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적한 시골에 잘 지은 집을 보면 왠지 부럽다. 머릿속으로 나도 볕이 잘 드는 집을 한번 지어본다. 고즈넉한 마당은 어떨까. 가을 아침 마당에 서면 찬 공기가 서늘하게 온몸을 감싸는 건 어떨까.
오십을 넘긴 후의 상상이다. 젊었을 때는 친구들을 만나 집이 왜 이렇게 비싼지, 어느 동네가 아이 키우기 좋은지 같은 얘기를 했다. 나이를 먹으면서 친구들과 가끔 시골에 집 짓는 이야기를 한다. 단행한 사람은 없다. 아이들이 집을 떠나가고 있더라도 아직 도시에서의 생업으로 바쁜 탓이다.
집이란 뭘까. 건축가 서현은 집이란 우리가 돌아갈 곳이라고 말한다. 사진 위쪽부터 문추헌, 담류헌, 건원재 /효형출판
우리는 아파트에 적응한 세대다. 남들이 지어놓은 규격에 형편껏 삶을 맞추며 산다. 그러다 집 짓는 얘기를 나누면 동네 친구들과 놀던 집 앞 골목이나 집 뒷동산이 그리워진다.
서현의 <내 마음을 담은 집>(2021)은 집을 짓는 이야기다. 그것도 각자의 형편에 맞춘 작은 집 3채를 짓는 이야기다. ‘작은 집의 건축학 개론’이 그 부제다.
서현은 건축학자이자 건축가다. 공공 건축가로 서울 가락시영아파트 재건축 사업에 참여했다. 조 단위 사업비를 가진 대형 기획이었다. 그러다 한 은퇴한 간호사를 만났다. 간호사는 5000만원으로 집을 지을 계획이었다. 이 낙차가 내겐 참 아득했다. 서울에 지어진 쾌적한 새 아파트. 많은 사람의 꿈이다. 평생을 달려 근사한 보금자리를 갖고 이젠 됐다고 할 수도 있다. 하지만 동시에 5000만원의 예산으로 시골에 짓는 작은 집. 이것도 당당한 꿈이다. 15평의 집을 짓고 이젠 됐다고 할 수도 있는 거였다.
건축가 서현은 집을 지을 사람을 건축주라고 부른다. 네팔 사람들을 돕는 간호사를 보며 그는 자신에게 건축주가 됐다고 말한다. 그런데 건축가가 마음을 쓰는 건 건물이 아니라 사람이었다. 건축주가 어떤 집을 짓고 싶은지, 그 집에서 어떤 삶을 살고 싶은지, 그래서 그가 어떤 사람인지가 서현에겐 중요하다.
서현의 이야기가 내겐 뜻밖이었다. 몇평인지, 몇층인지, 가격이 얼마인지, 어느 동네인지가 아니라 사람이 중심이란 게 이렇게 신선하다니. 이 첫 번째 집 이름은 건축주 이름에서 글자를 따온 문추헌(文秋軒)이다. 충청북도 충주시에 있는 집이다.
담류헌(談流軒)은 두 번째로 나오는 집 당호다. 경기도 파주시에 있다. ‘이야기 담’, ‘흐를 류’, 그러니까 이야기가 흐르는 집이다. 건축가는 설계를 의뢰한 건축주에게 어떤 집에서 살고 싶은지 물었다. 건축주 부부는 꿈이 같았다. 아들만 둘 있는 집이었다. 아들들은 학교를 마치면 친구들과 우르르 집에 돌아온다. 아이들이 만화영화를 큰 소리로 틀어놓고 보고 있으면 어느새 아이들 부모들이 모여든다. 아이들을 찾으러 온 게 아니다. 이 집에서 맥주를 마시며 놀려고 오는 거다.
효형출판
이처럼 이야기가 흐르고 꽃 피는 것. 이게 이 가족의 미래이자 집의 가치라고 건축가는 말한다. 정말로 어느 날 건축가가 초대를 받아 방문한 집 현관에는 아이들 신발이 수북했다. 책에 실린 신발 사진만 봐도 장난기 가득한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도시 아파트의 삶은 시끄러움을 허락하지 않는다. 건축주 부부는 더 이상 두 아들에게 잔소리하고 싶지 않은 마음으로 건축가를 찾아왔다고 한다. 아이들 키우면서 소음을 내는 집도, 그 소음을 당하는 집도 아파트에선 참 괴롭다.
