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스크가 조금 싸졌다. 다행이라고 사려다 보니 참 헛헛하다. 올해 초만 해도 여름이 되면 나아질 줄 알았다. 최근 세 자리의 확진자 수를 보며 근심이 다시 커진다. 입술 위로 땀이 송골송골 맺히는 마스크 쓰기가 참 괴롭다. 그래도 마스크 밑으로 나만큼 땀을 흘리고 있을 사람들을 보면 고맙기도 하다. 싼 마스크보다는 마스크를 쓰지 않고 밖에 나서는 날을 기다리고 있다.
서울시 마스크 의무 착용 첫날인 8월 24일 정오 광화문 사거리에서 사람들이 건널목을 건너고 있다. / 이상훈 선임기자
우리는 사스, 신종플루, 메르스를 겪었다. 가능한 집에 머물고 마스크를 하고 손을 씻고 문손잡이를 닦아댔지만, 이렇게 길지는 않았다. 이번엔 백신이 나올 때까지 전 세계가 버텨내야 한다. 이 팬데믹이 끝나고 나서 우리가 과연 원래의 자리로 돌아갈 수 있을까. 시민의 한 사람으로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오늘부터의 세계>(2020)는 코로나19 한가운데를 정신없이 통과하는 중에 앞으로의 세계에 대한 통찰을 전한다. 언론인 안희경이 미국의 미래학자 제러미 리프킨과 법철학자 마사 누스바움, 영국의 역학(疫學)자 케이트 피킷과 철학자 닉 보스트롬, 중국의 농업경제학자 원톄쥔, 인도의 환경운동가 반다나 시바, 영국에서 활동하는 경제학자 장하준과의 인터뷰를 정리했다.
팬데믹 이후의 세계에 대한 통찰
우리가 있던 원래의 자리는 어디였을까. 리프킨에 따르면 그 자리도 그리 좋지 않다. 코로나바이러스는 사람이 박쥐 같은 야생동물을 섭취하다가 퍼진 것으로 추측됐다. 리프킨에 따르면 이번 팬데믹이 우연한 게 아니다. 리프킨은 그 원인을 기후변화의 결과에서 찾는다.
기후변화의 결과란 물순환 교란으로 인한 생태계 붕괴, 인간의 야생지역 침범, 야생동물의 이주를 말한다. 지구가 뜨거워지면 대기는 더 많은 물을 빨아들인다. 홍수나 가뭄을 겪고 산불이 일어나며 결국 생태계가 붕괴한다. 올여름 우리나라의 긴 장마도 이것 때문일 것이다. 종일 비가 추적추적 내리던 어렸을 때의 장마와는 달리 하늘 뚫린 것처럼 비가 무섭게 내린다.
서식지가 파괴된 동물의 몸을 타고 바이러스가 이주한다. 바이러스는 다시 인간의 몸을 타고 기차를 타고 비행기를 타고 전 세계로 이주한다. 이 지긋지긋한 코로나19를 벗어난다 하더라도 언제 또 다른 팬데믹이 덮쳐올지 모른다.
리프킨은 이 원래의 자리를 화석연료 시대에 진입한 2차 산업혁명의 결과로 파악한다. 리프킨은 지난 20세기에 전화, 석유, 내부연소 엔진을 이용한 물류의 두 번째 산업혁명이 일어났다고 본다. 석유와 내부연소 엔진에 기반을 둔 이 화석연료 문명은 지구온난화와 대규모 감염병, 생태계 파괴를 초래했다.
그러나 리프킨은 새로운 변화가 시작됐다고 말한다. 인터넷, 재생 에너지, 전기 및 연료전지 차량이 나타났기 때문이다. 리프킨은 이 모든 것이 인터넷을 통해 분산적인 수평통합으로 재조직화하고, 세계화가 지역 중심 세계화로 변화하는 3차 산업혁명을 주목한다. 중요한 것은 이 인프라가 공공재로 통제되어야 하고 공공의 뜻으로 운영돼야 한다는 점이다.
