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십 이후의 생애에서 용기가 중요한 덕목일까. 용기는 신화의 주인공들에게 중요한 덕목이었다. 평범한 시민인 나와는 거리가 멀어 보인다. 게다가 이 나이에 용기를 들먹이는 것도 적당해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용기가 필요 없는 삶을 살고 싶다. 용기를 내지 않아도 잘 살아지는 편이 중년 이후의 삶엔 더 좋지 않을까.
2015년 3월 <미움받을 용기> 저자 기시미 이치로가 서울 광화문 교보빌딩 컨벤션홀에서 대산문화재단 초청으로 강연하고 있다. / 김창길 기자
기시미 이치로와 고가 후미타케의 <미움받을 용기>(2013)에서 용기는 중요한 덕목이다. 행복해지기 위해서는 용기가 필요하다. 책은 철학자와 청년의 대화로 이뤄져 있다. 여기서 아들러 심리학을 공부한 철학자 기시미 이치로는 철학자 역으로 등장한다. 청년은 ‘인간은 변할 수 있고 세계는 단순하며 인간은 누구나 행복할 수 있다’는 철학자의 주장에 반박하기 위해 철학자를 찾아간다.
인생을 결정하는 건 ‘지금, 여기’의 자신
청년은 어린아이에게나 세상이 단순하지 어른이 되면 복잡한 인간관계, 수많은 책임, 온갖 사회문제에 둘러싸여 살게 되지 않느냐고 묻는다. 철학자는 인간은 객관적 세계가 아니라 스스로 의미를 부여한 주관적인 세계에 사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세계가 복잡한 게 아니라 청년이 세계를 복잡하게 보고 있으며, 필요한 건 세계를 정면으로 바라볼 수 있는 청년의 용기라는 것이다.
철학자의 말은 행복이 마음먹기 나름이라는, 하나 마나 한 말과 다를 게 없다. 책 전체는 이에 대한 청년의 반박과 수긍으로 나아간다. 철학자는 청년에게 아들러 심리학을 전한다. 프로이트의 이론이 과거의 원인으로 현재를 설명하는 결정론이라면, 아들러의 이론은 삶은 과거의 경험에 어떤 의미를 부여하는가에 따라 결정되고 인생은 스스로 결정하는 것이라는 목적론이다.
프로이트와 아들러의 차이는 몇 년 동안 밖으로 나오지 못한 청년의 친구를 해석하는 데서 극명히 나타난다. 청년은 친구가 과거에 겪은 고통 때문에 밖으로 나오지 못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철학자는 그 친구는 두려워서 밖으로 나가지 못하는 게 아니라 바깥에 나가지 않으려는 목적으로 불안과 공포 같은 감정을 지어냈다고 설명한다.
청년은 점점 더 화가 난다. 그럼 자신이 스스로를 싫어하는 것은 대체 무슨 목적인지를 묻는다. 철학자는 청년이 불행한 것은 스스로 불행한 상태를 선택했기 때문이라고 답한다. 이제 화가 나서 벌떡 일어난 청년에게 철학자는 인간의 성격이나 기질은 ‘생활양식’이며 스스로 선택한 것이라고 덧붙인다.
살아왔던 대로 살아가는 건 편안하다. 불만은 있지만 그런대로 예측가능한 삶이다. 익숙한 생활양식을 버리고 새로운 생활양식을 택한다면 무슨 일이 생길지 모르는 불안한 삶을 살아야 한다. 그래서 변화에는 용기가 필요하다. 철학자는 아들러 심리학이 바로 ‘용기의 심리학’이라고 말한다. 철학자는 아들러의 목적론이 지금까지의 인생에 무슨 일이 있었든지 앞으로의 인생에는 아무런 영향이 없다는 주장이며, 인생을 결정하는 건 ‘지금, 여기’를 사는 청년 자신이라고 설득한다.
