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지금 행복한가. 행복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행복에 대해 생각하는 건 우울의 전조(前兆)다. 기쁨의 한가운데서는 행복을 떠올리지 않는다. 지금 행복하지 않은 게 분명한데 그럼 어떻게 해야 할지 막막할 때, 우리는 행복을 생각한다.
행복이란 뭘까. 심리학자 대니얼 길버트가 2006년에 낸 <행복에 걸려 비틀거리다>에 따르면, 행복이란 단어는 다양하게 쓰여왔다. 감정적 행복, 도덕적 행복, 평가적 행복 같은 거다.
지난 2013년 가수 조용필 19집 앨범
감정적 행복이란 느낌이다. 정신분석학자 프로이트는 인간이 삶 속에서 얻고자 하는 것, 예를 들어 쾌락 같은 것을 행복이라고 봤다. 소크라테스를 비롯한 철학자들은 행복을 바르고 도덕적이고 보람 있고 충만한 삶을 통해 얻을 수 있는 특별하고 좋은 느낌이라고 봤다. 심리학자들은 행복의 감정과 평가의 차원을, 철학자들은 감정과 도덕의 차원을 중시했다.
길버트는 이 감정적 행복이 주관적 경험이라는 점을 강조한다. 어떤 경험이 더 행복하고 덜 행복한지를 알기 어렵다. 그럼에도 행복의 측정과 평가를 시도할 수 있다고 그는 주장한다.
미래를 상상하는 동물은 오직 인간
행복을 측정하려면 섬세한 접근이 필요하다. 주관적 경험에 대한 관찰과 측정은 모호할 수 있음을 수용하고, 개인의 자기 보고를 측정치로 삼아야 한다. 그리하여 무수하게 많은 보고를 통해 오류를 줄이는 확률로서의 행복을 받아들일 수 있다.
<행복에 걸려 비틀거리다>가 정작 주목하는 것은 다음의 질문이다. “왜 우리는 무엇이 우리를 미래에 행복하게 만들어줄지 모르는 것일까?”
길버트에 따르면, 인간만이 미래를 상상하는 동물이다. 인간이 매일 생각하는 것 가운데 12퍼센트가 미래에 관한 거다. 미래에 대한 상상은 불쾌한 사건을 미리 예견해 그 영향을 최소화하고, 스스로를 준비시킨다. 우리 인간은 미래에 대한 통제의 강한 열망을 갖는다. 뇌는 우리가 경험할 것을 통제하고 싶어하며 거기서 즐거움을 느낀다.
문제는 우리 뇌가 결점을 갖고 있다는 거다. 뇌는 경험을 몇가지 중요한 실마리로 압축해 저장한다. 그리고 나중에 기억해낼 때 이걸 재조합해 내놓는다. 이 과정에서 모르는 사이에 ‘채워넣기’가 이뤄진다. 더 큰 문제는 뇌가 빠뜨리는 내용이다. 우리는 과거를 상세히 기억하지 못하고 현재를 자세히 보지 못하는 것처럼 미래를 세부사항까지 상상할 수 없다. 그리고는 상상 속에 빠뜨리는 것을 실제로 일어나지 않을 것처럼 생각한다.
또 우리는 현재를 통해 과거와 미래를 바라보는 ‘현재주의’를 벗어날 수 없다. 과거가 여기저기 구멍 뚫린 벽이라면, 미래는 큰 구멍 자체다. 과거가 현재에 의해 조정되는 거라면, 미래는 현재에 의해 창조되는 거다.
거기에다 우리는 합리화의 달인이다. 많은 선행 연구들이 사람들은 자기의 것이 되면 더 좋게 평가한다는 걸 보여준다. 뭔가를 사면 사기 전보다 더 좋아하게 된다. 대학에 들어가면 그 대학을 더 좋아하게 된다. 우리는 많은 해석 가운데 자신에게 유리한 것을 찾아내는 데 탁월하다.
