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지하철 1호선 청량리역 제기동 쪽 출구로 나가면 청량리종합시장이 있다. 서울에 남은 전통시장 중 가장 큰 규모를 자랑한다. 종합시장이란 말 그대로 청과, 양곡, 수산물, 공산품 도매시장이 모두 몰려 있다. 해방 이후 한국전쟁 직전에 시장이 들어서기 시작했다는데 당시 반듯한 골목을 갖춘 개량 한옥 주택지구에 자연스럽게 시장이 생겼다. 상인들이 점령한 큰길에서 비켜나 골목으로 들어서면 옛 주택가가 고스란히 숨어 있다. 청량리종합시장과 그 사이 골목길들은 아직도 활발하게 번성하고 있다.
청량리시장 골목은 서울에서 가장 활발한 전통시장 중 하나다.
자본주의는 시장에서 이루어지고, 도시는 필연적으로 시장에 의지해 번영한다. 오늘 내가 가진 돈의 가치를 알고 싶다면 주식시장의 전광판이나 환율 시세를 살피는 것보다 시장에 나가 무, 배추, 감자를 사보면 뼈저리게 실감할 수 있다. 시장은 길바닥 자본주의의 모세혈관이고, 청량리종합시장은 골목길 자본주의의 첨단이다.
중년을 훌쩍 넘긴 시장 상인들
청량리종합시장은 골목을 따라 다양하게 구획이 이루어진다. 동서로 난 골목으로 종목별 장터가 펼쳐지고, 그것이 남북으로 겹쳐진 꼴이다. 청량리역 쪽에서 골목으로 접어들면 처음 만나는 곳이 청과물시장 골목이고, 두 번째로 육류와 육류가공품을 취급하는 골목이 있다. 청과물골목이 두세 구역으로 계속 이어지는 데 비해 육류골목은 한 구역으로 끝나면서 고구마며 마늘을 취급하는 도매골목이 이어진다. 그다음 골목은 된장이며 고추장, 라면과 과자 등 식자재를 취급하는 골목이 있고, 북쪽으로 더 나가면 도매시장이 나온다. 장마철 불황기라 해도 골목길엔 온통 장바구니 든 사람들과 업자들이 엉켜 돈이 넘치고 사고팔고 흥정의 불꽃이 튄다.
전통시장의 장점이기도 하고 단점이기도 한 면이 있다. 모든 물가는 파는 이의 기분에 따라, 사는 사람의 관록에 따라 수시로 달라진다. 그러니 매 순간 치열한 눈치싸움과 소규모 전투가 벌어진다. 요즘처럼 장마가 길어질 때는 품질을 놓고도 언성이 높다. 과일 노점 앞을 지나치던 노인의 항의가 들린다. “참외 맛있다며? 맛이 없어서 다 버렸다!” 상인도 지지 않았다. “거짓말하면 못써. 이게 맛이 없다고. 마음을 곱게 써야 해”, “니가 먹어 봐라. 그게 맛있나?” 서로의 감정은 멈추지 않는다. 물건을 고르던 행인이 슬쩍 참외 바구니를 내려놓고, 상인은 분을 참지 못한다.
길 건너 가게 주인에게 “요즘 과일 어떠냐?” 묻자 절레절레 고개를 젓는다. “좋은 물건이 안 들어온다. 수박 나올 때인데 몸집만 풍선처럼 커져서 물맛이다. 복숭아, 자두가 출시가 시작됐는데 그것도 별로인 것 같다”고 한숨을 쉰다. 수확을 앞두고 볕을 잔뜩 받아야 때깔도 좋고 향과 맛이 좋은데 하늘 탓에 좋기는 그른 것 같다고 말했다. 상품 가치 없는 낙과들만 잔뜩 들어온다며 쌓아둔 파지 과일들을 보여주었다. 청과 도매상들도 창고를 비워두고 때를 기다리고 있단다. 상인이 “이건 맛을 보장한다”며 내민 것은 수입산 체리와 가지포도라는 블랙 사파이어 포도. 이곳의 하늘땅과는 상관없는 물건들이다.
골목마다 청과물부터 육류까지 다양한 상품을 다룬다.
시장의 활기는 돈에서 나오고, 먹을 것에서 솟구친다. 소와 돼지머리를 삶고 편육을 만드는 고기가게가 분주하다. 소매장사가 주가 아니고 포장마차나 식당을 상대로 물건을 내는 곳이지만 가게 모퉁이 한편에선 갓 삶은 돼지 수육에 소주잔을 기울이는 이도 있었다.
