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나 자신에게 꿈을 물어본 지가 언제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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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나 자신에게 꿈을 물어본 지가 언제인가

입력 2020.10.30 15:39

수정 2020.11.02 1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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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성지연(국문학 박사·전 연세대 강사)

“자아의 신화를 이루어내는 것이야말로 이 세상 모든 사람에게 부과된 유일한 의무지. 세상 만물은 모두 한가지라네. 자네가 무언가를 간절히 원할 때 온 우주는 자네의 소망이 실현되도록 도와준다네.”

저자 파울로 코엘료 / 경향자료

<연금술사> 저자 파울로 코엘료 / 경향자료

작가 파울로 코엘료가 1988년에 내놓은 <연금술사>의 한 구절이다. 이대로 믿을 수 있으면 참 좋겠다. 하지만 삶은 ‘자아의 신화’를 찾는 것같이 그럴듯한 게 아니라 고된 의무를 부과했다. 내 한 몸 먹고살고 식구들 부양하는 것만으로도 진이 빠졌다. 세상일이 참 뜻대로 안 되던데 간절히 원하면 온 우주가 도와준다니, 간절하지 못했던 나 자신을 탓해야 하는 걸까.

<연금술사>는 양치기 소년 산티아고가 보물을 찾으러 가는 이야기다. 꿈에서 한 아이가 산티아고를 이집트의 피라미드에 데려가 이곳에 오면 숨겨진 보물을 찾게 될 거라고 말했다. 그런데 산티아고 앞에 노인이 나타났다. 살렘의 왕이란 노인은 양의 10분의 1을 주면 보물을 찾으러 가는 길을 알려주겠다고 했다. 앞선 인용은 그가 산티아고에게 한 말이다.

선택이 어려운 이유는

산티아고는 선택의 기로에 섰다. 양과 보물, 익숙해진 것과 갖고 싶은 것 사이에 하나를 택해야 했다. 노인이 가르쳐준 것은 보물이 있는 곳에 도달하려면 신이 남긴 표지들을 따라가라는 것이었다. 그리고 표지들을 식별할 때 도움이 되도록 ‘예’와 ‘아니오’를 뜻하는 우림과 툼밈이라는 검은색과 흰색의 보석을 선물했다.

산티아고는 양들을 모두 팔고 아프리카로 떠났다. 하지만 피라미드로 가는 길은 쉽지 않았다. 산티아고는 가진 돈을 도둑에게 몽땅 잃어버리고 크리스털 그릇가게에 취직했다. 산티아고의 열정으로 가게는 점점 더 흥했다. 산티아고는 일년여 후 양을 살 충분한 돈을 모았다.

크리스털 그릇가게 주인의 꿈은 메카 순례였다. 하지만 그는 꿈을 실현하면 살아갈 이유가 없어질까봐 두려웠다. 가게를 떠나는 날 산티아고 가방에서 우림과 툼밈이 떨어졌다. 가게 주인의 삶의 방식이 더 나을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하던 산티아고는 살렘의 왕을 떠올렸다.

산티아고는 다시 여행에 나섰다. 피라미드로 가기 위해서는 사막을 건너야 했다. 산티아고는 오아시스에 도착했다. 산티아고는 파티마를 만나 사랑에 빠졌고, 연금술사를 만났다. 오아시스의 족장은 습격을 예고해 마을을 구한 산티아고를 고문으로 임명했다. 오아시스에서 산티아고 삶의 기반은 갖추어지는 듯했다. 하지만 연금술사는 충분한 돈을 가졌고, 사랑하는 사람이 있다는 산티아고에게 보물을 찾으러 가라고 충고했다.

산티아고는 다시 선택에 직면했다. 우주의 도움이 있어도 선택은 결국 그가 하는 것이었다. 산티아고의 여정을 중단시키는 것은 고난이라기보다 안락한 삶이었다. 양과 보물, 익숙한 것과 갖고 싶은 것 사이의 선택이었다.

[오십, 길을 묻다](31)나 자신에게 꿈을 물어본 지가 언제인가

선택이 어려운 것은 자아의 신화, 꿈, 보물을 좇는 것이 꼭 행복을 가져다주는 게 아니기 때문이었다. 맨 처음 길을 떠나는 산티아고에게 살렘의 왕이 들려주는 이야기가 있다.

