생명이 “너는 (버린 놈보다) 더 나은 놈이냐 묻는 것”(이하‘검은 개’) 같습니다. “폐허 아닌 폐허”에서 “서로 낯을 익”히던 시인은 결국 지난 연말 구조사 일을 그만두었습니다.

2022년 1월 1일 ‘걷는사람’에서 세 번째 시집을 낸 시인은 요즘 걷기에 빠져 있습니다. 매일 동해안과 남해안, 섬진강변을 찾아 짧게는 2㎞, 길게는 20㎞를 걷습니다. 시인은 이를 ‘생존운동’이라 부릅니다. 살기 위해 걷는 것이지요. 시인에게 “산다는 건 그냥 어디론가/ 움직이는 일”(‘직진금지’)입니다. 오늘도 시인은 어딘가를 걷고 있겠지요. 다음 시집은 걸으며 만난 풍경과 사람들 이야기로 한층 깊어지겠지요.

시인의 말

[김정수의 시톡](6)김명기 시인의 세 번째 시집

▲그 뼈가 아파서 울었다
이영춘 지음·실천문학사·1만원
유서 쓰듯, 혈서 쓰듯
그 한 마디를
쓰려고 애썼다.
그러나 아득했다.
시(詩)라는
신(神) 앞에서.

[김정수의 시톡](6)김명기 시인의 세 번째 시집

▲나의 머랭 선생님
김륭 지음·시인의일요일·1만원
요양병원 화단에
앉아 있던 맨드라미가
엄마, 하고 불렀다.
다시는 오지 않을 것이다
떠난 적이 없기 때문이다.

[김정수의 시톡](6)김명기 시인의 세 번째 시집

▲책장 사이에 귀뚜라미가 산다
김황흠 지음·문학들·1만원
강과 나무와 풀과 귀뚜라미와 여치와 한통속으로
어울려 논다.
거기에 당신도
함께 숨 쉬고 있다.

[김정수의 시톡](6)김명기 시인의 세 번째 시집

▲침침한 저녁이 더듬어 오던 시간
김영희 지음·달아실·8000원
문장의 행간마다
시간을 역류한 언어들이
상처난 지느러미 같은 아픔이었다는 것을.

[김정수의 시톡](6)김명기 시인의 세 번째 시집

▲반과 반 사이의 여자
우중화 지음·리토피아·1만원
지나간 모든 기억에 용서를 구한다. 화해의 몸짓이 충돌한다.
그래도 여전히
흐르는 것들,
사랑하기로 한다.

[김정수의 시톡](6)김명기 시인의 세 번째 시집

▲소금의 혈연
박미영 지음·예맥·1만원
시를 알고부터
시를 떠난 적이 없습니다.
나를 만나기 위해
나를 흔들기 위해
나를 넘어서기 위해
시를 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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