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그랩 오토바이 택시로 출근해 업무 중 거래처로 보낼 상품은 그랩 익스프레스 서비스를 이용한다. 점심은 그랩 푸드 주문 서비스를 통해 맛집 반미(Banh Mi) 샌드위치와 스타벅스 아메리카노를 배달시켜 먹는다. 비가 내리는 퇴근 무렵에는 그랩카를 타고 집에 가면서 그랩 마트 서비스를 통해 슈퍼마켓에서 장을 보며 하루를 마무리한다.
택시 호출 서비스인 그랩카는 베트남에서 불친절하고 불결했던 택시 문화를 급격히 바꿨다. / 유영국 제공
베트남을 비롯한 아세안 8개국 351개 도시의 시민은 하루의 시작과 끝을 그랩과 함께한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그랩에 대해 잘 모르다 보니 ‘동남아의 우버(Uber)’라며 아류 정도로 아는 경우가 많다. 말레이시아에서 택시 호출 서비스로 처음 시작한 그랩은 현재 기업가치가 140억달러(한화 16조원)로 매일 4500만명 이상이 사용하고 가입자가 1억명이 넘는 거대 기업이다. 말레이시아에서 시작한 기업이지만 그랩은 베트남 사회 전반에 다양한 변화를 이끌어내고 있다.
중산층들 오토바이 대신 차 타기 시작
베트남에는 대중교통이 부족해 오토바이 없이는 생활하기가 여간 불편한 것이 아니다. 시내버스는 매우 부족하다. 전철과 지하철은 호찌민에서는 한참 공사 중이다. 하노이는 내년 개통을 앞두고 있다. 호찌민이나 하노이 같은 대도시로 유학을 온 지방 출신 학생들은 빠듯한 살림에 오토바이를 살 돈이 없어 생활하기가 매우 불편하다. 베트남에는 세옴(Xe om)이라 불리는 개인 오토바이 택시가 있다. 하지만 세옴은 주변에 항상 있는 것도 아니고 탑승 전에 가격을 협상하고 바가지요금 때문에 실랑이하는 일이 잦다. 그 때문에 현지인들도 상당히 불쾌하고 짜증 나 했다.
그러던 차에 휴대폰으로 편하게 차량과 오토바이를 호출하고 적정 금액이 사전에 고지되는 서비스가 나왔다. 바가지요금 걱정이 없어진데다 그랩이 자체적으로 프로모션을 하느라 할인쿠폰을 뿌려대니 소비자들은 환호했다.
하지만 베트남 곳곳에서는 생계 수단을 위협받은 세옴 기사들이 그랩 기사들을 집단 폭행하거나 세옴 기사들과 그랩 기사들 간에 집단 패싸움이 벌어져 사회적 문제가 되기도 했다. 시간이 흐를수록 스마트폰을 이용할 줄 아는 세옴 오토바이 택시기사들은 대세인 그랩 기사로 신분을 갈아탔다. 하지만 환갑이 넘은 기사들은 몇개월치 소득에 해당하는 비싼 스마트폰을 사지도 못하고 어떻게 그랩 기사가 될 수 있는지 몰라 생계 수단이 막막해졌다. 세옴 기사라고 해서 다 바가지를 씌우는 것도 아니었고, 성실한 한 집안의 가장도 있었지만 급격한 사회 변화로 다른 일자리를 찾아야만 했다.
개인 오토바이 택시인 세옴은 그랩에 밀려 지금은 거의 찾아보기 힘들다.
택시회사들도 발칵 뒤집혔다. 택시요금보다 50~70% 저렴한 그랩카 때문에 택시회사들이 파산하기 시작했다. 일반 택시로는 소득이 보전되지 않은 베테랑 택시기사들은 그랩카로 직장을 옮겨갔고, 호찌민의 최대 택시회사 비나선은 그랩의 약탈적인 가격정책 때문에 손해를 봤다며 소송을 걸기도 했다. 올 3월 호찌민 고등법원은 그랩이 택시회사 비나선에 48억동(약 2억4000만원)을 배상하라고 최종 판결을 내렸다.
