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 힘들게 항암치료를 견디며 한 줄기 희망을 봤는데 코로나19 탓에 사라진다면 그 얼마나 허무할까. 그렇게 우린 바깥의 팬데믹에 그 누구보다 예민한 사람들이 됐다.
무균병동 6호실의 적막이 깨졌다. 들어온 지 얼마 안 된 입구 쪽 병상 아주머니는 작은딸이랑 얘기하느라 무척 즐거워 보였다. 그나마 아내의 병상은 3인실 가장 안쪽이었고, 가운데 환자가 소음 완충지대 역할을 해주는 게 다행이었다. 저 아주머니는 오늘 오전에는 남편이랑 집 공사 문제로 다퉜고, 어제는 큰딸이랑 손주 얘기를 하느라 바빴다. 지난 주말에는 오랜만에 아들이 찾아왔다며 기뻐했다.
서울 종로구 서울대병원에 면회금지 안내문이 붙어 있다. / 권도현 기자
“도대체 지금 같은 때에 몇 명이 왔다 갔다 하는 거야!” 참고 있던 아내가 폭발했다. 아주머니는 새내기 혈액암 환자라 여유가 있는지 모르겠지만 우린 그렇지 못했다. 급성골수성백혈병(AML) 진단을 받고 무균실에 들어온 지 3개월째였고, 그새 우린 두 번의 항암치료에 실패했다. 다른 병상의 주인은 때가 되면 바뀌는데 우리만 같은 침대에 그대로였다.
항암에 실패했을 때 느끼는 절망감은 글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참담하다.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세 번째 항암치료에 신약을 사용해 시도하고 있었다. 독한 약을 견딘 아내의 몸은 앙상해졌고, 몸무게는 이미 10㎏ 이상 빠졌다. 3개월 동안 병실 밖을 나가보지도, 바깥 공기 한 번 맡아보지도 못했으니 얼마나 괴로웠을까. 게다가 세 번째마저 실패하면 방법이 없다는, 그 불안감은 얼마나 우리를 짓눌렀는지. 그래도 꿋꿋이 멘탈을 부여잡고 항암치료를 묵묵히 견뎌내고 있던 아내가 저 아주머니 때문에 성질을 내고 있었다.
신입 환자가 시끄러워서 그런 게 아니었다. 매번 바뀌는 보호자 때문이었다. 때마침 병원 밖에서는 대구·경북을 중심으로 코로나19가 빠른 속도로 퍼졌다. 일부 대형병원은 아예 보호자조차 입장을 막았다. 그래도 우리 병원은 보호자 1인은 허락해줬다. 아무래도 암 전문병원이다 보니 고령자가 많아서 그러지 않았을까 싶다. 단 보호자증을 가진 사람으로 제한했고, 외부인 접촉을 줄이기 위해 보호자 교대는 금지됐다. 이렇다 보니 환자만큼이나 보호자들도 점점 지쳐갔다. 장모님의 교대 덕분에 숨통이 트였던 나도 그 방법이 막혔다. 딸을 보지 못하는 부모의 마음은 더 괴로웠을 거다. 코로나19 때문에 이산가족이 된 사연은 이 병원 안에서 흔한 얘기였다.
면역력 없는 환자들의 팬데믹 공포
어쨌든 신입 아주머니는 기본 원칙을 지키지 않았다. 처음에는 잠깐 저러다 말겠지 생각했는데, 아무 말을 하지 않으니 그 정도가 심했다. “보호자증 보여주니까 괜찮던데?” 딸 얘기를 귀동냥으로 들어보니 보호자증을 가족끼리 돌리는 모양이었다. 이 사태는 결국 진압됐다. 이런 건 환자가 직접 말해야 한다며 아내가 간호사를 호출했고, 얘기를 들은 간호사는 단호하게 “보호자를 한 명으로 정하라”며 정리했다. 가운데 침상 보호자가 고맙다고 말하는 걸 보니 이분도 어지간히 스트레스를 받은 모양이었다.