한 상인이 아들을 현자에게 보내 행복의 비밀을 배워오라고 했다. 현자는 찻숟가락에 기름 두방울을 담아 한방울도 흘리지 말고 저택 구경을 하고 오라고 했다. 두 시간 후 현자는 집안의 아름다운 집기와 정원을 보았느냐고 물었다. 젊은이는 찻숟가락에 신경을 쓰느라 보지 못했다. 현자는 다시 아름다운 것들을 보고 오라고 했다. 다시 돌아온 젊은이의 숟가락은 비어 있었다.

“행복의 비밀은 이 세상 모든 아름다움을 보는 것, 그리고 동시에 숟가락 속에 담긴 기름 두 방울을 잊지 않는 데 있도다.” 현자가 젊은이에게 준 가르침이다.

무려 16년 전에 읽은 책이다. 한 소년이 꿈을 이루어 가는 아름답고 신비로운 이야기라고 생각했다. 그때라면 현자의 말에 이렇게 끌리지 않았을 것이다. 16년이나 더 늙은 지금, 눈에 띄는 것은 주인공이 결국 그 보물을 찾는지에 있지 않다. 보물을 찾으러 나서는 게 옳은 선택인지다. 과연 기름 두방울을 얹은 숟가락을 들고도 아름다운 것들을 볼 수 있는지다.

자아의 신화를 몸소 산다는 것은

네 꿈이 뭐냐는 <연금술사>의 질문은 평범한 일상을 살아가던 내게 아프게 다가온다. 나 자신에게 꿈을 물어본 지가 이 책을 처음 봤던 때만큼 오래된 것 같다. 50대의 내게도 꿈이 정말 중요한 문제일까. 이제는 꿈 같은 건 묻지 않고 그냥 살던 대로 살아도 되지 않을까.

“그들은 단지 금만을 구했네. 자아의 신화, 그 보물에만 집착했을 뿐 자아의 신화를 몸소 살아내려고 하지 않았지.” 왜 어떤 연금술사는 성공하고 어떤 연금술사는 실패하는지 묻는 산티아고에게 연금술사가 답한 말이다. 자아의 신화를 구하는 법은 자아의 신화를 좇는 데만 있지 않다는 의미일 거다.

신학교를 다니던 산티아고는 드넓은 세상을 보고 싶었다. 아버지는 돈 없이 여행하는 사람은 양치기밖에 없다고 했고, 산티아고는 양치기가 됐다. 그때 그에게 자신의 존재 의미는 여행이었다. 여행의 의미가 보물이 있는 목적지에만 있었을까. 그곳에 이르기까지 펼쳐진 드넓은 세상 역시 여행의 목적지들이었다. 그는 도착한 곳이 어디든지 마음을 열고 진심으로 임했다.

이제 ‘자아의 신화를 몸소 살아내는 것’이 무엇인지 어렴풋이 짐작한다. 보물을 찾는 것은 자아의 신화에서 부분일 뿐이다. 자아의 신화를 몸소 산다는 것은 양을 키울 때는 열심히 양을 키우고, 그릇을 팔 때는 열심히 그릇을 팔고, 사막에 도달해서는 열심히 사막에서 사는 것이다.

그리고 선택의 순간을 마주할 때 숟가락에 놓인 기름 두방울을 잊지 않는 것이다. 산티아고가 보물을 찾은 것은 스스로의 꿈을 잊지 않아서다. <연금술사>에는 여러 다른 사람의 이야기가 나온다. 꿈이 실현되는 게 두려운 크리스털 가게 주인, 꿈을 실현할 능력이 있다는 걸 모르는 팝콘 장수, 자신의 꿈을 절대 믿지 않는 병사 우두머리 등 인생의 희망 없이 사는 사람들이 그들이다. 우주가 나서더라도 두방울의 기름을 잊은 사람은 도와줄 수가 없다.

현자의 가르침처럼, 이 세상 모든 아름다움을 보되 기름 두방울을 간직할 것, 자신에게 닥친 운명에 충실하되 꿈을 잊지 않을 것, 이게 코엘료가 전하고 싶었던 삶의 연금술 아니었을까.

50대란 100세 인생의 중간기착지 정도 될 거다. 아무래도 나는 어딘가에 흘린 기름 두방울을 다시 채워야 할 것 같다. 앞으로 남은 인생에서 내게 소중한 꿈이 무엇인지를 찾아봐야겠다. 젊었을 때 품었던 꿈은 잃어버렸다고 해도, 삶에서 꿈이 꼭 하나여야만 하진 않을 거다. 새로운 용기를 갖기로 마음먹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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