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대기업 집단 지정 최대 관심… 총수 바뀌면 계열사 범위 달라져
매년 5월에 열리는 공정거래위원회 연례행사가 있다. 자산총액 합계액이 5조원 이상인 곳은 공시대상 기업집단으로, 10조원 이상은 상호출자제한 기업집단으로 각각 지정하는 일이다. 한 해 기업 순위가 얼마나 바뀌었는지, 새로 포함된 곳과 빠진 곳은 어디인지 언론의 관심이 집중된다.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오른쪽) / 현대차 제공
올해 대기업 집단 지정의 최대 관심은 단연 현대자동차그룹의 동일인 변경 여부다. 이미 몇해 전부터 정의선 현대차회장이 경영 전면에 나서면서 현대차의 승계는 ‘정해진 미래’였다. 그럼에도 관심이 쏠리는 이유는 동일인 제도에 한국 특유의 ‘총수 중심’ 재벌문화가 고스란히 담겨 있기 때문이다.
동일인 변경은 왜 중요할까
최은진 국회입법조사처 입법조사관보는 2019년 발표한 ‘공정거래법상 동일인 지정제도의 현황’에서 “동일인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우리나라 기업집단(재벌)의 경제력집중 형성과정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경제 개발 초기, 한국은 소수의 기업을 집중적으로 지원하는 이른바 ‘불균형 성장정책’으로 독과점적 지위를 보장했다. 재벌은 새로운 시장으로 지배력을 확장하면서 몸집을 불렸다. 그 과정에서 적은 자본으로 다수의 계열사를 지배하고 이를 세습하기까지 하면서 특정 개인에게 권한이 집중되는 ‘소유 집중’ 현상이 발생했다. 최 입법조사관보는 “기업집단을 사실상 지배하는 총수를 지정하고 공개해 총수일가를 통한 복잡한 소유·지배구조 관계를 억제하고자 했다”며 동일인 제도의 도입 배경을 설명했다.
기업들도 동일인 변경에 촉각을 곤두세운다. 단순히 총수가 바뀐다는 상징적인 변화를 넘어 규제에도 변화가 생기는 만큼 이에 대비해야 하기 때문이다. 가장 눈에 띄는 변화는 계열사 범위다. 공정거래법은 동일인 관련자를 동일인의 배우자, 6촌 이내의 혈족, 4촌 이내의 인척으로 규정한다.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이 동일인으로 지정되면 당장 정의선 회장의 장인이 사실상 지배하고 있는 삼표가 계열사로 새로 편입된다. 계열사로 편입된 삼표는 총수일가 사익편취 규제(총수일가 지분 기준, 상장사 20%, 비상장사 30%) 대상이 된다. 정의선 회장의 장인인 정도원 삼표회장은 ㈜삼표의 지분 81.9%를 소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현대차 입장에서는 삼표가 계열사로 편입되는 것은 부담이다. 삼표는 이미 원자재 납품 거래를 하면서 실질적 역할 없이 중간에서 수수료를 받는 이른바 ‘통행세’를 챙겼다는 의혹을 받고 2019년 공정위로부터 현장조사를 받기도 했다. 이 때문에 재계 안팎에서는 삼표가 계열사로 편입되는 시점에 맞춰 친족분리를 시도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친족분리는 기업대표가 친인척이지만 실질적으로 아무런 관계 없이 별개로 경영되는 경우에 가능하다.
현대차그룹의 동일인이 바뀌더라도 ‘어떤 기준에서 동일인을 지정하고, 또 변경할 것인가’라는 질문은 여전히 남는다. 혼란은 ‘동일인’ 제도 자체가 모호하고 자의적이라는 데서 비롯된다. 동일인 제도는 1986년 공정거래법 제정 이후 첫 번째 개정인 1986년 12월 ‘경제력집중 및 기업집단”이라는 용어가 법령에 추가되면서 도입됐다. 그러나 현행법에서도 동일인 지정 기준에 대한 구체적인 요건이 제시되지 않고 있다. 2018년 당시 공정위원장이었던 김상조 청와대 정책실장은 2018년 대기업 집단 지정 브리핑에서 “현행법에는 (동일인 지정 기준)에 관해서 명확한 정의 규정은 없다”며 “법령에 정해진 계열사 편입 요건에 따라 동일인을 지정 또는 변경한다”고 말했다.
이는 제도의 예측 가능성을 떨어뜨리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 2018년 당시 공정위는 삼성그룹 동일인을 이건희 회장에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으로 변경하면서 “이건희 회장의 와병 이후에 이재용 부회장이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을 주도했고 주요 임원 교체, 미래전략실 해체와 같은 주요 의사결정을 했다”고 했다. 계열사를 지정할 때 판단하는 두가지 요건 중 하나인 ‘지분 요건’에는 변화가 없었지만 주요 임원의 선·해임, 그룹 조직 변경, 사업구조의 변화 등과 관련해 영향력을 행사하는 ‘지배력 요건’에는 변화가 있었다고 본 것이다.
같은 잣대, 엇갈린 결과
2019년 정의선 회장으로 동일인 변경은 충분히 예상 가능한 시나리오였다. 당시 정의선 회장은 현대차 지배구조 개편의 결정적인 역할을 할 현대모비스와 현대글로비스 분할합병안을 철회하는 결정을 직접 내렸다. 그룹 내 상징성이 큰 현대차와 현대모비스 대표이사로 취임한 뒤, 주요 투자 결정과 임원 선임 등에 직접적인 영향력을 행사했고, 컨트롤타워 역할을 하는 기획조정실을 대폭 축소하는 등의 조직 개편도 주도적으로 추진하기도 했다. 기존 동일인이 수년째 이사회 등 공식석상에서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점이 지속됐다는 공통점도 있다. 공정위 판단은 달랐다. 공정위는 “건강 소견서와 자필서명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동일인을 정몽구 현대차그룹 명예회장으로 유지하는 것이 맞다고 판단했다”며 동일인을 그대로 유지했다.
공정위가 동일인을 지정할 때 의사의 건강 소견서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것은 한국 특유의 폐쇄적인 재벌문화 영향도 있다. 공식 직함 없이 임원 등을 통해 간접적으로 영향력을 행사하는 재벌 특성상 총수의 건강상태에 촉각을 세울 수밖에 없다. 2018년 국회에서도 독립적으로 사리를 분별하거나 경제활동을 하기 어려운 경우는 동일인이 될 수 없다는 내용의 공정거래법 개정안이 발의되기도 했다. 당시 의식불명 상태로 경영에 관여하기 어려운 이건희 삼성 회장 대신 이재용 부회장을 동일인으로 올려 공정거래법상 규제를 받도록 하자는 취지였다.
재벌 규제의 출발점이 되는 동일인 지정은 중요한 문제다. 의사결정권자는 따로 있는데 다른 사람을 동일인으로 지정하게 되면 규제에 틈이 발생할 수 있다. 특히 경영권이 3·4세로 승계되는 시점에 동일인 지정 결정은 복잡한 고차 방정식이 됐다. 공정위도 동일인 제도의 손질 필요성에 대해 공감하지만 유연하게 대응하기 위해 구체적으로 요건을 규정하는 것에 대해서는 회의적인 입장이다. 그러나 유연한 대응이 자칫 기업에 동일인 지정을 떠넘겨 규제의 틈이 발생하는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다. ‘일관되고 구체적으로 요건을 정하는 것이 오히려 기업의 예측 가능성을 높여줄 수 있다’는 고민을 공정위도 해야 하는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