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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할 때 비로소 빛나는 것들

입력 2021.12.03 15:12

수정 2021.12.06 17: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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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주연 연극평론가

던컨 맥밀란의 연극 <내게 빛나는 모든 것>은 주인공의 일곱 살 기억으로부터 이야기를 시작한다. 우울증을 앓고 있던 엄마가 자살을 시도해 병원에 실려간 날부터 아이는 엄마의 슬픔을 위로하고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자신이 좋아하는 것들, 세상에서 빛나는 것들의 목록을 만든다. 아이스크림, 줄무늬 양말, 물놀이 등 일곱 살 아이가 좋아할 만한 것들로부터 시작된 이 리스트는 이후 아이가 사춘기를 겪고, 결혼하고 또 소중한 사람들과 헤어지는 인생의 여정 내내 꾸준히 덧붙여져 극이 끝날 무렵에는 무려 100만개의 목록이 빼곡하게 채워진다.

연극  / 크리에이티브테이블 석영 제공

연극 <내게 빛나는 모든 것> / 크리에이티브테이블 석영 제공

여기서 중요한 것은 100만개나 되는 목록의 숫자나 각각의 내용이 아니라 이 리스트가 만들어지는 과정 그 자체다. 우울하고 슬픈 엄마를 위로하기 위해 처음 시작된 이 리스트는 주인공 혼자 만든 것이 아니다. 엄마를 기다리던 병실 밖 복도에서 낯선 이가 건네주던 젤리, 리스트를 러브레터처럼 주고받으며 사랑을 확인했던 추억, 결국 세상을 떠나버린 엄마의 장례식에서 옛 연인이 건네준 따스한 위로의 말들…. 주인공의 리스트는 이렇게 자신을 둘러싼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 시작되고, 채워지고 이어진다. 그리하여 엄마를 위로하기 위해 시작된 리스트는 오히려 자신의 삶을 따뜻하게 감싸안는 위안이 되고, 그렇게 100만개의 ‘빛나는 것들’로 채워진 리스트는 다시 홀로 남은 아빠에게 전해진다. 결국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이 리스트는 늘 다른 누군가를 위해서, 그리고 다른 누군가에 의해 만들어졌고, 이는 곧 주인공의 가장 빛나는 순간들은 언제나 누군가와 함께할 때였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것이다.

작품은 이러한 주제를 공연 형식을 통해서도 다시 한 번 강조한다. 이 작품은 배우 혼자 모든 것을 이끌어가는 모노드라마다. 하지만 주인공의 인생에는 의사, 상담사, 교수, 아버지, 연인 등 수많은 인물이 등장한다. 상대 배역을 맡을 배우가 없으니 극은 자연스레 관객들의 참여를 유도할 수밖에 없고, 그렇게 주인공이 성장하면서 만나는 모든 사람은 대부분 관객의 참여를 통해 이루어진다. 외형상으로는 배우 혼자 모든 극을 이끌어가는 모노드라마 형식을 띠고 있지만, 실제로 이 공연은 1인극이 아니라 관객 모두의 참여를 통해 비로소 완성되는 ‘모두의 연극’이다. 그렇게 진행된 공연이 마지막에 100만개의 ‘빛나는 것들’이 적힌 리스트로 남게 된다는 설정은 결국 세상의 모든 소중한 것들은 ‘함께할 때’ 비로소 빛난다는 사실을 새삼 일깨워준다.

이는 무대에서도 드러난다. 사면이 트여 있는 개방형 무대, 주인공은 어디에도 기댈 것 없는 이 무대 위에서 긴 이야기를 풀어나가야 한다. 하지만 그는 외롭지 않다. 자신을 둘러싼 객석의 모든 관객이 상대 배우이자 소품이자 이야기의 주체가 돼 극을 진행하고 완성해나가기 때문이다. 이 공연은 배우와 관객이 ‘함께할 때’ 비로소 시작되고 완성된다. 마치 극중 주인공이 적어나가는 빛나는 것들의 목록이 그의 삶을 감싸 안는 따스한 위로가 돼줬듯이, 무대를 감싼 관객들은 공연 내내 배우를 지탱하는 가장 큰 힘이 돼준다. 12월 3일부터 내년 1월 2일까지, 홍익대대학로아트센터 소극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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