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암환자가 될 수 있다. 30·40대의 암 발병률도 점점 높아지고 있다. 30대 아내가 갑작스럽게 암에 걸린 상황에서 보호자가 마주해야 하는 현실적인 고민과 감정 등을 8회에 걸쳐 매주 연재한다.
지난해 11월, 아내가 주초부터 미열이 있다고 했다. 직장 근처 병원에서 약을 처방받았는데 열이 잘 안 떨어진다고 했다. 피곤하다고도 했다. 푹 쉬면 괜찮아질 거라고 나도, 아내도 생각했다. 금요일, 출근한 아내가 열이 조금 심해져 조퇴를 했다는 연락을 받았다. 회사 근처 병원에서는 혈액검사를 권했다. 보통 1차 의료기관은 검사 결과가 바로 나오지 않는다. 원인을 빨리 알고 주말 동안 쉬자는 마음에 아내를 데리고 집 근처 대학병원 응급실로 갔다.
일러스트 김상민 기자
“혈액 속에 안 좋은 세포들이 보이는데요. 급성백혈병이 의심됩니다. 근처에 치료가 가능한 병원으로 가야 할 것 같습니다.” 응급실에 들어온 지 2~3시간 뒤, 우리는 황당하게도 앰뷸런스를 타고 암전문 A병원에 와 있었다. 그리고 토요일로 넘어가는 새벽 2시에 1인실에 격리됐다. 오피스룩을 입고 나간 사람이 졸지에 환자복을 입게 됐다. 이렇게 갑자기 아내는 30대 중반에 혈액암 환자가, 나는 암환자의 보호자가 됐다.
보통 암이란 건 진단을 받고 입원을 한 뒤 치료나 수술을 한다. 단계 사이에 시간이 있으니 병에 대해 공부하고, 마음의 준비도 할 수 있다. 우리는 그럴 수 없었다. 코로나19 확진자가 실려 가듯 급박하게 병실까지 직행했다. 그러다 보니 이 병에 대해서 우린 아는 게 없었다. 내가 아는 급성백혈병이란 건 드라마에서나 볼 수 있는 비극적인 설정으로 활용되는 병, 딱 그 수준이었다.
다음 날, 주치의가 병실로 찾아왔다. “골수검사를 해봐야 정확하게 알 수 있지만, 혈액검사 결과만 봤을 때 급성골수성백혈병인 것 같다. 항암치료를 하고 조혈모세포 이식(골수이식)도 해야 할 것 같다.” 멍하게 하루를 보낸 우리에게 주치의는 엄청난 말들을 쏟아냈다. 급성골수성백혈병은 혈액 내 미성숙 백혈구(아세포)가 급격히 증가하는 병이다. 보통 말초혈액에서 아세포가 20% 이상이면 골수성백혈병이라는데 아내의 경우 98%였다. 무지렁이나 다름없는 우리는 질문을 쏟아냈고, 많지 않은 나이의 여의사는 최대한 많은 정보를 담아 우리에게 알려줬다. 지금 아내의 현 상태가 얼마나 위험한지, 이 병이 얼마나 어려운지, 치료가 얼마나 오래 걸리는지, 그리고 어떤 부작용이나 후유증이 올지….
모든 게 물음표, 보호자는 외롭다
보호자는 외롭다. ‘선택’을 해야 할 땐 더욱 그랬다. 막상 겪어보니 환자에게 결정권을 주는 건 잔인한 일이다. 환자는 회복에만 신경을 써야 한다. 대신 보호자가 어느 정도 가이드라인을 정한 뒤 환자에게 “이러는 게 어떨까”라고 권하는 게 경험상 더 나은 방법이었다.
