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이가 완성하는 성장 이야기
성장이란 세계와 달리 마주할 ‘나’를 찾는 여정이다. 여정을 돕는 것은 타인이다. 타인의 형식은 책과 같은 매체를 제외한다면 늘 친구나 부모, 스승 혹은 연인이다. 그래서 가까운 관계가 성장에 영향을 미친다는, 다소 일방적인 정식화가 가능하다. 이 정식화는 “기숙학교에서 펼쳐지는 미스터리 스릴러”를 표방하는 <그날 죽은 나는>에 그대로 적용된다. 주인공 이영은 어린 시절 관계에서 입은 상처로 타인을 너무 의식하는 사람으로 자라났다. 서아는 어린 시절 경험한 폭력적 관계로 타인을 조종하는 것을 탐닉하는 사람이 됐다. 가해자를 그대로 흉내 내는 피해자가 서아라면, 향조는 피해자의 위치를 벗어나지 못해 침잠하는 인물이다. 만약 여기까지였다면 이 작품은 조금 무서운 인형놀이에 불과했을지 모른다.
웹툰 <그날 죽은 나는> (이언 지음)의 한 장면 / 네이버웹툰
하지만 이것은 성장에 대한 이야기다. 완료되지 않은, 지금도 여전히 일어나는 성장이다. 그 성장을, 작품은 이영과 향조를 만나게 하며 그려낸다. 정확히는 이미 죽은 소미를 통해 두 사람을 만나게 하면서다. 이영에게 소미는 어린 시절 동경하던 친구였다. “다른 사람의 시선 같은 건 너무 그렇게 신경 쓰지 마.” 초등학교 때 같은 양궁부였던 소미는 그렇게 말하며 활짝 웃었다. 말과 웃음을 기억하기에 이영은 소미가 다니는 기숙고등학교로 전학 간 첫날부터 소미를 찾았다. 하지만 소미는 더 이상 양궁부가 아니었고 웃지도 않았다. 말조차 붙이지 못할 만큼 어두워진 소미는 옥상에서 떨어져 죽고 말았다. 그것도 이영의 눈앞에서. 소스라치게 놀란 이영이 올려다본 옥상에는 누군가의 형체가 어른거렸다. 하지만 이영은 옥상에서 어른거렸던 형체에 대해 입을 다물었다. 그 침묵을 틈으로 서아가 이영에게 접근한다.
향조에게 소미는 살리지 못한 친구였다. 부상으로 양궁선수의 길을 걷지 못해 망가져가던 소미는 서아의 먹잇감이 되고 말았다. 향조는 소미가 아팠다. 이미 부서져버린 자신을 보는 것 같았고, 유명을 달리한 엄마를 보는 것 같았다. 그래서 손을 내밀려 했건만 향조는 소미를 지키지 못했다. 향조는 이제 자신도 포기할 준비가 돼버렸다. 그렇지만 서아의 새로운 먹잇감이 된 이영만큼은 자신의 생을 마무리하기 전에 돕고 싶었다. 소미를 통해 향조는 이영을 만났다.
죽음을 문면 그대로 받아들인다면 제목 속 ‘나’는 소미다. <그날 죽은 나는>은 소미가 주어인 문장을, 향조와 이영이 완성하는 이야기가 된다. 그런데 둘은 ‘나’를 찾아간다. 그날 죽은 ‘나’는 단수가 아니게 되고, 죽음도 문면 그대로 읽히지 않는다. 나를 포기하는 것이 죽음이다. <그날 죽은 나는>은 세계 앞에서 나를 한때나마 포기했던 이들이 관계를 통해 새로운 나를 찾는 이야기가 된다.
제목은 이야기의 함축이다. <그날 죽은 나는>은 그 관계를 이어 써야 할 것으로 포착한다. 성장 이야기가 다시, 달리, 새롭게 쓰인다. 세계와 달리 마주할 ‘나’를 위해 준비된, 오래 곱씹게 되는 이름이다. 그리고 이름값을 하는 이야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