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역은 언어가 다른 두 세계를 잇는 다리이다. 문화가 다르고 때론 이해가 충돌해 감정이 격해질 수 있는 사람 사이에서 진심을 이어줄 수 있길 고뇌하는 직업이다. ‘아’ 다르고 ‘어’가 다른 만큼 한 끗 차이로 생기는 오해를 막을 소통의 기술과 언어적 지식이 필수적이다. 말을 전달하는 것을 넘어 마음을 통하게 하려면 사람을 존중하고 배려하는 심성도 갖춰야 한다.
만약 힘겨운 줄다리기 협상 끝에 양쪽의 언성이 높아지고 급기야 한국 측 대표가 “영어로 실컷 욕이나 해주세요”라고 말한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국제회의 한영통역사 박소운씨는 최근 펴낸 <통역사의 일>(채륜서)에서 험악한 대화의 중간에서 감정을 걸러주는 일은 “통역사가 짊어지고 가야 할 책임의 일부”라고 말했다. 책에는 통역사가 이런 난감한 상황에 대처하는 법을 비롯해 통역사 일의 고충과 보람을 담담하게 소개한다.
지난 9월 1일 주간경향과의 전화 인터뷰에서 박 통역사는 “동시통역을 하면 신기하게 화자가 이야기할 것이라고 예측한 대로 말이 나올 때가 있다”면서 “그렇게 팀워크가 느껴지면 기분이 좋다”고 말했다. 한국에 대한 이야기를 자신을 통해서 듣고, 한국을 좋게 보게 됐다는 평가를 들을 때도 보람이 있다. “네가 말하는 걸 듣고 한국어가 참 아름답다고 느꼈다”는 말도 기억에 남는다.
통역의 현장은 대개 학문 연구와 경제 활동의 최전선이다. 자연히 배움이 뒤따르지 않으면 안 된다. 통역을 의뢰받으면 해당 분야의 전문 용어를 알고 이해할 수 있도록 공부하게 된다. 박 통역사는 “스톡홀름 증후군과 비슷할 정도로 그 분야의 공부를 하는 동안에는 그게 가장 재미있다”고 말했다. 통역사로서의 존재 가치를 인정받길 원한다면 집요하게 공부해야 하고, 그렇게 공부할 수 있는 사람이 오래간다고 강조했다.
통역사의 작업 공간은 주로 국제회의장 한쪽에 있는 작은 부스다. ‘반딧불’ 같은 조명 아래서 화장이 녹아내릴 정도로 덥고, 연사들의 말과 행동을 쫓느라 눈과 귀가 쉬 피로해지지만, 요즘은 그립다. 코로나19가 팬데믹이 되면서 각종 국제회의가 취소·연기됐기 때문이다. 그러나 코로나19는 화상회의가 활성화된 계기가 됐다. 통역사 자신은 한국에 있고, (통역을 번갈아 하면서 도움을 주고받는) ‘부스 메이트’는 영국, 행사는 미국에서 주최하는 식으로 이전에 가능할까 여겼던 원격 통역이 이뤄지는 걸 흥미롭게 지켜보는 면도 있다.
박 통역사는 최근 정보통신(IT) 분야의 일감을 많이 받는데 블록체인에서 빅데이터, 인공지능으로 업계의 트렌드가 바뀌고 있다고 말했다. 자연히 인공지능 통·번역에도 관심이 생겼다. 영국 경제지 ‘이코노미스트’의 페이스북 광고를 보면 ‘레프트’(left)가 ‘좌빨’로 자동번역된다. 육회(肉膾)를 ‘six times’로 번역하고, “나 말리지 마”를 “Don’t dry me”로 옮길 정도로 인공지능은 아직 맥락을 읽는 능력도 떨어진다.
박 통역사는 “인공지능 번역은 데이터가 충분히 축적될수록 양질의 번역을 할 수 있지만, 누군가 폄하의 의도로 (데이터를 오염시켜) 정치적으로 이용할 위험도 있다”면서 “인공지능 번역기가 어떻게 구현되고, 어떤 부분에서 기술적 구멍이 있는지를 통역사 관점, 언어학적 관점에서 살펴보고 싶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