철학자는 청년이 자신의 단점에만 주목해 스스로를 싫어하는 게 인간관계에서 상처받는 것을 지나치게 두려워하기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열등 콤플렉스는 생활양식을 바꿀 용기가 없어서 이 열등감을 변명거리로 삼는 도착적 상태다. 우월 콤플렉스는 권위의 힘을 빌려 자신을 포장하는데, 스스로에 대한 믿음이 없으니 열등감에 다름아니다. 또한 ‘불행 자랑’같이 자신의 불행을 특별하기 위한 무기로 휘두른다면 그 사람은 영원히 불행을 필요로 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행복한 삶이란 무엇일까. 이에 철학자는 먼저 ‘인정욕구’에서 벗어나라고 말한다. 철학자에 따르면, 인간은 공동체에 유익한 존재라는 것을 느끼게 되면 자신의 가치를 실감하게 된다. 그래서 상대에게 인정을 받아 자신이 가치 있는 존재라는 것을 느끼려고 하는데, 문제는 이러한 인정욕구에 사로잡히면 자유를 잃는다는 것이다. 자유를 잃은 자리에서 행복할 순 없다. 그래서 때로는 ‘미움받을 용기’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인플루엔셜
인정욕구에 사로잡히면 자유를 잃어
<미움받을 용기>는 인정욕구를 대신해 자신의 가치를 찾기 위해 필요한 것으로 우선 ‘자기수용’을 제시한다. 자기수용이란 있는 그대로의 나를 받아들이고 바꿀 수 있는 것은 바꾸는 용기를 내는 것이다. 여기에 도달하면, 설령 타인이 나를 배신하더라도 그것은 어디까지나 타인의 일인 만큼 나는 이와 무관하게 타인을 신뢰할 용기를 가질 수 있다. 그렇게 되면 타인과 친구가 될 수 있고, 여기 있어도 좋다는 소속감, 타인의 삶에 기여할 수 있다는 공동체 감각을 가질 수 있게 된다.
<미움받을 용기>는 상당한 기간 베스트셀러 1위를 차지했다. 인간관계로 고민했던 많은 사람이 읽었고, 지금 읽을 것이다.
모든 고민은 인간관계에서 비롯된다는 철학자의 주장은 과도한 것으로 보인다. 고민이란 마음속으로 괴로워하고 애를 태우는 것이다. 진학이나 취업 실패, 실업이나 금전적 위기, 무엇보다 살아가면서 겪는 생로병사에 대한 고민이 인간관계에서만 비롯되진 않기 때문이다.
지나친 주관주의도 마음에 들지 않는다. 인간이 객관적 세계가 아니라 자신이 만든 주관적 세계에서만 산다는 것을 개인적으로 동의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움받을 용기>를 읽고 난 다음 이 책을 그냥 지나칠 수만은 없었다. 왜일까. 그 까닭은 인정욕구에 있었다. 나는 어떤 인정욕구를 갖고 살아온 걸까. 아내와 엄마로서의 인정욕구가 언젠가부터 나의 정체성이었던 것은 아닐까. 아마 그럴 것이다. 철학자의 말대로 나는 인정욕구를 채운 대신 자유를 잃어버린 건 아닐까. 자유를 상실한 그곳에서는 행복할 수 없다는 철학자의 말이 아프게 다가왔다.
오십을 맞이한 현재, 그렇다면 그 자유는 뭘까. 자유로운 행복을 얻기 위해, 바람직한 공동체 감각을 갖기 위해 철학자는 있는 그대로의 나를 인정하는 자기수용을 말한다. 그런데 있는 그대로의 나란 뭘까. 나의 성격일까, 마음일까, 아니면 능력일까. 아니, 나는 나의 모습을 오래전에 잃어버려 그것이 무엇인지도 모르는 건 아닐까.
앞으로 남은 오십 년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나 자신을 찾아가는 것이 아닐까. 내가 지금 필요한 건 미움받을 용기 이전에 나를 찾아가는 여행이란 걸 생각하게 됐다. 새로운 여행을 떠난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무척 환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