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세 시대가 열린 걸까. 린다 그래튼과 앤드루 스콧이 내놓은 <100세 인생>(2016)에 따르면 그렇다. 오늘날 선진국의 기대여명은 80~85세로 추정되지만, 코호트 분석으로는 100세가 넘는다. 우리나라의 경우도 2019년 0세의 기대여명이 83.3세이니 100세 시대를 눈앞에 두고 있다.
서울 종로 송해길을 걷고 있는 노인들 / 이석우 기자
50세면 이제 절반에 왔을 뿐인데, 100세 시대의 남은 절반이 어떨지 생각하면 막막하다. 나만 아니라 모두 처음 가보는 길 아닌가. 책에 따르면, 100세 시대 삶의 기획은 20세기에 확립된 교육, 직업, 퇴직이란 3단계의 삶과 달라져야 한다.
이 책에는 1945년생 잭, 1971년생 지미, 1998년생 제인이라는 가상인물이 나온다. 잭은 42년을 일했고 65세 퇴직 후 기간은 8년이었다. 연금을 퇴직 전 소득의 50%로 잡으면 매년 소득의 4.3% 저축으로 충분했다. 기대여명과 국가·회사의 지원을 고려하면 3단계 삶의 모델이 딱 맞았다.
길어진 수명과 변화된 세계
지미의 기대여명은 85세다. 44년을 일하고 퇴직 후 20년을 산다. 잭과 같은 연금을 받으려면 지미는 매년 소득의 17.2%를 저축해야 한다. 슬슬 3단계 삶의 모델이 어려워진다.
제인의 기대여명은 100세다. 일하는 기간이 44년이고 퇴직 후 35년을 산다. 잭과 같은 연금을 받으려면 매년 소득의 25%를 저축해야 한다. 저축률 10%로는 80대까지 일을 해야 한다. 이 정도면 3단계 모델로 삶을 유지하기는 불가능해진다.
문제는 더 있다. 많은 사람은 길어진 삶의 재정문제 해법으로 절약, 주택 줄이기, 투자 등을 생각하지만, 현실은 녹녹지 않다. 퇴직 이후 의료비가 많아질 수 있고, 낮은 소비에 적응하기 어려울 수 있다. 또 주택매도는 생활 수준의 하락을 의미하고, 높은 수익률은 높은 위험을 감수할 때만 가능하다.
변한 게 수명만이 아니다. 일의 세계 또한 급격한 변화를 겪고 있다. 예를 들어, 정규직이나 파트타임 일자리를 갖지 않고 과제별로 소득을 올리는 ‘긱이코노미’, 물건을 소유하지 않고 서로 빌려 쓰는 ‘공유경제’ 등이 나타났다. 인간의 일자리를 대체할 가능성이 높은 인공지능과 로봇의 등장은 일의 세계를 근본적으로 바꾸어놓고 있다.
이러한 현실에 대해 <100세 인생>은 이제까지 3단계로 맞추어진 삶의 경로를 새롭게 재구성해 나가야 한다고 주장한다. 길어진 수명과 변화된 세계에 맞서는 개인의 전략으로는 다른 게 필요하다.
<100세 인생>에 따르면, 행복을 얻기 위해선 유형자산과 무형자산 그리고 이 둘의 조화와 시너지가 필요하다. 무형자산은 기술과 지식 같은 ‘생산자산’, 우정·긍정적 가족관계와 파트너십·개인의 건강 같은 ‘활력자산’, 자기 인식·다양한 네트워크에 대한 접근 능력·새로운 경험에 대한 개방적인 태도 같은 ‘변형자산’으로 이뤄진다. 무형자산은 그 자체가 목적인 동시에 유형자산을 벌어들이기 위한 수단이다. 또 오랫동안 경제활동을 하기 위한 핵심자원이다.
1단계에서 배운 기술과 지식을 평생 써먹기에는 그 기술과 지식의 발전이 너무 빠르다. 또한 기존의 2단계를 길게 늘이기만 한다면 활력자산과 변형자산은 계속 감소해갈 수밖에 없다. 많은 과도기를 가진 다단계로 삶을 꾸려나갈 수밖에 없게 된다.