병원 시스템은 허점이 많았다
모든 암환자는 면역력과 싸우지만, 혈액암 환자는 더 가혹하게 싸운다. 이들은 항암치료를 시작하면서 세상 가장 나약한 존재가 된다. 아내의 혈액으로 들어간 항암약은 암세포만 파괴하지 않고 백혈구나 호중구도 파괴한다. 이름도 생소했던 호중구는 백혈구 종류 중 하나인데 면역을 최우선으로 담당한다. 주치의 표현을 빌리자면 최전선에서 싸우는 ‘행동대장’이다. 약이 들어가면 호중구 수치는 점점 하락하고 결국 ‘0’이 된다. 이건 면역력을 완전히 잃는다는 뜻이다. 이럴 땐 옆에 있는 보호자도 조심해야 한다. 나의 가벼운 감기가 곧 아내의 폐렴이 될 수 있어서다.
이처럼 약하디약한 사람들에게 코로나19는 공포였다. 건강한 사람은 회복할 기회라도 있지만, 여기 누워 있는 면역력 없는 이들은 그럴 기회를 누리지 못할 수 있다. 정말 힘들게 항암치료를 견디며 한 줄기 희망을 봤는데 코로나19 탓에 사라진다면 그 얼마나 허무할까. 그렇게 우린 바깥의 팬데믹에 그 누구보다 예민한 사람들이 됐다.
환자나 보호자만큼 병원도 바깥의 상황이 불안했을 거고 나름 열심히 방역 체계를 세웠을 거다. 우리 병원은 보호자에 제한을 뒀고 들어오는 출입구마다 검문하듯 사람들을 체크했다. 방문자는 문진표를 작성해야 했고 연락처도 적어냈다. 마지막으로 체온을 재고 정상 판정이 나야 확인증 같은 스티커를 옷 위에 붙이고 병원에 들어갈 수 있었다. 이런 시스템이 불편한 사람들은 입구에서부터 충돌했다. 보호자증과 신분증이 달라서 못 들어간다는 말에 직원에게 욕을 하는 사람도 봤고, 두 아들 중 한 명만 보호자로 들어갈 수 있다는 말에 “어머니 앞에서 날 감염자로 만드느냐”며 멱살을 잡는 사람도 봤다. 거짓으로 문진표를 작성해도 검증할 방법이 없다는 건 맹점이었다. 아내가 “무증상 감염자가 들어오면 어떡해”라고 걱정하듯 체온만 튀지 않는다면 확진자를 찾아내는 게 쉽지 않아 보였다.
다행히 우리가 퇴원할 때까지, 그리고 지금까지도 다니던 병원이 확진자에 뚫린 적은 없었다. 병원이 안전했던 건 그들이 운영했던 시스템 때문만은 아닌 것 같다. 분명 느슨했고 허점이 있었다. 오히려 사람들의 자발적 협조 덕분에 운 좋게 무탈했던 게 아닐까. 여긴 암환자만 있으니 조심해야 한다며 마스크를 꾹 눌러쓰는, 그런 연대감 말이다. 한계가 있다고 본 일부 병원에서는 혹시라도 코로나19에 뚫릴까봐 퇴원 환자의 통원을 거르는 곳도 있는 모양이다. 조혈모세포 이식을 한 환자는 퇴원하고 난 뒤 한 달 간격으로 병원에 들러 면역증강제를 맞는다. 항체를 만들어내지 못하기 때문에 약을 써서 인공항체를 만드는 치료다. 그런데 어떤 환자들은 병원에서 오지 말라고 했단다. “증강제 당장 안 맞아도 괜찮다”고 했다는데 매뉴얼대로 치료를 받지 못하게 됐을 때 중증환자는 엄청 불안해진다. 이해는 되지만 야속한 조치 같다.
아내 역시 지금은 통원 환자가 됐다. 항체를 만들 수 없으니 한 달 간격으로 면역증강제의 힘을 빌리고 있다. 아기들이 맞는 예방접종을 연말부터 순서대로 맞을 거고, 그 전까지는 약의 힘을 빌려야 한다. 이제는 무균실을 빠져나와 집으로 돌아왔으니 코로나19를 둘러싼 위험은 더 커졌다. 글을 쓰고 있는 이 순간에도 교회발 확산으로 국내 발생 신규 확진자 235명이 확인됐다는 뉴스가 흘러나온다. 아내가 이내 심각해졌다. “조심해. 바깥은 지금 지뢰밭이야.” 불과 몇 개월 새 우리에게는 너무나 무서운 세상이 돼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