랑종-왜 어떤 이들은 ‘진짜 무서운’ 영화라고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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랑종-왜 어떤 이들은 ‘진짜 무서운’ 영화라고 할까

입력 2021.07.12 15:14

수정 2021.07.14 09: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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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용인 기자
그들은 문명의 빛이 닿지 않는 이 세상 구석 어딘가에는 진짜 귀신 같은 현상이 존재한다고 믿는 걸까.


제목 랑종(The Medium)

제작연도 2021

제작국 한국, 태국

상영시간 131분

장르 공포, 스릴러, 드라마

감독 반종 피산다나쿤

출연 나릴야 군몽콘켓, 싸와니 우툼마, 씨라니 얀키띠칸, 야사카 차이쏜

원작 최차원, 나홍진

기획 나홍진, 반종 피산다나쿤

개봉 2021년 7월 14일

관람등급 청소년 관람 불가

㈜쇼박스

㈜쇼박스

이 영화를 제작한 나홍진 감독은 “귀신은 있는 것으로 확신한다”고 한 모양이다. 글쎄. 있다면 있는 거겠지. 담론적으로는 실재하는 것이 사실이니까. 비존재의 존재론이라고나 할까.

원래의 아이디어는 나홍진의 것이었다. 영화 <곡성>(2016)에서 황정민이 맡은 무속인 ‘일광’ 이야기로 프리퀄을 만들 계획이었다고 한다. 아이디어가 그대로 실현되리라는 법은 없다. 한국에도 꽤 알려진 태국 공포영화 감독 반종 피산다나쿤과 손잡고 태국판 무당 이야기를 만들었다. 랑종은 태국어로 영매, 무당이라는 뜻이라고 한다(인터넷을 통해 이 태국어의 원래 발음을 확인해봤는데 실제 발음은 랑똥에 가깝다).

시놉시스만 나와 있는 원안을 바탕으로 반종 피산다나쿤은 태국 북부지방 이산을 무대로 한 공포담으로 내용을 채웠다. 코로나19 때문에 한국에 있는 제작자 나홍진 감독과의 소통은 줌과 같은 SNS 도구를 활용했다. 촬영분 업로드-다운로드-편집을 거듭하면서 원격으로 제작한, 특이한 실험의 결과물이다.

코로나19가 만들어낸 독특한 협업

영화에 대해 이야기해보자. ‘님’은 이산지방에 사는 무당이다. 그가 모시는 신은 바얀신인데, 가족력이 있다. 말하자면 가문의 대를 이어 모시는 신이다. 원래는 님의 언니인 노이에게 신병이 있었지만, 노이는 필사적으로 천형(天刑)에 가까운 신내림에서 도망쳐 기독교로 개종하고, 동생인 님이 무당이 된다. 문제는 인력수급회사를 잘 다니던 노이의 20대 딸 ‘밍’에게 나타난다. 님이 신내림(태국말로 마티얌이라고 하나보다)을 받을 때와 비슷한 증상이다. 필사적으로 무당의 핏줄에서 탈출하려고 했던 노이의 노력이 무용지물이 된 것이다. 어쩔 수 없이 숙명으로 받아들이고 밍은 무당의 삶을 살 수밖에 없는 걸까.

영화는 다큐제작팀이 이산지방의 무속인 님을 접촉하고, 님을 통해 밍을, 그리고 그들에게 일어난 초자연적 현상을 기록하는 형식으로 돼 있다. 밍에게 일어난 이상한 일들을 기록하기 위해 다큐팀은 방 구석구석에 CCTV를 다는데, 밍은 냉장고를 뒤져 날고기를 먹거나 반려견을 잡아먹거나 벽에 붙어 기어다니는 등의 기이한 행적을 보인다.

아직 영화를 안 본 사람들을 위해 자세히 이야기하진 않겠지만, 앞의 이야기만 하더라도 태국의 랑종이나 한국의 무당이나 거의 비슷한 습속이 있다는 걸 알 수 있다. 님의 충고대로, 진짜로 아픈 병은 병원을 찾아가야 낫지만, 병원에서 치료하기 애매한 것들, 가족적 고민이나 정신적 문제 같은 영역이 이들 무당의 영역이다. 한국은 보통 대나무 가지에 붉은 깃발이나 만신 깃발, 홍등을 걸어놓은 형태로 이들이 영업 중이라는 걸 알리는데 영화 내용을 회상해보면 태국에서는 적어도 밖에서 구분하는 표식은 눈에 띄지 않는다.

애초 <랑종>이 영화 <곡성>의 프리퀄로 기획됐다고 하지만 내용상 연관성은 전혀 없다.