시장 상인 중엔 젊은이도 있지만, 대부분은 중년을 훌쩍 넘긴 이들이다. 나이 30대만 해도 풋내기라 부를 정도로 시장 사람들은 연륜이 넘친다. 가게 앞 쌓아둔 상자 위에 앉아 건너편 상인과 농담을 나누던 사내는 “열일곱 살 때부터 짐 나르는 일로 시장생활을 시작했다. 지금은 30년 넘게 이 골목을 오갔는데 아직도 제자리”라고 말했다. 이 바닥도 밑천이나 악착같은 마음이 있으면 쉽게 자리를 잡아 올라가고, 가진 것이라곤 몸뚱이뿐인 사람들은 제자리걸음을 걷거나 오히려 뒤처져 가는 형편이다.
짐꾼들, 낮에는 여인숙·선술집으로
골목 사이사이 샛골목엔 아주 오래된 여인숙들이 빛바랜 간판을 이고 영업 중이다. 예전엔 역을 오가는 이들이 기차를 기다리며 잠시 쉬어가던 때도 있었고, 늙은 포주가 골목길 어귀에서 행인을 노려보며 손님을 낚아채던 시절도 있었다. 지금은 대개 역과 시장 주변에서 일거리를 찾아 하루 벌어 하루 끼니와 잠자리를 해결하는 사람들의 안식처가 됐다.
여인숙이 몰려 있는 골목 주변엔 대낮부터 취한 이들이 길바닥에 실신해 있고, 선술집에서 뜻 모를 고함을 지르고 있었다. 이 도시가 깊이 감춰둔 상처가 골목 안에 깃들어 있는 것이다. 늙은 주모가 새빨간 입술로 큰소리로 외쳤다. “돈 내놓으라고!” 반쯤 일어서서 앉지도 서지도 못하는 중늙은이가 되받아친다. “3000원 줬잖아. 3000원 줬잖아.” 그들은 같은 말만을 되풀이하고 있다.
시장 안 골목 깊은 곳에는 여인숙과 살림집들이 남아 있다.
한때 요란했을 대폿집들은 반쯤 문을 닫고 장사를 접은 듯싶다. ‘여종업원 구함’이란 푯말이 의미를 잃고 인사처럼 집마다 붙어 있다. 활기차고 성한 가게라고는 간판도 없이 갈대발을 문 삼아 걸쳐 놓은 국밥집뿐이다. 국밥 대신 술국 하나를 시켜놓고 늙은 사내들은 뭐가 그리 즐거운지 웃으며 탁주 잔을 빨고 있었다. 골목 밖 국숫집에서 3000원짜리 국수도 팔고, 소주도 팔고, 장을 보러 오가는 이들과 무관한 다른 세상의 사정을 숨겨두고 있다.
낮에는 여인숙이나 선술집에 박혀 지내던 이들도 밤이 되면 하나둘씩 일어나 골목을 나선다. 전국 각지에서 오는 농산물과 도매시장으로 들어오는 짐차를 맞이하기 위해서이다. 일당을 받고 물건을 부리고 정해진 창고마다 나르는 일이 일꾼을 부른다. 끼니 삼아 낮에 마신 소주의 숙취가 괴로워 손수레 순두붓집에서 순두부 한 냄비에 파간장을 뿌려 속을 풀고 난 후 새벽까지 짐을 나른다. 이 바닥에서 나이는 연륜이고 노동은 관록이다. 일은 덩치로 하는 것이 아니라고 강변한다.
상인뿐 아니라 전통시장 이용자들은 대부분 나이든 이들이다. 바퀴 달린 큰 장바구니를 들고 채소부터 고기, 반찬까지 골고루 장을 본다. 강남에서 장을 보러 예까지 왔다는 노인은 “흥정도 재미있고 덤도 얻을 수 있어 마트보단 시장이 편하다”고 했다. 신설동에 살다가 강남으로 이사 간 지 20년이 됐는데 아직도 이곳으로 온다고 했다. “버스 한 번 타면 오니까 일주일에 한 번은 나들이 삼아 온다”는 것이다.
전통시장 현대화 사업이 한창 진행되고 있다.
전통시장의 특성상 제철 반찬거리나 농산물이 많은데, 더불어 방송에서 몸에 좋다고 나오면 시장바닥에서 곧바로 찾아볼 수 있다. 시장 끝까지 나아가면 약초골목이 있다. 뼈에 좋은 홍화씨, 암에 좋다는 와송, 수삼에 당귀 각종 산야초까지 없는 것이 없다. 서울에서 보기 힘든 능이가 보이기에 가격을 물었다. “100g에 2만5000원”이라고 했다. 잠시 머뭇거리자 옆 가게 주인이 바로 치고 들어온다. “들어온 대로 드릴게. 2만3000원.” 서로가 아는 사이일 텐데도 빤히 눈길을 마주치며 대놓고 값을 깎아 부른다. 사는 일은 버겁고, 스스로 살길을 찾아야 하는 각자도생의 시절이다. 전투는 치열하고 모두 상처를 입는다. 서로를 보는 눈빛이 사납다.
