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대선 이후 어떤 국가체계 만들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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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대선 이후 어떤 국가체계 만들 것인가?

입력 2022.01.07 15:26

수정 2022.01.11 1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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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박이대승 정치철학자

누군가 “선거란 서로 다른 이념을 대표하는 정치지도자들이 자신의 국가 비전을 제시하고 유권자의 선택을 받는 제도”라고 말한다면, 나도 모르게 실소가 터져나올 것 같다. 모두가 더러운 과거를 폭로하거나 은폐하는 데만 몰두하고 있는 이번 대선에서 ‘비전’을 얘기하는 건 우스운 일이 돼버렸다. 돌아보면 이명박·박근혜 정권이 새로운 국가와 사회를 꿈꾸기에는 더 좋은 시절이었다. 많은 이들이 ‘암울한 현재’가 끝나기를 기다리며, 다른 미래를 위한 참신한 기획을 내놓았다. 실제로 혁신적이라 평가받는 사회정책의 상당수를 그 당시 지방정부에서 시도했다. 암울한 현재가 끝나고 나니, 미래를 말하는 것이 부질없는 세상이 오고 말았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와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가 지난 1월 3일 서울 영등포구 한국거래소에서 열린 증권·파생상품시장 개장식에서 대화를 하고 있다. / 국회사진기자단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와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가 지난 1월 3일 서울 영등포구 한국거래소에서 열린 증권·파생상품시장 개장식에서 대화를 하고 있다. / 국회사진기자단

한국과 서구의 제도

그래도 미래를 생각하는 사람들은 갈 길을 가야 한다. 경제 규모는 이미 선진국 수준일지 몰라도, 한국은 여전히 지속가능한 사회관계와 국가체계를 형성하지 못했다. 가장 시급한 작업은 개별 정책이나 법안을 바꾸고 추가하는 일이 아니라 제도의 기본 구조와 토대를 전반적으로 성찰하고 전략적인 변화 계획을 수립하는 일이다.

얼마 전 동료들과 함께 유럽의 간호 제도를 연구했다(불평등과시민성연구소, ‘해외 간호 제도 연구’). 서구 제도에 관한 구체적인 연구는 비교 인류학적 관점에서 한국 제도의 기본 성격을 파악할 수 있게 해준다. 한국과 유럽의 간호 및 보건 법률을 비교해보면, 제도의 기본 원리 수준에서 주목할 만한 차이가 드러난다.

유럽에서는 보건(health care)이라는 상위 범주와 의료(medical)라는 하위 범주가 분명하게 나뉜다. 전자는 건강을 보호하고 관리하는 제도 전체를 포괄하고, 후자는 그중 의사 직종에 관한 것을 다룬다. 프랑스는 <공공 보건 법전>에서 20개 이상의 보건 직종을 각각 별도의 챕터에서 규정한다. 영국에는 주제와 직종에 따라 별도로 만든 개별법들이 존재한다. 서로 다른 직종이 협력하고, 한 직종이 다른 직종의 책임 아래 업무를 수행하기도 하지만, 법률은 각 직종의 고유한 업무 범위를 인정하고, 그에 맞는 구체적 제도를 규정한다. 보건이라는 커다란 범주 아래에 의사는 의사의 고유한 업무, 즉 의료 활동을 하고, 간호사는 간호사의 고유한 업무인 간호와 돌봄 활동을 하는 식이다.

한국 법체계는 ‘보건’과 ‘의료’를 명확히 구별하지 않는다. 의료법은 의사, 치과의사, 한의사, 조산사, 간호사를 의료인으로 정의한다. 그럼 의료는 여러 직종을 포괄하는 상위 범주인가? 그렇다면 보건의료인력지원법은 왜 두 단어를 동시에 쓰는가? 간호조무사에 관한 내용은 모두 의료법에 들어 있는데 정작 의료인은 아니다. 간호사는 의료인이지만, 업무 범위에는 ‘진료의 보조’라고 명시할 뿐 의료라는 말은 없다. 도대체 의료가 의미하는 바는 정확히 무엇인가? 각 직종의 기능과 업무 범위 규정은 모호하고, 내용도 매우 부실하다. 이 상황에서 의사, 간호사, 간호조무사가 업무 범위를 두고 갈등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고, 그런 갈등은 거꾸로 명확한 법률의 제정을 어렵게 한다.