“어느 병원, 어떤 교수님을 선택해야 할까요?” 포털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질문이다. 이런 물음에 해답을 구하는 게 엄청나게 어려운 일이란 걸 이전에는 미처 몰랐다. 암과 마주친 사람들이 처음 마주하는 어려움은 병원과 교수를 고르는 것부터 시작한다. 내가 내린 결정에 환자의 생존 여부가 바뀔 수 있다는 부담감은 상상을 초월한다. 남들은 입원 전 하는 이 고민을 우린 입원하고 난 뒤 시작했다. 이 병원에서 치료받는 게 맞는 건지, 유명하다는 다른 병원을 그래도 찾아가는 게 나을지, 병원을 옮긴다면 언제 어떻게 해야 할지 모든 게 물음표였다.
우리가 있는 병원은 암에 특화된 곳이지만 환자들이 말하는 이른바 ‘메이저 병원’은 아니다. 때마침 전화를 준 아내의 친지가 주변에 비슷한 경우를 봤다며 “무조건 B병원으로 가라”고 했다. 필수 코스인 환우회 카페에 가입해 찾아보니 B병원은 이 분야에서 명성이 자자했다. 환자가 많으니 다뤄 본 케이스도 많고 권위자로 평가받는 교수도 있었다. 끝없는 검색 끝에 정보를 모아보니 큰 틀이 잡혔다. 급성골수성백혈병으로 유명한 병원은 두 곳이었고, 각 병원에 유명한 교수가 한 명씩 있었다.
다른 사람에게 명의가 나에게 명의일까
우리 주치의에 관한 정보도 필요했다. 찾아보니 나보다 약간 어린 것 같았고, 같은 대학을 졸업한 후배였다. 이제 ‘교수님’이라고 불린 지 오래되지 않은 의사였다. 이름을 치고 검색을 해봐도 나이가 젊으니 업적(?)을 찾기란 쉽지 않았다. 검색결과 사이에 등장하는 메이저 병원의 나이 지긋한 권위자들의 이름에 한 번 더 눈이 갔다. 나이에 기댄 권위를 믿지 않는 편인데, 아내의 생존 앞에서는 그런 기준도 무너졌다.
‘일단 만나서 의견을 구하자.’ 서류를 들고 유명하다는 두 병원을 찾아갔다. 얼굴을 맞대면 많은 정보를 얻을 수 있다. 처음 찾아간 교수는 전원(병원을 옮기는 일)을 고민하는 보호자에게 냉담했다. 환자 차트에 눈길조차 주지 않고 나와 눈도 마주치지 않은 채 “기도를 열심히 하라”고 조언했다. 의사를 만나러 왔는데 목사를 만나고 온 꼴이 됐다. 또 다른 병원의 유명 교수는 현실적인 환경을 이야기했다. 차트를 들여다보더니 “여기 입원하려면 몇 주 걸린다. 응급으로 들어와도 당장 입원할 수 없다. 그런데 환자 상태는 그렇게 대기할 수 없을 것 같다”고 말했다.
결정을 내려야 했다. 문득 다른 병원 교수들의 의견을 듣고 싶다며 전원의뢰서를 부탁했을 때 주치의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 “저, 실력 나쁘지 않아요.” 묵직했던 그 말이 떠나지 않았다. 표정은 건조해도 묻는 말에 정확하게 대답을 주던 의사였고, 덕분에 복잡했던 머릿속 의문들이 정리된 경우가 적지 않았다. 아내와 이야기를 해보고, 그런 커뮤니케이션 궁합이 우리에게 가장 중요하다는 결론을 내렸다. 게다가 이 병원이 갖는 장점도 있었다. 상대적으로 덜 붐비는 탓에 무균실을 이용하는 데 크게 제약이 없던 건 나중에 보니 행운이었다.
다른 사람에게 명의였다고 나에게 명의란 법은 없다. 내가 암환자의 보호자가 됐다는 소식을 들은 한 선배가 위로의 전화를 건 적이 있다. 그리곤 자기 어머니가 위암 진단을 받았다며 어느 병원으로 가야 할지 고민이라고 했다. 혈액암이라면 몰라도 위암에 관해 내가 아는 게 있을 리 없다. 그래도 해줄 수 있는 말은 있었다.
“선배, 위암으로 유명한 교수들 검색해 본 뒤 급하지 않으면 모두 만나 대화해보세요. 그게 가장 확실한 방법일 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