시장골목의 북쪽 주택가는 자전거가 겨우 지나갈 정도로 좁은 골목이다. 예전 경동시장 한약방들이 날리던 시절에는 이 골목 곳곳에도 약재상과 탕제소들이 있었다. 지금은 사람이 살거나, 보양탕 따위를 파는 깊은 골목 식당이거나, 집 전체를 냉장고와 냉동고로 꾸민 창고들이 들어서 있다. 그래도 골목에 화분을 놓아 분꽃을 심고 수세미 넝쿨을 올려 이곳에 사람이 산다고 외치는 집들도 보인다. 자전거를 끌고 나무대문을 열고 나온 아이들도 있고, 지척의 장바닥과는 한결 다른 색다른 고요함이 있다.
아주 오래된 집들과 낡은 창고들, 세월을 덮어쓴 식당이 있는 골목도 전통시장 현대화 사업으로 번잡하다. 철주를 세우고 골목에 천장을 씌워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장을 볼 수 있도록 하겠다는 계획은 거창하지만, 그것으로 전통시장이 살아날지는 알 수 없는 일이다. 50년이 됐다는 막국숫집은 주인이 바뀌었으나 여전히 번창하고 있다. 그 옆 냉면집, 그 옆 국밥집도 10년 전과 똑같이 북적인다. 주인과 가게는 눈에 띄게 낡았지만, 다시 찾게 하는 맛은 살아 있기 때문이다.
온갖 몸에 좋은 약초도 약초골목에서 취급한다.
청량리 588지역 재개발 사업 진행
청량리시장에서 남쪽으로 큰길을 건너면 또 다른 시장이 있다. 청량리수산시장. 이 오래된 수산물도매시장은 한 귀퉁이가 뭉텅 잘려나갔다. 소위 청량리 588지역의 재개발 아파트 건축 사업이 진행되기 때문이다. 유리창 안 낮은 촉수의 붉은 등과 짙은 화장의 모습이 길가를 연이어 끝 모르게 이어지던 그 주변 욕정의 가게들은 몽땅 사라졌다. 한국전쟁 이후 21세기까지 행정력과 공권력도 굴복시키지 못했던 복잡한 세상사의 사창가 골목길은 부동산 개발이라는 만병통치약을 만나 허물어졌다. 소소한 욕망은 거대한 탐욕 앞에서 무력하고 형체 없이 잡아먹히는 법이다.
낮에도 문을 여는 소매 생선가게에서 생선 배를 따고 피를 뽑는 익숙한 칼질들이 예술적이다. 그 옆 노천 횟집에서 대낮부터 만취한 중·노년 남녀들이 얽혀서 “야, 너 몇 살이냐?”를 묻고 따진다. 옆 테이블에 회 한 접시를 돌리고 말을 트는 풍속은 이곳에선 예삿일이라 한다.
골목 안 길게 이어진 생선도매상들은 낮에는 잠들어 있다. 뉴스를 보던 상인은 “여긴 새벽이 돼야 활기차다”고 이야기했다. 70년대부터 이 바닥의 일을 배웠다는 그는 이제는 자신의 가게도 갖고 남부럽지 않다고 했다. 요즘 경기가 어떠냐 묻자 “언젠들 쉬웠나? 버티면서 살아가는 것이다”고 답한다.
시장에 가면 얼마나 돈이 귀한 것인지 새삼스레 알게 된다. 돈으로 살 수 있는 것이 무수히 많고, 돈이 없으면 채울 수 없는 욕망이 나를 괴롭힌다. 청량리시장골목은 물건을 사고파는 것 이상의 공간이다. 작은 대가로 만족이라는 상품을 소비하는 놀이동산이다. 자기 먹을 것이 아니라 자식이며 손자들이 좋아하는 것을 사서 더 기뻐한다. 내가 먹을 것으로 흠 있는 낙과를 싸게 샀다고 웃고, 가족이 먹을 약초는 값을 따지지 않고 흔쾌히 사들인다. 1000원을 주고 떡 한 봉지를 살 수 있고, 2000원을 주면 멍든 복숭아 한 소쿠리를 얻을 수 있다. 아무리 싸게 사도 덤 하나를 얻지 못하면 마음이 불편하고, 좋은 물건을 사면 비싸도 따지지 않는다. 청량리시장 골목엔 이런 모순이 존재한다. 나를 위해 사는 물건보다 누군가를 위해 장을 본다는 기쁨. 청량리시장 골목을 드나드는 이들의 마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