“우리 스스로에게 동기를 부여하기 위해서는 세상을 긍정적인 방향으로 해석할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는 현실 없이도 살 수 없고, 착각 없이도 살 수 없다. 그것은 각각 나름대로의 목적을 수행하고 서로의 한계점을 보완해준다.”
길버트가 강조하려는 바는 우리 인간이 현실에 크게 매어 있는 동시에 합리화라는 착각을 동원해 살아간다는 점이다. 특히 착각은 불행에 대항해 우리 마음을 보호하는 일종의 ‘심리 면역체계’다. 이 심리 면역체계는 부재해도 과도해도 곤란하다. 심리 면역체계가 없다면 불행에 맞서 스스로를 지키기 어렵다. 심리 면역체계가 과도할 경우에는 현실을 올바로 파악하기가 힘들다.
김영사
행복을 이렇게 볼 수 있다면, 행복을 대체 어떻게 찾을 수 있을까. 길버트가 함축적으로 제시하는 것은 두가지다.
먼저 다른 사람의 실제 경험을 주목해 자신의 미래 경험을 예측하는 거다. 내가 내일 어떻게 느끼는지는 다른 사람이 오늘 어떻게 느꼈을지로부터 도움을 받을 수 있다. 예를 들어, 어떤 식당이 맛있을지 예측하는 데는 그 식당의 메뉴보다 그 식당에서 실제 식사한 사람들의 평가가 도움이 된다. 다른 사람들의 행복을 통해 나의 행복을 찾을 수 있다.
타인의 행복으로부터 배울 수 있어
그런데 문제는 우리가 이러한 통찰을 잘 받아들이지 못한다는 점이다. 그 까닭은 누구나 자신을 특별한 존재로 생각한다는 데 있다. 길버트는 우리 인간이 그렇게 잘난 존재가 아니라고 주장한다. 평균적인 존재라고 강조한다. 이러한 사실을 냉정하게 받아들인다면, 우리는 다른 이들의 행복으로부터 더 많은 행복을 배울 수 있다고 조언한다.
행복한 사람은 행복에 대해 묻지 않는다. 행복이 뭔지를 묻는 이들은 지금 행복하지 않기에 행복에 대해 질문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이런 질문을 던진다는 것 자체가 미래의 행복에 대한 희망을 아직 포기하지 않았다는 것을 의미한다.
<행복에 걸려 비틀거리다>에서 내가 배운 것은 뇌의 노력이다. 세상은 끝없이 변하고, 그래서 모두 알기 어렵다. 뇌는 없는 걸 채워 넣으면서까지 어떻게든 세상을 이해하려고 노력한다. 심리 면역체계는 또 다른 깨달음이다. 좋은 기분을 유지시켜 절망하지 않고 상황에 대처할 수 있도록 한다는 것은 설령 그게 착각이라 해도, 삶에 새로운 희망을 선사한다. 착각하고, 그것을 정정하고, 그리고 다시 착각하면서 우리 인생은 앞으로 나아가는 것일 게다.
<행복에 걸려 비틀거리다>는 막연하게 생각했던 것을 다시 한 번 과학적으로 확인시켜준다. 우리 인간은 불완전하고, 완벽한 예측이란 불가능하다. 스스로 완전하다고, 모든 걸 예측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그만큼 우리는 행복해지기 어렵다. 살아가면서 우리는 자신의 부족함을 깨닫게 되고, 예상했던 일들은 적잖이 다른 방향으로 진행되니까 말이다.
길버트가 전하려고 했던 것을 어느 정도 자각하게 되는 나이가 오십이 아닐까. 스스로 돌아보면, 지난 시간이 행복했던 것 같기도 하고, 그렇지 않았던 것 같기도 하다. 이런 양가감정을 실감하는 나이가 100세 인생의 절반이지 않을까.
분명한 건 남은 인생을 지난 인생보다 더 행복하게 살고 싶다는 마음이다. 길버트의 충고대로 자신을 낮추고, 다른 이의 경험에 마음을 활짝 열면 행복해질까. 왠지 그럴 것 같다는 확실한 예감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