서로 닮은 한국과 태국의 무속신앙

<곡성>에서 특이한 점은 일광의 배경에 ‘외지인’ 쿠니무라 준이 있다는 점인데, 아마 한국에 대한 지리·역사적인 지식이 없는 외국 사람들이 이 영화를 봤을 때는 뭐 그런가보다, 하고 대충 넘어가겠지만 한국에서도 깡시골에 오컬트적 맥락의 악마가 숨어 있는 건 좀 뜬금없는 설정이긴 하다. 생각해보면 <랑종>의 절정부에서 행하는 의식은 영화가 설정한 태국 고유의 어떤 것이라기보다 서구권의 악마숭배의식과 닮았다. 발명된 전통인 셈이다.

영화를 보면서 계속 떠올린 것은 에드워드 사이드의 역작 <오리엔탈리즘>이다. 시사회가 끝나고 주최 측인 영화홍보사가 감독과 제작자 대화 시간에 참석 기자들에게 휴대폰 문자메시지로 질문을 받는다고 해서 긴 문자를 써서 보내려다가 관뒀다. 사이드가 서구문화의 오리엔탈리즘을 거론할 때 단순하게 동양 비하를 문제삼는 것이 아니었다. 오히려 반대였다. 서구의 눈에 비친 동양의 신비함, 이국적(exotic)이라는 타자에 대한 묘사다. 이 특권화된 주체적 시각을 통해 타자는 낯선, 기이한 존재가 되며 과장된다. 시사회 후 일부 유명 평론가들이 내놓은 “정말 무서운 영화”라는 인상평이 화제가 됐다. 글쎄. 깜짝 놀라는 장면은 한군데 정도 있지만 개인적으로 그리 무섭지는 않았다. 그들은 문명의 빛이 닿지 않는 이 세상 구석 어딘가는 진짜 귀신 같은 현상이 존재한다고 믿는 걸까. 연출력에 대한 평가와는 별도로 필자가 심드렁한 건 어쩌면 이 장르의 효시라고 불리는 <블레어 위치>(1999)의 학습효과 때문일지 모른다.

지배층과 근대화 핍박 속에도 살아남은 무속의 생명력

서우

서우


tvN <심령솔루션 엑소시스트>라는 프로그램이 있었다. 초자연적인 현상으로 고통받는 사례자를 무당이 치유하는 이야기였는데 2011년에 끝났다. 지금 이들의 새로운 영업장은 유튜브. 나름 치열하다. 대중연예인들뿐 아니라 주요 대권주자의 올해 사주, 국운 같은 것도 쉽게 접할 수 있다. 유튜브에서 사건·사고가 나면 출동하는 것은 소위 사이버렉카라고 불리는 유튜버들만이 아니다. 유튜브 무당들도 총출동해 나름의 방법으로 저 사람들의 관계에서 왜 이런 사건이 벌어졌는지 풀이한다. 유튜브 이전에 이들의 주 수입무대는 060유료전화였다. 대부분의 유튜브 무당 채널이 휴대폰을 공개하는데, 전국적 명성을 얻는 것 이외에 이것이 어떻게 수익구조와 연결되는지까진 잘 모르겠다. 전화상담에 이어 오프라인 상담으로 이어지게 유도하는 걸까.

무라야마 지준의 <조선의 풍수>, <조선의 귀신> 같은 책은 당대까지 전승된 민간무속신앙에 대한 것이다. 책들은 전근대와 근대를 잇는 문화인류학적 민속지 연구다. 오늘날의 관점에서 보존하지 말아야 할, 미풍양속을 해치는 미신이라고 폄훼할지 모르지만, 조선의 근대화가 일제의 식민지배를 통해 기형적으로 이뤄지면서 지방사회에 내려오던 수많은 민속적 전통이 대를 잇지 못하고 끊겼다. 30여년 만이다. 여기에 계급·계층적 질서와 문화를 제로베이스로 만들어버린 한국전쟁 역시 지역사회의 민간전통을 청소하는 데 일조했을 것이다. 그런데 핍박의 역사는 그뿐이 아니다. 최근 출간된 연구서 <무당과 유생의 대결> (한승훈 지음)에 따르면 조선시대의 지방사회는 성리학으로 무장한 사대부들과 전통적인 무속권력의 대결장이었다. 전쟁에서 승리해 권력을 잡은 유생들은 성상 파괴를 일삼았고, 유학은 변방의 조선땅에서, 심지어 공자상까지 부수는 식으로 탈레반화됐다. 그런 수백년의 탄압 역사 속에도 변형을 거듭하며 살아남는 걸 보면 무속신앙의 생명력 역시 끈질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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