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야말로 혜성 같은 등장이었다. 데뷔 싱글 ‘베이비 원 모어 타임’은 1998년 출시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빌보드를 비롯해 여러 나라 음악차트 정상에 올랐다. 이듬해 발표한 1집은 빌보드 앨범차트에 1위로 데뷔했다. 뒤이어 낸 ‘섬타임스’와 ‘(유 드라이브 미) 크레이지’도 각국 차트에서 높은 순위를 기록하며 큰 인기를 끌었다. 당시 17세에 불과했던 미국 가수 브리트니 스피어스는 단숨에 대중문화의 아이콘이 됐다.
넷플릭스 다큐멘터리 <브리트니 vs 스피어스> / 넷플릭스
데뷔하자마자 주목받을 수 있던 것은 일찍이 대중에게 얼굴을 알린 덕분이기도 했다. 브리트니 스피어스는 유년 시절 유명 오디션 프로그램 <스타서치>에 참가한 이후 다수의 광고에 출연했다. 또한 스타들의 등용문으로 통하는 10대 버라이어티쇼 <미키 마우스 클럽>에 캐스팅돼 많은 이에게 눈도장을 찍었다. 물론 전적으로 미디어의 힘에만 의존한 것은 아니다. 어렸을 때부터 남달랐던 끼와 재능이 업그레이드됐기에 대중의 관심과 성원을 이끌어낼 수 있었다.
히트 퍼레이드는 새천년으로 넘어와서도, 2010년대에 들어서도 계속됐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브리트니 스피어스 곁에는 짙은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2004년 자신의 백업 댄서였던 케빈 페더라인과 결혼했으나 2년 만에 파경을 맞았다. 방송과 타블로이드 신문은 두 아들의 양육권 분쟁에 들어간 둘을 신나게 취재했다. 끊임없이 파파라치들에게 시달리느라 신경이 예민해진 브리트니 스피어스는 결국 술과 약물에 빠지게 됐다. 이 때문에 재활원에 들락거리기도 했다.
급기야 2008년 2월 아버지 제이미 스피어스가 딸의 정서 불안을 이유로 성년후견인으로 나섰다. 애석하게도 이는 브리트니 스피어스에게 결코 좋은 일이 아니었다. 아버지는 변호사, 정신과 의사 등과 짜고 딸을 독자적 판단을 내릴 수 없는 사람으로 꾸몄다. 이전까지 딸과 가깝게 지내던 사람들의 접근을 막았으며, 브리트니 스피어스가 원하는 변호사도 선임할 수 없도록 방해했다. 약 1년 뒤 아버지는 임시 성년후견의 영구화를 요청했고, 법원이 신청을 받아들이면서 아버지는 통제권을 무한정 사용할 수 있게 됐다.
아버지의 강한 속박에 놓인 브리트니 스피어스는 황금알을 낳는 거위에 지나지 않았다. 브리트니 스피어스의 관리팀은 계약을 이행하지 않으면 고소하겠다면서 빡빡한 일정의 투어공연을 강요했다. 2013년부터 2017년까지 진행된 라스베이거스 쇼에서 1억3000만달러 이상, 2018년 투어콘서트에서는 5000만달러가 넘는 수익을 올렸음에도 이 기간 아버지는 브리트니 스피어스에게 매달 8000달러만 건넸다. 아버지는 성년후견이라는 명목으로 딸을 노예처럼 부려먹었다.
2019년 브리트니 스피어스가 강제로 정신병원에 입원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온라인에서는 그에게 자유를 달라는 ‘프리 브리트니’ 운동이 일었다. 이로써 부당한 성년후견 문제가 공론화됐다. 9월 넷플릭스에서 개봉한 다큐멘터리영화 <브리트니 vs 스피어스>는 브리트니 스피어스가 13년간 당했던 일들을 들춰낸다. 철저히 고립된 채 자신의 삶을 잃고 살았던 슈퍼스타의 처절한 외침이 담겨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