하지만 소비자들은 택시회사에 전혀 동조하지 않았다. 베트남 택시들은 미터 조작을 하거나 엉뚱한 길로 돌아가서 바가지요금 씌우는 일이 잦은 것은 물론이고, 택시 안에 불쾌한 악취가 나거나 빈대, 벼룩이 있어 위생 불량 문제도 있었기 때문이다. 소비자의 지지를 좀처럼 받지 못하자 택시회사들은 자구책을 마련하기 시작했다. 택시 안을 청결하게 하고 오래되고 낡은 택시는 새것으로 바꾸고 택시회사 자체적인 호출 서비스 앱을 만들어 고객이 목적지까지 예상 금액을 확인할 수 있어 바가지요금 시빗거리도 없앴다.
불과 6~7년 전만 해도 베트남에서는 시내 10~20분 이동 거리에도 차멀미 때문에 차를 못 타는 사람들이 많았다. 평생을 오토바이만 타는 사람들이다 보니 자동차 타는 것이 익숙하지 않아서였다. 당시에만 해도 호찌민 시내에 돌아다니는 차 대부분은 외국인 주재원들의 기사 딸린 렌터카였고, 택시의 주요 고객 역시 외국인 관광객이나 베트남 거주 외국인들이었다.
소프트뱅크 손정의 회장이 최대주주
그랩 서비스가 시행되고 중산층들이 오토바이 대신 차를 타고 다니기 시작했다. 외국 기업이나 대기업에 다니는 여성 관리자급 직원들이나 해외 유학을 다녀온 젊은 여성 직장인들이 그랩을 선호했다. 특히 비 오는 날은 출퇴근하기 힘든데 그랩카의 인기는 더욱 치솟았다.
베트남에서는 커피 한잔, 쌀국수 한그릇에서부터 냉장고, 세탁기, 심지어 시골에서는 돼지 한두마리도 오토바이로 배달이 되는 진정한 배달의 국가이다. 저렴한 인건비 덕에 2㎞ 이내 거리까지는 배달비가 우리 돈 750원, 추가 1㎞당 250원만 내면 된다. 유로모니터에 따르면 베트남 음식 주문 및 배달시장은 2019년 3500만달러(약 400억원) 규모인데 해마다 20% 이상 성장하고 있다.
그랩카 홈페이지
지난해 그랩은 그랩푸드를 런칭하면서 공유 차량 서비스에서 음식 배달 주문까지 확장했다. 한국의 ‘배달의 민족’은 베트남 현지 2위 배달앱 베트남엠엠(Vietnammm)을 인수하면서 베트남 시장에 뛰어들었다. 베트남 배달시장은 할인쿠폰에 따라 고객들이 움직이는 치킨게임 상황이 펼쳐지고 있다.
일반 택시와 달리 공유승차 서비스를 이용하게 되면 고객이 어느 장소로 이동했는지 기록에 남는다. 이 데이터를 바탕으로 단순하게는 교통량, 방문한 지역의 상권 분석 등을 할 수 있으며, 이용한 고객의 연령·성별에 따라 세분화된 소비, 라이프 스타일을 분석할 수 있게 된다. 공유승차 서비스 업체들이 저렴한 이용요금을 내놓을 수 있는 이유가 이러한 데이터를 확보하기 위한 것이라는 것을 알 만한 사람들은 다 알고 있다.
전 세계 투자자들은 공유승차 서비스를 자율주행차, 전기자동차, 수소자동차 도입과 연결짓고 있다. 이 때문에 이들 업체의 가치를 더 높게 평가하고 있다. 현대기아자동차그룹이 3000억원, SK그룹이 800억원을 그랩에 투자했지만 수조원의 금액을 일찍 투자한 일본·중국기업들의 투자 금액에 비해 너무 적다.
현재 미국의 우버, 동남아의 그랩, 중국의 디디추싱, 인도의 올라까지 세계 빅5의 공유승차 서비스 중 4개 업체에서 소프트뱅크의 손정의 회장이 최대주주로 있다. 그리고 손 회장은 중국 최대 이커머스 몰 알리바바의 최대주주이기도 하다. 알리바바는 동남아 최대 이커머스 라자를 인수했다. 온라인 쇼핑몰과 공유승차 서비스, 그리고 배달 플랫폼까지 장악한 손 회장이 향후 전 세계 비즈니스 생태계를 어떻게 장악하게 될까. 이를 그냥 두려운 마음으로 지켜보고만 있어야 하는 것인지, 한국기업은 어떤 형태로 대응할 수 있을 것인지 무거운 마음이다.
<유영국 <왜 베트남 시장인가>의 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