꼼지락거리는 것도 여의치 않은 감옥에서 세상을 바라봅니다. 저는 ‘평화적 신념’ 때문에 수감 중인 청년입니다.
평화주의 신념에 따른 양심적 병역 거부자 홍정훈 활동가(가장 왼쪽) 등 참석자들이 지난 2월 25일 서울 서초구 대법원 동문 앞에서 대법원 선고에 대한 입장 발표 기자회견을 열고 구호를 외치고 있다. / 이석우 기자
아무리 주위를 둘러보아도 끄적일 만한 주제를 찾을 수 없어 눈을 감습니다. 눈을 감으니 귓속을 파고드는 텔레비전에서 흘러나오는 소리로부터 벗어날 수 없어 가만히 몸부림칩니다. 몸을 꼼지락거리는 것도 여의치 않은 이곳은 함께 먹고 자고 일하는 여섯사람이 일자로 누우면 빽빽해지는 좁은 방입니다. 천장에는 당장이라도 떨어질 듯 위태롭게 엉긴 시멘트 가루가 즐비하고, 벽면에는 오랜 세월을 먹고 자란 곰팡이를 감추려 덕지덕지 붙인 흰색 용지가 울어 있습니다. 창문에 매달린 녹슨 철조망은, 페인트칠이 여기저기 벗겨진 투박한 건물 모서리에 저무는 노을을 감상하는 것조차 가로막습니다. 수없이 각오하고 다짐했지만, 이 세계에서 마주하는 감각으로부터 단 하루도 상처받지 않은 날이 없습니다.
사회가 세운 높은 벽 앞에 번번이 좌절
2018년 6월, 헌법재판소가 대체복무제를 도입하도록 결정한 날에도 비가 무척 많이 내렸습니다. 헌법소원의 원고 중 한명인 저는 재판장에 울려퍼지는 현학적인 문장을 도무지 해석할 수 없어 도중에 빠져나왔습니다. 출입이 제한된 건물 밖으로 줄지어 늘어선 언론인들이 만든 길을 가슴 졸이며 지나쳐, 오랫동안 그 순간만을 기다린 동료들과 함께 헌법재판소의 현판 앞에 섰습니다. 당사자로서 소감을 털어놓도록 요구받았을 때, 사회가 세운 높은 벽 앞에 번번이 좌절하고 차갑고 잔인한 담장 안에 1년 6개월을 갇혀 있던 이들이 떠올랐습니다. 제가 아는 얼굴이 겨우 한줌에 불과했고, 수많은 병역거부자 한사람 한사람의 고통을 헤아릴 수 없다는 사실에 북받쳐 울었습니다.
이제야 조금은 그 아픔에 공감할 수 있는 것이 불행 중 다행입니다. 거대한 변화의 기로에 섰던 저는 앞서 수감된 청년들이 나선 길을 따라야 했습니다. 헌법재판소의 결정에도 불구하고, 법원은 여호와의증인 신도가 아닌 제가 내세운 평화적 신념이 정당하지 않다고 판단했기 때문입니다. 너무나 더디게 변하는 사회에 대한 원망, 변화를 설득할 만한 능력이 부족한 스스로에 대한 자책, 그리고 다음 차례를 기다리는 A를 비롯한 병역거부자에 나쁜 영향을 미치지 않을까 하는 죄책감이 한데 뒤섞여 가슴에 드리웁니다. 감옥에 갇히는 평화 수감자는 제가 마지막이기만을 간절히 바랐는데, 4개월 만에 다시 나오는 대법원의 결정에 A는 어떤 마음일지 가늠하기 어려웠습니다. 병역거부자는 어떤 길로 가도 공간과 시간의 감옥에 갇힌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았습니다. 그래도 저는 A가 대체복무자가 돼서 저와는 다른 길로 향하길 바랍니다. 그가 새로이 열어젖힐 길이 평화적 신념을 지키기 위해 용기를 내는 청년에게 기회가 될 세상을, 평화를 앞당길 수 있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