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사태로 전 세계인이 재난 영화의 한 장면 같은 삶을 살고 있다. 집 밖으로 자유롭게 나가지도 못하고 일자리가 사라져 오늘 하루 먹을 것을 걱정해야 하는 상황에 있기도 하다. 이런 세계적인 재난에서 강력한 방역과 빠르게 성장하는 내수 시장 덕에 화장품 산업이 급성장하는 곳이 있다. 바로 베트남이다.
빠른 속도로 경제가 성장하고 있는 베트남은 화장품 시장도 급격히 커지고 있다. 사진은 호찌민의 최대 쇼핑몰인 사이공센터에 입점해 있는 로컬 화장품 유통매장인 뷰티박스 / 유영국 제공
베트남은 ‘넥스트 차이나’로 불리며 중국을 대체할 시장으로서 전 세계에서 각광받고 있다. 특히 한국은 지난 30년간 누적 기준 1위 베트남 투자 국가로서 베트남에 살고 있는 한국 교민과 주재원, 유학생이 약 17만명에 달한다. 베트남에 진출한 크고 작은 한국 기업이 7500개에 달하며, 한국에서 황금알을 낳는 시장으로 평가받아왔다.
베트남 한류의 열풍으로 한국 화장품이 잘 팔릴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감에 수많은 한국 화장품 브랜드가 베트남에 진출했다. 하지만 한국 제품이라는 이유만으로 물건을 사는 일은 없었고 한국에서 생각했던 것보다 베트남 화장품 시장은 작았다.
인구 감안하면 시장 확대 가능성 커
베트남의 화장품 시장이 작은 것은 대중교통이 부족한 것도 원인이다. 베트남은 지하철이 아직 없고 시내버스도 외곽 중심으로 다닌다. 오토바이를 타고 40분에서 1시간을 출퇴근한다. 베트남에 등록된 오토바이는 4600만대(2018년 기준)에 달한다. 그러다 보니 무더위로 땀에 젖고, 먼지와 매연이 달라붙어 화장을 하고 싶어도 화장을 할 엄두를 못 낸다. 설사 화장을 해도 매연을 막기 위해 쓴 마스크에 묻어버린다. 게다가 호찌민을 중심으로 하는 남부지방은 1년의 절반이 우기다. 비를 맞으면서 오토바이를 타야 하는데 화장은 여간 번거로운 일이 아니다.
독일계 시장조사 기업인 스태티스타(Statista) 자료를 보면 베트남 화장품 시장 규모는 아세안 주요 6개국 중에 가장 작다. 2019년 기준 스킨케어 부문 3억4100만달러(약 3861억원), 메이크업 부문 1억200만달러(약 1155억원) 등 모두 약 4억4300만달러 규모로 5000억원대 시장이다. 베트남보다 인구가 2700만명이나 적은 태국 화장품 시장 규모(27억34000만달러)의 6분의 1에 그친다. 그래서 그동안 우리 기업들의 기대에 비해 베트남 시장에 진출한 화장품 회사들의 결과는 썩 좋지 못했다.
하지만 베트남 시장은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경제성장의 결과다. 2010년 2150억원의 시장에서 2019년 5000억원으로 2배 이상 커졌다. 2016년 베트남에 드럭 스토어가 생기기 시작했고, 2018년부터는 현금거래만 하던 재래식 유통채널에서 신용카드 단말기를 갖춘 현대식 화장품 유통매장이 증가하기 시작했다. 2020년 통계가 나와 있지는 않지만 현장에서 직접 살펴본 베트남 화장품 시장은 코로나 확산에도 위축되지 않았다. 오히려 화장품 유통망의 현대화와 현지 기업들의 시장 참여로 시장은 더욱 발전하고 있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베트남 화장품 시장의 70%는 보따리 밀수시장이 차지했다. 그러던 것이 코로나19로 비행기 길이 끊기고 베트남 정부가 강력한 의지를 가지고 밀수 제품을 단속하면서 화장품 밀수시장이 급격히 붕괴하고 있다. 밀수 화장품만 취급하던 화장품매장들도 정식으로 수입 통관된 제품들만 판매하는 곳이 절반을 넘어서고 있다.
밀수시장 붕괴와 함께 베트남 화장품매장이 현대화되는 것도 눈여겨볼 대목이다. 베트남에서는 화장품이 우리나라 남대문 지하상가에서 보던 형태의 밀수품 매장이나 재래시장 내에 있는 허름한 가게에서 판매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2년 전부터 수도 하노이와 최대 경제도시 호찌민을 중심으로 바코드로 제품의 가격을 확인할 수 있고, 제품들을 깔끔하게 진열한 매장들이 빠르게 늘어나기 시작했다. 소비자들도 젊은층을 중심으로 직접 발라보고 품질을 확신할 수 있는 곳에서 제품을 사기 시작했다. 코로나19로 시장 환경의 변화는 더욱 빨라지고 있다.
밀레니얼세대 새로운 소비 주체로
코로나19로 본업이 힘들어진 베트남 기업들이 신규 사업으로 화장품 시장에 뛰어들기 시작하면서 판은 더 커지고 있다. 베트남 1위 정보통신기술(ICT) 기업인 FPT는 50개의 약국 체인점과 함께 ‘F-Beauty’라는 화장품 유통매장을 오픈했다. 베트남 연예인과 뷰티 블로거들도 자신의 이름을 내걸고 화장품 브랜드를 잇달아 런칭하고 있다. 베트남 유통업체들은 한국의 화장품 ODM 업체들을 통해 자신만의 브랜드를 내놓으며 시장에 진출하고 있다. 그동안 베트남 화장품 시장은 해외 기업들 중심의 사업이었는데 현지 기업들이 적극 참여하기 시작하 면서 시장이 급격히 성장하고 있다.
새로운 소비 주체로 떠오른 20대는 베트남 화장품 유통 시장을 변화시키고 있다. 1990년대생과 2000년대생들인 이들은 전쟁 직후의 궁핍함을 겪은 1970~1980년생 부모와 달리 부족함 없이 자라온 세대들로 저가 항공을 통해 해외여행을 경험하고 가짜 상품에 민감하다. 베트남 밀레니얼세대들의 등장은 한국의 90년대 X세대들의 등장과 비슷하다.
공유 차량 서비스인 그랩의 등장도 화장품 사용을 촉진하고 있다. 오토바이 대신 차를 타기 시작하니 땀과 빗물에 화장이 지워질 염려가 없어진 것이다.
한국과 베트남을 보면 화장품 시장에서 ‘평행이론’이 떠오른다. 전 세계 시장에서 선전하고 있는 K-Beauty는 불과 17년 전인 2003년께 다양한 화장품브랜드가 탄생하면서 시작됐다. 베트남에는 이제 막 연예인들을 중심으로 로컬 화장품이 탄생하기 시작하고, 화장품 중심의 드럭 스토어가 확산되고 있다. 미샤, 더페이스샵 같은 로컬 대형 화장품 브랜드의 출시가 멀지 않아 보인다.
<유영국 <왜 베트남 시장인가>의 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