또 한가지 주목할 점은 의료법의 의료인 단체 관련 조항이다. 여기에는 단체를 만들어야 한다는 내용만 있고, 어떤 목적을 위한 것인지가 없다. 지금 대한의사협회와 대한간호협회 등의 법정 단체가 직종 이익단체처럼 굴러가고 있는데, 이는 당연한 결과다. 유럽의 보건 관련 법률도 직업 단체나 직종별 거버넌스를 규정하고 있는데, 대부분은 공적 이익을 추구하는 비국가 민간 조직이라는 성격을 지닌다. 이렇게 조직을 운영할 수 있는 건 관련 제도를 매우 치밀하고 체계적으로 설계해놓았기 때문이다. 직종별 직업 단체, 노동조합, 거버넌스 조직 등이 동시에 존재하면서도 서로 다른 목적을 추구할 수 있다. 한국에는 이른바 ‘공공’과 ‘민간’ 사이에 건널 수 없는 경계가 존재하고, 민간이 공동체의 운영에 실질적 권한을 행사하는 경우가 거의 없다. 그 이유 중 하나는 국가와 민간 조직이 어떤 식으로 협의하고, 어떻게 국가 권력을 공동으로 행사할 것인지를 놓고 체계적이고 정확한 제도를 설계하지 못하는 데 있다.

이와 비슷한 문제들이 보건 영역뿐 아니라 한국 제도 전반에 놓여 있다. 정확한 개념 정의, 상위 범주와 하위 범주의 구별, 대상의 구체적 규정, 정확한 범주화 등을 결여한 법률이 너무 많다. 대한민국 헌법도 예외가 아니다.

제도의 정상적 조건

한국의 국가체계는 서구의 것을 베꼈다고 믿는 사람들이 많다. 여기에 “한국의 실정에 맞는 제도를 만들어야 한다”는 주장이 뒤따른다. 조금만 자세히 보면 제대로 베낀 것조차 별로 없다는 걸 알게 된다. 한국은 서구인이 사는 서구를 모방한 것이 아니라 한국이 관찰한 서구를 모방했다. 그 관찰은 대부분 이해가 아니라 몰이해에 가깝다. 일종의 자기 모방, 즉 타자가 아니라 자신이 제멋대로 상상한 타자를 흉내냈다. 한국의 근대를 구성하는 요소는 서구에서 왔지만, 몰이해에서 비롯한 오역, 혹은 정치적 이해관계에 따른 의도적 왜곡을 거쳐 수입했다(최근의 기본소득이 대표적 사례다. 이 제도의 원형은 서구에서 왔지만, 지금 한국에서 논의 중인 기본소득은 그것과 별 상관이 없다). 마치 다른 사람이 레고 블록으로 지은 집을 해체해 자기식으로 다시 만든 다음, ‘나도 그럴듯한 레고 집을 지었다’고 착각하거나 자랑하는 꼴이다.

“서구 제도를 제대로 배우자”는 식의 고리타분한 주장을 하려는 게 아니다. “서구 제도를 도입할 것이냐”, “한국 실정에 맞는 특수한 제도를 개발할 것이냐” 차원의 논쟁을 넘어 제도의 정상적 조건, 즉 체계성·합리성·일관성 등을 갖춘 제도를 만들자는 얘기다. 유럽과 한국의 제도를 비교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러한 조건은 비교를 통해 분명하게 드러나기 때문이다. 한국의 국가체계는 외부의 시선에서 질문을 던질 때 제대로 효과를 발휘할 수 있다.

선거는 앞으로 어떤 국가체계를 만들어갈 것인지 민주적으로 논의하고 결정하는 공간이다. 물론 이번 대선이 이렇게 진행될 가능성은 없지만, 변화를 위한 논의를 멈출 수는 없다. 이런 상황일수록 오히려 근본적인 질문을 놓치지 않기 위한 노력을 해야 한다. 이번 대선이 망했다고 다음 대선까지 망칠 수는 없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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