감염병은 모두에게 공평하지 않다. 경제학자 장하준은 신자유주의는 모든 위험부담을 약자에게 지운다고 말한다. 가난한 사람들은 밖으로 나가 돈을 벌어야 하고, 영세자영업자들은 대다수 대면 서비스 업종에 있다. 성장만이 아니라 성장의 질이, 다시 말해 성장을 얼마나 공평하게 나누느냐가 이제는 중요하다. 장하준은 지금 한국사회가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이 위기가 끝나고서도 자살률 1위, 출생률 최저, 남녀 임금 격차 최고의 현재를 바꿀 수 없다고 경고한다.
피킷은 코로나바이러스가 무엇이 중요한 가치인지를 보여준다고 지적한다. 낮은 임금으로 돌봄노동을 하고, 생필품을 배달하고, 청소를 해왔던 핵심인력들이 얼마나 중요한 사람들인지를 새삼 깨닫고 있다. 숨도 차지만 몇 시간만 써도 귓바퀴가 아픈 마스크를 쓰고 일하는 사람들 없이 사회가 유지될 수 없고 감염병을 막을 수도 없다.
메디치미디어
결국 시민으로부터 희망은 나온다
원톄쥔은 중국 농촌 마을이 독립적인 사회를 이루고 있기 때문에 마을을 폐쇄함으로써 바이러스로부터 스스로를 지킬 수 있었다고 말한다. 농촌공동체로 돌아가는 건 우리에게 너무 비현실적이지만, 이제 인류는 자신이 자연의 일부라는 사실을 되새겨야 한다.
보스트롬은 우리가 사는 이 세계가 새로운 발견이나 발명으로 쉽게 무너질 수 있다는 ‘취약한 세계 가설’을 발표한 바 있다. 그가 이번 위기에서 가장 심각한 것으로 지목하는 것은 이 취약한 세계에 맞설 수 있는 국제적 협력의 결핍이다. 한편 시바는 문제의 핵심이 ‘바이러스와의 전쟁’을 넘어서 ‘지구에 대항하는 전쟁’을 멈추는 데 있다고 주장한다. 그가 제시하는 미래는 지구와의 공존을 평화롭게 영위하는 생태 중심 세상이다.
작년에 이 기획을 시작하면서 이런 책을 다루게 될지 몰랐다. 50년을 살아왔지만, 감염병으로 사회가 이렇게 흔들릴 줄은 상상도 못 했다. 얼떨떨한 게 현실이다. 내가 살던 세계는 어떤 곳인지, 앞으로 어떤 세계에서 살아가게 될지를 알고 싶어 이 책을 집어 들었다.
누스바움은 이 팬데믹 속에서 두려움과 혐오를 넘어설 가능성을 엿본다. 미국 사회에서 과거 베트남 전쟁과 같은 위기는 사회를 양극단으로 찢어놓았다. 이와 달리 누스바움은 이번 위기가 뜻밖에도 공동체 정신을 보여주고 있다고 말한다. 바이러스에 맞서기 위해선 함께 대처해야 하기 때문이다.
팬데믹을 벗어나는 데 국가의 역할이 중요하다. 하지만 시민들의 역할 또한 중요하다. 방역당국이 마스크를 쓸 필요가 없다고 했을 때도 시민은 열심히 쓰고 다녔다. 팬데믹의 최전선에 묵묵히 자기 일을 하는 시민이 있었기에 더 큰 사회적 위기에 빠지지 않았다.
이 팬데믹은 물론 앞으로 새로운 팬데믹이 발생하더라도 그 팬데믹을 극복할 희망은 결국 시민에게서 나오지 않을까. 시민은 자연과의 공존을 모색하고, 정말 중요한 것을 생각하고, 새로운 감염병에 맞서 지탱 가능한 사회를 만들어 가려고 함께 노력할 것이다.
“우리가 죽음을 두려워하는 이유는 삶이 훌륭하고 세상이 그만큼 아름답기 때문입니다. 때로 연민과 자비 같은 사랑의 감정이 혐오만큼 강렬할 수 있다는 뜻입니다.”
누스바움의 말이다. 커다란 불안과 공포를 안겨준 바이러스가 연민과 자비의 사랑을 일깨워줄 수 있다는 건 참 역설적이다. 사랑을 말하기에는 아직 불안과 공포가 크다. 하지만 이 불안과 공포 속에서 새로운 사랑과 연대를 발견하게 된다면 그건 참 다행스러운 일일 것이다. 그러하기를 소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