좀비 마더
tvN 드라마 <산후조리원>이 임팩트 있게 8회 만에 막을 내렸다. 짧고 굵게 여성의 임신과 출산에 대한 담론을 버무려낸 이 이야기에 내 주변 여성 지인들이 호평을 쏟아냈다. 나도 무척 재미있게 보며, 웹툰 <아기 낳는 만화>(쇼쇼, 네이버웹툰) 같은 출산을 다룬 만화를 떠올렸다. 세레니티 조리원 엄마들에게 이후 이어질 육아의 삶을 <나는 엄마다>(순두부, 다음웹툰)나 <어쿠스틱 라이프>(난다, 다음웹툰)와 함께 상상하기도 했다. 하지만 ‘격정 출산 느와르’에 이어질 가장 적절한 장르는 역시 ‘삐그덕 육아 호러’가 아닐까. 박소림 작가의 <좀비 마더>가 바로 그 장르의 유일무이한 작품이다.
「좀비 마더」 표지 / 보리출판사
‘해진 엄마’는 어느 날 갑자기 좀비가 되었다. 번개 치는 밤, 꾸벅꾸벅 졸며 돌이 갓 지난 해진에게 줄 분유를 준비하다 몸이 이상하게 삐걱대는 걸 느꼈다. 너무 놀랐지만 우선은 해진에게 분유를 먹인다. 그런 후에야 화장실 거울에 자신을 비춰보고 깨닫는다. “창백하고 거친 피부, 뻣뻣하게 굳어버린 몸이 내가 죽었음을 말해주었다.” 이제 그는 죽은 채로 육아를 하며 살아간다. 정확히 말하자면, 굳은 신체를 삐걱거리며 집안일을 하고 해진을 키운다. ‘좀비 마더’가 된 것이다.
이제는 너무나 다양한 좀비가 대중문화 속에 만연해 있지만, 그 존재 방식과 발현 방식에 대한 설정은 이야기의 주제의식을 반영한다. <좀비 마더>가 설정한 좀비는 신체는 죽은 상태이되 정신만은 거의 그대로다. 약간의 분노조절 문제가 있을 뿐이다. 죽은 신체의 특징 가운데서는 경직이 도드라진다. 창백한 그들은 삐그덕대며 뒤뚱뒤뚱 걷는다. 결정적으로, 주로 육아를 하는 여성 좀비가 많다. 육아를 하는 여성의 삶이 말 그대로 좀비에 비견될 만한 것이라는 점을 직설적으로 드러내는 설정이다. 물론 이것은 조롱도, 냉소도 아니다. 오히려 그 현실을 사는 이들의 자기 고백이며 위무이자, 현실에 대한 고발이다.
작가는 <좀비 마더>가 “첫아이를 낳고 먹이고 재우느라 좀비처럼 생활했던 시절” 뉴스에서 만난 산후 우울증을 모질게 앓다 목숨까지 잃은 여자들로부터 비롯했다고 고백한다. 남편이 출장을 가고 없던 새벽 2시, 해진의 울음소리에 잠을 깨 달래던 해진 엄마도 그 여자들처럼 될 뻔했다. 해진이를 안고 아파트 아래로 뛰어내리는 자신에 대한 상상. 하지만 이내 정신을 차리고 자책한다. 엄마인 스스로에게서 해진이를 지켜야 한다는 생각에 그는 얼굴을 감싸 쥔다. 좀비의 그 퀭한 눈에서 눈물이 흐른다.
그런 그를 바라보는 작품의 시선은 공감이고 연민이다. ‘나도 그렇다’는 듯이 <좀비 마더> 속에는 해진 엄마 외에도 좀비가 되고 만 이웃들이 여럿 등장한다. 그들의 이야기와 해진 엄마의 이야기를 도틀어 한국사회의 가족과 육아에 대한 생각과 실천이, 관습과 문화가 질문받는다. 아이 하나를 키우는 데는 온 마을이 필요하다는데, 마을의 일을 오직 한두 사람이 맡아 있으니 좀비가 되지 않고 배길 수 있을까. 이것은 좀비를 만드는 사회다.
‘삐그덕 육아 호러’라고 썼지만, ‘호러’는 단순한 장르가 아니다. 사회적으로 구성되고 부과된 압력을 좀비로 압축해 풀어낸 이 이야기는, 그것을 삶으로 아는 사람에게는 블랙코미디로 다가온다. 하지만 궁극적으로 그것은 질문이다. ‘좀비 마더’를 만들어내는 사회를 향한 물음. 엄마를 ‘죽은 채로’ 살게 하는 사회가 어떻게 ‘새로운 삶’을 만들어낼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