나 같은 50대는 잭의 삶에서 제인의 삶으로 가는 길의 중간에 놓여 있다. 1971년생 지미처럼 3단계의 삶을 보고 자랐는데 세상이 바뀌어버렸다. 더 길어진 인생과 바뀐 세상에 대해 새로운 시나리오를 만들어야 한다.
<100세 인생>에는 지미에게 가능한 세가지 시나리오가 나온다. 첫 번째 3.0시나리오는 3단계 삶에 맞춘 것이다. 저축이 충분하지 않고 무형자산에 대한 투자가 부족한 저소득층 70세의 지미는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검소한 삶을 살아야 한다.
두 번째 3.5시나리오는 지미가 55세에 결단을 내려 70세까지 일할 수 있는 직장을 찾은 경우다. 큰 변화는 없지만 자산이 줄어드는 것을 조금 늦출 수 있다.
<100세 인생>이 권하는 건 세 번째 4.0시나리오다. 여기에는 두가지 경로를 상상할 수 있다.
자기에게 어울리는 삶의 시나리오
하나는 지미가 변화의 필요성을 먼저 깨닫고 스스로 변화를 모색하는 경우다. 지미는 새로운 기술 습득과 재교육, 부부 파트너십과 건강과 웰빙에 대한 관심 제고 등을 통해 무형자산 늘리기를 시도할 수 있다. 다른 하나는 좀 더 위험을 감수해 기업가로 변신하는 경우다. 45세의 지미는 계획과 준비를 바탕으로 유형자산과 무형자산을 관리함으로써 4년 후 회사를 설립할 수 있다.
이 마지막 시나리오가 풍요로운 100세 시대를 보낼 수 있는 버전이다. 100세 인생이 이 책의 부제인 ‘저주가 아닌 선물’이 되는 사례다. 그런데 나로 돌아오면 자신이 없다. 나이 드는 것만 아니라 삶에 불어오는 온갖 변화에 대처하는 것만도 버거웠다. 나는 변화가 덮쳐오기 전에 상황을 파악하고 삶을 계획해낼 수 있을까. 이에 대해 <100세 인생>은 다음과 같이 충고한다.
“우리는 수많은 새로운 롤모델이 등장하고 밀집대형이 붕괴되면서 새로운 사회규범이 만들어질 것이고, 그 속에서 사람들이 자신의 선택에 직면할 것으로 생각한다. 이러한 가운데 사람들은 자기 인식과 성찰 능력을 더욱 강화할 것이다.”
앞으로 펼쳐질 미래에 시나리오는 여럿일 수 있고, 여럿이어야 한다. 새로운 삶의 방식과 규범들이 정립될 거고, 개인은 자신의 상황에 맞춰 길을 찾아 나설 거다. <100세 인생>은 개인에게 이런 능력이 있음을 힘주어 강조한다.
100세까지 산다는 것은 더 많은 선택을 더 오랫동안 결정해야 한다는 의미다. 이 100세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나의 솔직한 소망, 다시 말해 내가 어떤 삶을 살고 싶은지에 대한 인식과 성찰이다. 얼마나 많은 돈이 필요한지, 얼마나 오래 일을 해야 하는지, 어떤 사람과 함께해야 하는지가 모두 여기에 달려 있을 거다.
<100세 인생>이 내게 안겨준 교훈은 이러한 소망의 추구에서 자기에게 어울리는 삶의 시나리오를 갖는 게 가장 중요하다는 점이다. 내게 어울리는 시나리오는 소망이 주연이고 돈과 일과 타인이 조연일 터인데, 어떻게 줄거리를 만들어가야 할까. 또 그 조연의 비중은 각각 어떻게 둬야 할까.
좋은 시나리오가 훌륭한 영화를 만든다. 설령 관객이 얼마 되지 않더라도 매력적인 시나리오를 쓰고 싶은 마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