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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구석’ 기자는 아스팔트가 그립다

입력 2021.07.19 10:37

수정 2021.07.19 16: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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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창준 정책사회부 기자

역대 최고 규모의 4차 유행이 시작됐다. 나는 이 우울한 유행이 하루빨리 지나가, 아스팔트 바닥에 주저앉아 노트북을 두드리는 그 짜릿한 순간을 기다리고 있다.

이창준 기자

이창준 기자

오전 7시 30분. 잠이 덜 깬 채로 흘러내리듯 침대에서 빠져나와 옆방의 책상으로 ‘출근’한다. 타사 조간 체크부터 시작해 그날 기사 계획을 정리해 보고한 후 코로나19 확진자 속보까지 내보내고 나니 2시간이 훌쩍 지났다. 이후 1시간가량 주요 기사 취재를 틈틈이 해놓는다. 오전 11시, 줌(ZOOM)을 통해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온라인 브리핑 들을 시간. 열심히 내용을 받아치다 보면 어느덧 점심때다.

라면으로 대충 요기만 하고 오전에 못 한 취재를 이어간다. 벌써 오후 2시, 중앙방역대책본부 브리핑이 시작된다. 오후 브리핑도 온라인으로 진행되기에, 다행인지 불행인지 브리핑을 들으면서 기사를 쓸 수 있다. 그럼에도 마감인 오후 4시에 맞춰 기사를 쓰는 경우는 드물다. 쪼그라드는 심장을 부여잡으며 4시 30분에서 5시 사이 겨우 기사를 완성해 보내고, 데스킹을 거쳐 기사가 출고되는 것을 확인하면 5시 30분쯤. 익일 주요 일정 등을 정리하고 나면 오후 6시를 조금 넘긴다. 다시 옆방의 침대로 ‘퇴근’하는 시간대다.

코로나19 시대, ‘코로나19를 맞고 있는’ 기자의 일상 풍경이다. 요란하게 늘어놓았지만 동선만 보면 모든 공정은 8평 남짓한 작은 골방에서 해결된다. 비대면 일상이 활성화되면서 매일 2차례씩 있는 브리핑을 비롯해 국회 의사일정까지 온라인으로 중계가 되니, 굳이 현장을 가지 않아도 웬만한 일은 집에서 처리할 수 있다.

처음에는 좋았다. 출퇴근 시간만 절약해도 하루 몇시간인가. 슬슬 좀이 쑤시기 시작한 것은 지난해 12월, 3차 유행 즈음이었다. 코로나19 상황이 엄중해 외부 활동을 특히 피해야 했지만, 매일 오전·오후 온라인 브리핑에 발이 묶여 좀체 밖으로 나가기 힘들었다. 대유행 시기, 일도 많던 때라 업무가 끝나면 진이 빠져 밖으로 나갈 힘이 없었다. 가택연금이 이런 것일까 싶었다.

상황이 이러니 1년가량 기자생활을 하고 있지만 변변한 현장을 가는 경우도, 그럴듯한 취재원을 만나는 경우도 별로 없다. 하루가 멀다고 전화하는 감염내과 교수들은 이제 명절에 서로 안부도 묻는 가까운 사이가 됐지만, 얼굴도 잘 모르는 ‘랜선 친구’가 태반이다. ‘방구석 기자’ 아니냐는 자조 섞인 농담도 1년가량 지속되다 보니 더 이상 재미있지 않다.

얼마 전 벌써 후배가 들어와 “여태 만난 사람 중 가장 인상적이었던 사람은 누구냐”는 질문인지, 일갈인지 모를 무언가를 내게 던졌다. 대답을 못 했다. 답할 만한 사람이 없었기 때문이다. 어떻게든 쥐어짜다 얼떨결에 만났던 모 기관장 얘기를 했다. 가장 인상적인 사람이 그저 기관장이라니. 얼굴이 화끈거렸다. 하긴 10개월 전 부서에 와서 판 명함은 아직 수북한데, 인상적인 이를 만났으면 얼마나 만났으랴.

이런 중에 역대 최고 규모의 4차 유행이 시작됐다. 그나마 있던 취재원과의 약속도 줄줄이 취소됐다. 생계를 위협받는 자영업자들에 비하면 이 정도는 ‘배부른 인고’일 것이지만, 나 역시도 개인적인 이유로 이 우울한 유행이 하루빨리 지나가기만을 기다린다. 뙤약볕에 아스팔트 바닥에 아무렇게나 주저앉아 노트북을 두드리는 그 짜릿한 순간을 나는 기다리고 있다.

‘꼬다리’는 어떤 이야기나 사건의 실마리를 말하는 꼬투리의 방언이다. 10년차 이하 경향신문 기자들이 겪은 일상의 단상을 전한다. ‘꼬’인 내 마음 ‘다’ 내보이‘리’라는 의미도 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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