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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초고령사회, 노년을 어떻게 살아야 할까

입력 2020.08.14 14:23

  • 성지연(국문학 박사·전 연세대 강사)

50대가 됐지만 아직 죽음은 추상적이다. 여태 산 만큼은 더 살지 못한다는 사실을 종종 잊고 산다. 일어설 때마다 뚜둑 소리가 나는 무릎은 구체적이다. 머리빗에 끼어 있는 흰 머리카락도 내 것인 게 분명하다. 늙음은 천천히, 그러나 확실하게 내 삶에 배어들고 있다. 생로병사(生老病死). 50대라는 건 태어남과 죽음 사이에 있는 늙음과 병이 도저히 남의 일이 아닌 때다.

혼자 감당하기 어려운 노후 문제를 사회가 감당해줘야 한다. 젊었을 때는 개인이 자유롭고 풍요로운 삶을 누리며 사회에 기여하고, 늙었을 때는 사회가 개인을 보호하는 게 복지국가다. 사진은 점심 무료급식을 받기 위해 노인 무료급식소를 찾은 노인들 / 이준헌 기자

혼자 감당하기 어려운 노후 문제를 사회가 감당해줘야 한다. 젊었을 때는 개인이 자유롭고 풍요로운 삶을 누리며 사회에 기여하고, 늙었을 때는 사회가 개인을 보호하는 게 복지국가다. 사진은 점심 무료급식을 받기 위해 노인 무료급식소를 찾은 노인들 / 이준헌 기자

늙음이 녹녹해 보이진 않는다. 경제 문제를 빼놓더라도 건강이나 사회생활이 이전과 같지는 않을 거다. 노년이 가난이나 질병이나 사회적 고립으로 채워진다면 100세 인생도 달갑지 않다. 혼자 사는 노인의 고독사나 긴 간병 끝에 벌어진 간병살인 같은 뉴스를 접하면 참담하다.

일본 초고령사회의 변화 모습

우리나라는 2017년 65세 이상 고령인구가 14% 이상인 고령사회에 진입했다. 2025년에는 고령인구가 20% 이상인 초고령사회로 진입될 것으로 예상된다. 현재의 출산율로는 올해부터 인구의 자연감소가 시작될 게 확실하다고 하니, 고령화 속도는 더 빨라질 거다. 노년 문제가 세상에 없던 문제는 아니다. 그렇지만 이렇게 늙은 사회는 이 세상에 없었다는 게 문제다.

김웅철의 <초고령사회 일본에서 길을 찾다>(2017)는 우리보다 먼저 초고령사회에 도달한 일본의 현실을 안내한다. 일본은 1970년 고령화사회, 1994년 고령사회, 2006년 초고령사회에 도달했다. 우리나라는 2000년 고령화사회, 2017년 고령사회가 됐고 2025년 초고령사회에 도달할 것으로 예상된다. 일본이 간 길을 더 빨리 추격하는 중이다. <초고령사회 일본에서 길을 찾다>는 여기서 고령화가 더 진행되면 어떤 사회적 풍경이 펼쳐질지, 그리고 국가와 사회와 개인은 여기에 어떻게 대처할 수 있는지를 미리 보여주는 셈이다.

가장 눈에 띄는 건 커뮤니티 솔루션이다. 빈집 관리, 저출산, 고령화, 사회적 고립, 돌봄 같은 문제들을 새로운 커뮤니티를 만들어 해결하려는 시도다. 시골과 도시 인근 주거단지들에서 인구가 계속 줄었다. 젊은 사람들이 떠나가니 고령자가 대다수를 이루고 빈집들이 생겼다.

가고시마현 가노야시의 야다기다니란 촌락은 2007년 늘어만 가는 마을 빈집을 ‘영빈관’으로 만들어 예술가들을 초청했다. 영빈관 사용료가 무료인 대신 예술가들은 아이들을 지도한다. 도쿄 인근의 도요시키다이 주거단지는 고도성장기에 지어진 대규모 임대주택 단지다. 고령화율 41%에, 주민 40%가 마을을 떠났다. 2009년 산·관·학(産官學)이 ‘지역사회고령종합연구기구’를 세우고 재택간병과 고령자 맞춤형 일자리를 만들었다.

