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루카(Luca)
제작연도 2021
제작국 미국
상영시간 95분
장르 애니메이션, 모험, 판타지
감독 엔리코 카사로사
출연 제이콥 트렘블레이, 잭 딜런 그레이저, 엠마 버만, 사베리오 라이몬도
개봉 2021년 6월 17일
관람등급 전체 관람가
월트디즈니컴퍼니 코리아
급속한 기술발달의 수혜는 여러 분야에서 목격된다. 영화 산업도 예외는 아니다. 컴퓨터그래픽과 관련한 특수기술 분야, 그중에서도 3D 애니메이션 부분의 발전은 하루가 다르게 급격하다. 기술적 상향 평균화와 신진 제작사들의 두각으로 경쟁이 치열해지다 보니 결국 작품의 성패를 좌우하는 핵심요소는 이야기를 다루는 ‘정서’와 ‘감성’이라는 원론적 기준으로 회귀하는 양상이다. 더구나 최근 들어 꾸준한 사회적 논쟁으로 이어지고 있는 정치적 올바름이나 젠더 및 다양성 이슈 등으로 인해 경쟁과 고민의 양상이란 더욱 복잡해졌다. 이런 애니메이션계의 지각변동은 근래 공개된 디즈니 픽사 작품들에서 더 극명하게 목격되고 있다.
3D 애니메이션 업계의 최고로 인정받고 있는 ‘픽사 애니메이션 스튜디오’가 올 초 공개한 <소울>에는 픽사 영화 최초로 흑인 주인공이 등장했다. 단순한 외모뿐 아니라 재즈 뮤지션의 열망을 갖고 있는 주인공과 주변의 다양한 요소를 통해 흑인문화를 적극적으로 수용하고 있다. 아이들이 보기에는 다소 어려울 수 있다는 평가와 코로나19 사태의 한계에도 국내에서만 204만명 관객을 동원하며 크게 성공했다. 뒤이어 3월 픽사와 별개로 디즈니가 독자적으로 내놓은 <라야와 마지막 드래곤> 역시 디즈니 최초의 동남아시아가 배경인 영화로 기록됐다.
디즈니·픽사의 최신작 <루카> 역시 이탈리아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표면적 설정을 넘어 다양한 부분에서 지역의 자연·문화적 특색을 부각시킨다.
보편적 성장영화 이상의 논쟁적 은유
바닷속에 사는 소년 루카와 그의 일족은 지상 사람들에게 ‘바다괴물’이라 불린다. 하지만 루카에게는 바다 밖 세계와 인간이 두려움의 대상이다. 어느 날 루카는 스스로 지상세계에 빠삭하다고 자부하는 외톨이 동족 알베르토를 만나면서 우정을 쌓는다. 시간이 지나면서 커져만 가는 바다 밖 세상에 대한 호기심은 두 소년을 숙명적인 모험의 길로 이끈다.
내용만 놓고 보면 세상에 차고 넘치는 성장영화의 궤적을 고스란히 답습하는 것 같다. 자신을 가두고 있는 세상의 삶에 회의를 느껴 탈출을 꿈꾸던 주인공은 마침내 기회를 맞이하고 고난과 위기를 극복하며 새롭고 낯선 세상에 적응해간다.
귀여운 캐릭터 디자인과 따뜻한 작화는 관객들을 더욱 방심하게 만든다. 사건의 전개로만 봤을 때는 후반부로 치달으며 조급해지는 느낌을 지울 수 없어 전체적으로 완급조절에 실패했다는 느낌도 받게 된다.
하지만 이 작품을 평가하는 데 변수가 될 결정적 요소는 다른 지점에 있다. 미묘한 상징과 관계의 은유는 <루카>가 보편적인 성장물 이상의 논쟁적 담론을 품고 있음을 노골적으로 드러낸다. 아마 이전까지 상업 애니메이션에서는 볼 수 없었던 최초의 시도로 보이는데, 그것이 보수적인 꿈과 환상의 대명사 ‘디즈니’의 세계 안에서 발현됐다는 사실이 더욱 놀랍다. 과연 관객들에게는 어떻게 읽히고 평가를 받게 될까.
