격리실은 가난한 사람의 주거지로 쓰이는 쪽방과 매우 흡사했고, 쪽방과는 달리 칸막이로 구분된 화장실이 있다는 점에서 책상과 침대를 뺀 고시원과도 닮았습니다.
서울 용산구 동자동 쪽방촌 / 김기남 기자
이 세계에 첫발을 디딘 날은 꽃샘추위가 가시지 않은 지난 3월 어느 오후였습니다. 수갑이나 포승줄을 차지 않은 채 검찰 호송차에서 내려 제 발로 걸어들어온 게 신기했는지, 하얀 방호복으로 온몸을 싸맨 교도관 너덧이 둘러싸고 이것저것 물었습니다. 병역법 위반으로 수감되는 사람은 앞으로 없을 줄 알았다는 말과 함께 어딘가 해명을 요구하는 눈빛으로. 구차한 설명 따위에 쏟을 마음이 부족했습니다. 법원이 내 신념, 내 존재를 인정하지 않은 이유를 직접 말하는 건 스스로 파괴하는 일이기도 했습니다. ‘나는 여호와의 증인이 아닙니다.’ 내가 답할 수 있는 전부였습니다.
입소 절차를 마치고 신입 수용자를 2~3주간 격리하는 건물로 인계됐습니다. 십수년 전, 수감된 병역거부자의 회고와는 조금 다른 모습을 갖춘 방에서 눕고 앉기를 반복하며 첫 밤을 무사히 견뎠습니다. 방은 이상하게도 낯설지 않았습니다. 언제나 관찰자의 시선으로 탐색하고 기껏해야 인터뷰 대상과 거리감을 좁히려고 문턱에 한시간 남짓 앉아본 게 전부였던 공간이 겹쳐 보였습니다. 격리실은 가난한 사람의 주거지로 쓰이는 쪽방과 매우 흡사했고, 쪽방과는 달리 칸막이로 구분된 화장실이 있다는 점에서 책상과 침대를 뺀 고시원과도 닮았습니다. 코로나19에 확진됐음에도 며칠간 쪽방에 꼼짝없이 갇혀야 했던 사람이 느꼈을 고통의 윤곽이 희미하게나마 잡히는 듯했습니다.
‘닭장’으로 불리는 방에서 15일가량 지냈을 뿐인 제가 한평짜리 공간에서 매일 시간의 무게를 견디는 사람의 마음에 결코 도달할 수 없다는 걸 압니다. 전등 하나 없어 대낮에도 어두컴컴했던 복도를 지나기 위해 벽을 더듬어야 하는 건물이 스스로를 온종일 가두었던 사람. 흐린 날에는 천장과 벽을 따라 비처럼 물이 새는 곳에서 인기척이 느껴지면 고요히 문을 닫던 사람. 2018년에 한국을 방문한 유엔(UN) 주거권 특별보고관은 고시원이나 쪽방처럼 가난한 사람이 거처로 삼는 방을 ‘관과 같다(coffin-like)’고 했습니다. 국제인권기구 공식문서에 쓰이기에는 부적절한 면이 있지만, 인간의 존엄을 중대하게 침해하는 문제를 강조하기 위한 극단적 표현이었습니다. 어떤 방은 연고가 없는 시신이 방치되는 장소가 된다는 점에서 그가 충격을 받아 그런 표현을 썼을지도 모릅니다.
서울역 건너편에 수많은 쪽방이 밀집한 동자동에 동행한 또래의 사진가는 한평생 서울에 살면서도 쪽방촌의 존재를 알지 못했다고 했습니다. 도심이 개발된 후의 풍경을 의식에 각인한 세대 대부분이 그럴 겁니다. 보증금으로 맡겨둘 자산이 없거나, 주거급여 지원 없이 월세를 지불할 소득이 부족한 사람은 도시를 바쁘게 누비는 이들의 시야를 벗어난 곳에 터를 잡고 살아갑니다. 최근 욕망의 화신을 대변하는 정치세력의 복귀와 함께 재산권이 헌법에 명시된 주거권보다 우위에 있다는 파괴적인 주장이 증폭되고 있습니다. 쪽방 밀집지역에 기존 주민과 공동체를 위한 공공임대주택 공급을 약속한 정부는 흔들리지 않아야 합니다. 올해도 쪽방에는 혹서기의 고난이 도래하겠지만, 조만간 공공재개발 사업의 구체적 계획이 동자동의 위태로운 긴장을 잠재울 수 있기만을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