사회적 고립은 중·장년층 모두의 문제가 됐다. 거주는 독립을 유지하면서 일상생활의 일부분을 함께하는 ‘컬렉티브 하우스’의 거주형태도 생겼다. 일본 최초의 컬렉티브 하우스인 ‘컬렉티브 하우스 칸칸모리’는 독신 고령자, 정년퇴직자, 맞벌이 부부 등으로 이뤄졌다. 월 1회 의무 식사당번을 맡아 공동식사를 하고, 원예 등의 그룹 활동을 하며, 공동거실을 사용한다. 컬렉티브 하우스는 입주민들이 모두 공동 활동에 참여해 인간관계를 유지하는 목적으로 운영된다.

‘3세대 동거’를 장려하는 정책도 추진됐다. 일본 정부는 저출산 대책으로 조부모가 젊은 부부들의 출산·육아를 돕는 3세대 동거를 장려했다. 주택 개조 비용에 세제 혜택을 준다. 지자체 도쿄 기타구(北區)의 경우 고령자 친화주택을 지어 3세대가 동거하면 보조금을 지급한다.

창의적인 대책도 많았다. 일본 우체국을 비롯해 보험사, 광고회사 등 각 업계 대표주자 여덟 곳이 ‘고령자 지원 드림팀’을 결성했다. 이들은 독거노인의 안부 확인, 생필품 구매 대행, 위급 시 긴급 대응, 고령자 교류 및 오락을 제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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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전 세대와는 다른 ‘젊은 노인’들

이런 목록을 보면 고립이나 건강만 문제가 되는 것은 아니다. 생필품을 못 사는 고령자 ‘구매난민’에 대한 조력시스템도 생겼다. 택배업체가 고령자에게 전화로 물건 주문을 받고 배달해줄 뿐만 아니라 구청이나 소방서에 고령자의 상태보고까지 한다. 시골 고령 마을에선 노인들의 이동도 문제였다. 노인들은 외부활동이 줄어들면 건강에 문제가 생기고 고립될 수밖에 없다. 가모쇼 지구라는 고령 마을에선 자원봉사 운전기사들이 합승택시처럼 고령자들의 필요에 따른 ‘디맨드 교통’을 운행한다.

고령사회에 대처하는 서비스업도 생겼다. 독거노인에게 집을 빌려주는 임대업자를 대상으로 한 ‘고독사 보험’, 빈집이 860만호에 달하는 상황에서 번창하는 ‘빈집 관리 전문 서비스’, 사후에 반려동물을 책임지는 ‘펫신탁’ 같은 것들이다.

얼마 전 처음 접했던 ‘졸혼(卒婚)’이란 단어도 일본에서 왔다. 일본에서는 2014년 <졸혼시대>라는 책이 나오면서 화제가 됐다. 고령화와 황혼이혼 증가를 배경으로 나타난 새로운 대안이다. 혼인 관계는 유지하면서 동거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롭게 사는 형태를 말한다.

 여기에 일본 초고령사회의 ‘젊은 노인’들은 이전 세대와 다른 문화를 보여준다. ‘단카이 세대’는 1947년에서 1949년 출생한 680만명의 일본식 베이비부머 세대다. 이들은 여전히 일을 하려 하고, 삶을 즐기는 세대다. 이 젊은 노인들은 해외 유학과 세계여행을 하며, ‘무덤 친구’를 정해 함께 죽음을 준비하고, 자신의 장례와 사후를 위한 ‘생전계약’을 맺는 등 생애를 마무리하는 활동인 ‘종활(終活)’에 참여한다.

우리나라의 베이비부머 세대는 1955년에서 1963년생이다. 2015년 기준 약 711만명으로 전 인구의 14.3%에 달한다. 1955년생이면 당장 올해부터 고령인구에 포함되기 시작한다. 인구 규모와 고령화 속도 측면에서 우리 베이비부머 노년 세대가 이전의 노년 세대와 다른 문화를 보일 가능성은 일본 못지않을 것으로 보인다.

노년을 눈앞에 두고 보니, 점점 노인들이 많아지는 사회를 살아가는 게 걱정스럽다. 내게도, 우리 사회에도 낯선 길이다. 아직 무슨 일이든지 할 수 있을 것 같은 나이에 사회에서 밀려나 긴 노후를 살아가야 한다. 혼자 감당하기 어려운 노후 문제들을 사회가 감당해줘야 한다. 젊었을 때는 개인들이 자유롭고 풍요로운 삶을 누리며 사회에 기여하고, 늙었을 때는 사회가 개인을 보호하는 게 복지국가다.

고령사회는 나와 같은 50대에겐 성큼성큼 다가오는 불안한 미래다. 그래도 아는 게 힘이지 않을까. 앞으로 펼쳐질 세계가 덜 낯설도록 가까운 친지들에게 이 책 한 권씩 보내야겠다는 결심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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