재패니메이션을 동경한 감독의 신세계
이 영화는 ‘삶을 변화시키는 우정의 힘과 자신이 누구인지 찾아가는 유년시절에 보내는 러브레터’라고 말하는 이탈리아 출신의 엔리코 카사로사 감독은 자신의 과거에서 이야기의 영감을 얻었단다. 작품을 만들며 어릴 적 즐겨보았던 이탈리아 고전영화와 일본 애니메이션에서 많은 영감을 받았노라 고백하는데, 특히 일본을 대표하는 애니메이션 제작사인 ‘스튜디오 지브리’와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작품을 좋아한다고. 지브리 작품의 특색이라 할 수 있는 경이로운 판타지와 따뜻한 유머감각은 창의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고 한다.
감독은 <카> 스토리 아티스트를 시작으로 <업>, <라따뚜이>, <코코>, <인크레더블 2>, <토이 스토리 4> 등 다양한 디즈니·픽사 작품들에 참여해왔다. 하지만 공식적 연출작품은 2011년 만들어진 7분짜리 단편 <달>이 유일하다. <달>은 2012년에 장편영화 <메리다와 마법의 숲> 개봉 당시 본편 상영에 앞서 함께 상영되며 널리 알려졌는데, 84회 아카데미 시상식에 단편 애니메이션 후보로 선정되기도 했다.
아쉽게도 이번 작품 <루카>에는 본편에 앞서 상영되는 단편영화가 없다.
ⓒPixar (단편 애니메이션 <달>)
과거 할리우드에는 영화를 상영하기 전(마치 코스요리의 애피타이저처럼) 본편과는 별개의 단편영화를 상영하는 관례가 있었다. 이런 추억을 소환하듯 픽사 스튜디오 작품들도 본편 상영에 앞서 단편 애니메이션을 공개해왔다. 동시상영이라기엔 아쉽고, 보너스라기엔 풍성한 단편들은 그 자체만으로도 한편의 작품으로 평가받기에 부족함이 없는 완성도와 재미를 선사한다.
짧지만 굵은 인상을 남기는 이런 실험적 단편작품들의 효용성은 여러모로 크다. 관객들에게 공짜 영화를 하나 더 봤다는 기분을 줘 관람의 만족도를 높이는 것은 기본이다. 반면 제작사 입장에서는 이런 관객들의 반응을 관찰해 차기 작품에 적극적으로 반영할 수 있을 뿐 아니라 가능성 있는 작가들의 재능을 검증하는 중요한 관문으로 활용한다. 실제로 이런 단편 테스트(?)에서 좋은 평가를 받은 뒤 바로 장편 연출을 맡은 경우가 적지 않다.
단편 <원 맨 밴드>를 연출한 마크 앤드류스는 장편 <메리다와 마법의 숲>을, 단편 <메이터와 유령>으로 데뷔한 댄 스캔론은 이후 장편 <몬스터 대학교>와 <온워드: 단 하루의 기적>을 연출했다. <굿 다이노>로 디즈니·픽사 최초의 동양인 출신 감독으로 기록된 한국계 피터 손 감독 역시 단편 <구름 조금>으로 주목받았다. 단편 <잭-잭의 공격>의 브래드 버드는 장편 애니 <라따뚜이>의 성공으로 극찬을 받은 후 <미션 임파서블: 고스트 프로토콜>, <투모로우랜드> 등의 실사영화까지 세를 확장했다.
픽사는 2019년부터 ‘스파크쇼츠(SparkShorts)’란 이름의 단편 프로젝트를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사내의 아티스트들끼리 팀을 이뤄 한정된 예산과 기간 안에 단편영화를 만들어 공개하는 형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