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꾼도시처녀들 - 느릿하게 다가온 ‘그들의 한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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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꾼도시처녀들 - 느릿하게 다가온 ‘그들의 한잔’

입력 2021.12.17 13:22

수정 2021.12.21 1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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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황순욱 초영세 만화플랫폼 활동가

가끔, 아니 굉장히 자주, 아니 거의 매 순간 세상의 변화 속도가 너무 빠르다고 생각한다. 많은 분야가 그렇게 느끼게 만들지만, 최근의 방송 미디어 산업과 시장은 요동친다는 표현이 딱 어울리는 것 같다. 업계는 물론 시청자와 소비자 역시 빠른 변화에 적응하기 쉽지 않고, 고작 한해 뒤의 상황이 어떠할지 예측하기도 어렵다.

만화 의 표지 / 예담

만화 <술꾼도시처녀들>의 표지 / 예담

지상파로 시작해 케이블과 위성으로 확장한 방송은 오랫동안 정해진 시간표에 따라 시청자를 라디오 곁에, 그리고 텔레비전 앞에 모이게 했다. 그러나 세상의 모든 데이터가 디지털 방식으로 전환되고 통신속도가 증가하면서 우리는 인터넷을 공기처럼 당연히 여기게 됐다. 이에 따라 웹서비스와 IPTV는 원하는 시간에 원하는 방송을 볼 수 있는 주문형 비디오(VOD)를 제공하기 시작했고, 얼마 지나지 않아 완전히 자리 잡았다.

다만 아직 주문형 비디오 콘텐츠의 대부분은 기존의 방송 분량과 개봉한 영화들의 2차 시장이었다. 소비 방식은 변화했지만, 콘텐츠와 제공자는 여전히 그대로였다. 넷플릭스가 자리 잡기 전까지 말이다. 비디오테이프와 DVD를 대여하는 사업으로 시작한 넷플릭스는 기존의 수익 모델로는 콘텐츠 제작사들의 배만 불려준다고 생각해 과감히 콘텐츠 제작으로 영역을 넓혔다. 지금 그들이 2억명이 넘는 구독자를 붙잡을 수 있었던 타당한 이유는 자체적으로 제작하는 오리지널 콘텐츠 덕분이었다.

시장의 이런 변화를 수많은 콘텐츠를 가지고 있는 거대자본이 보고만 있을 리 없다. 최근 몇년간 거대 미디어 업체의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가 생겨나고 시장을 넓혀가는 과정이었다. 변화에 민감한 한국 시장도 마찬가지다. 특히 외국계 거대 OTT가 한국 시장과 K콘텐츠를 유용한 것으로 여기면서 국내의 영상 미디어 판은 더욱 치열해졌다. 통신사와 방송국, 영화제작사와 유통사 이들이 모두 OTT 플랫폼으로 뛰어들면서 독점 작품이 고객 유치의 중요한 요건이 됐다.

그러나 이토록 빠른 세상의 변화에 비해 너무나 느리게 받아들여지는 것도 있다. 최근 국내 OTT 플랫폼에서 독점 작품으로 내놓은 드라마 <술꾼도시여자들>은 해당 서비스의 급성장을 견인하며 화제가 됐다. 그러나 이 작품의 원작인 미깡의 <술꾼도시처녀들>이 여성도 술을 마시면 취하고 떠들며 술주정을 하는 독립적인 존재라는 사실을 소재로 삼을 수 있었던 것은 겨우 2014년이었다. 그전까지 미디어 속의 술 마시는 여성은 남성의 보조역할로만 그려졌다. 모든 인간이 평등하다는 선언이 나온 지 한참 지났지만, 그때까지 술 마시는 그들은 주인공이 될 수 없었다.

그리고 또 한참이 지났다. ‘처녀’라는 단어가 성차별을 내재하고 있기에 ‘여자들’로 이름을 고쳐야 한다고 다수를 설득하는 데 또 수년이 걸렸다. 우리는 세상의 빠른 변화에 적절히 적응하며 사는 것처럼 보이지만, 차별과 편견 그리고 모순에 빠진 자기 생각을 바꾸는 일에는 매우 느릿하게 반응하고 있다. 과연 차별금지법이 돌돌 말리는 휴대전화 출시보다 먼저 통과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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