건축가 서현이 700건의 주거 사례를 모아 그려내는 아파트 생활이라는 게 흥미롭다. 아파트 평면도는 딱 주어진 전용 면적비, 남향, 맞통풍, 공사비를 만족시킨다.
아들과 딸이 있는 4인 가족이 방 3개의 아파트에 산다고 상상해보자. 일단 햇빛이 잘 들고 입구에서 가장 먼 안방이 있다. 그 집의 최고 권력자가 산다. 대개 부모인데, 가끔 권력 전도가 일어난다. 수험생이 생겨 양보하거나, 자녀 중 한명이 가계를 책임지는 경우 안방이 양도된다.
부모 사이에 권력 분할이 이루어지면 주로 남편이 안방에서 밀려난다. 남편은 소파 앞에 자리를 잡거나 여유가 있으면 서재를 얻는다. 아들은 현관 옆에 놓인 문간방을, 딸은 안방과 가까운 방을 얻는다. 왜냐고 물으면 도둑이 들 때 가족을 지켜야 한다고 답한다. 서현은 여기서 현관 외부에 위험이 상존한다는 한국인의 생각을 읽어낸다.
서현의 흥미로운 아파트론은 더 있다. 흔히 이웃과의 소통 단절이 아파트 같은 공동주택의 문제로 지적됐다. 하지만 익명을 전제로 한 설문조사에서는 이웃으로부터 간섭받지 않고 사는 주거에 대한 수요가 굉장히 높았다.
아파트의 경제·사회적 가치는 위풍당당하다. 아파트는 사두면 돈이 된다. 또 최고로 효율적인 공간 분할과 안전을 보장하는 주거 형태다. 그런데 어떤 사람들은 고생을 무릅쓰고 도시의 아파트를 벗어나 시골에 집을 짓는다.
“사람이 집을 짓는 이유는 돌아갈 곳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 ‘집’이 담는 것은 밥 먹고 잠자는 일상일 수 있다. 그러나 ‘좋은 집’은 그곳으로 돌아가는 사람의 마음을 담는 공간이다.”
이 구절을 읽으면서 정말 마음이 흔들렸다. 집에 밥 먹고 잠자는 것 이상을 바라면 사치일까. <내 마음을 담은 집>에 나온 작고 아름다운 집을 보면 꼭 그렇지는 않을 것 같다. 마음을 담을 집을 짓고 싶은 사람들이 있다. 그 마음을 궁금해하고 담으려는 건축가도 있다. 그렇게 건축주는 물론 건축가의 마음까지 집에 담겼다.
세 번째 집은 건원재(乾圓齋)다. 하늘이 동그란 집이라는 뜻이다. 중정의 동그란 하늘 사진을 보고 있노라면 지금 내가 사는 아파트가 정말 답답하게 느껴진다. 건축가는 이 집 중정 벽면에 계절마다 다양한 빛의 풍경을 선사했다. 건축가의 의도와 사계절의 자연이 만나 만들어내는 놀라움이었다. 건원재는 충청남도 공주시에 있다.
아직 도시의 생활을 떠날 마음의 준비가 돼 있지 않다. <내 마음을 담은 집>에서 만난 작은 집들은 나름 인상적이지만, 내겐 여전히 먼 꿈이다. 그럼에도 내가 열심히 읽은 까닭은 건축가 서현과 세 집 건축주들이 보여준 집에 대한 생각에 있다. 집이란 뭘까. 서현은 집이란 우리가 돌아갈 곳이라고 말한다. 나이가 들어갈수록 집에 머무는 시간이 길어진다. 세상일은 점점 더 작게 느껴지는데 집은 점점 더 크게 느껴진다. 나도 언젠가는 집에 마음을 맞추지 않고 마음에 맞춘 집을 나에게 선물할 수 있을까. 내 마음이 돌아가 쉴 수 있는 집을 상상하는 게 요즘 점점 더 즐거워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