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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우리는 타인의 슬픔에 얼마나 공감하나

입력 2020.07.17 15:45

  • 성지연(국문학 박사·전 연세대 강사)

건강은 개인의 일일까, 사회의 일일까. 내 건강은 좋은 음식을 먹고 적절한 운동을 하면 지킬 수 있는 걸로 보였다. 그런데 코로나19 확산세가 꺾이지 않는 지금 건강이 사회적인 일이라는 걸 새삼 깨닫게 된다. 모두 마스크를 끼고 손을 씻어가며 조심하지 않으면 누구의 건강도 지킬 수 없다. 방역당국은 전염의 고리를 뒤쫓고 의료진들은 환자 치료에 뛰어들었다. 모두가 세계 여러 나라에서 진행되는 치료제와 백신 개발 상황을 지켜보고 있다.

위기에 맞서는 공동체적 대응이 있어야 아픔이 길이 될 수 있다. 지난 5월, 코로나19 여파로 마뤄졌던 등교수업을 앞두고 한 고등학교에서 학생들의 발열체크, 수업 중 거리 두는 책상배치 등 준비를 마치고 학생들을 맞을 준비를 하고 있다. / 이준헌 기자

위기에 맞서는 공동체적 대응이 있어야 아픔이 길이 될 수 있다. 지난 5월, 코로나19 여파로 마뤄졌던 등교수업을 앞두고 한 고등학교에서 학생들의 발열체크, 수업 중 거리 두는 책상배치 등 준비를 마치고 학생들을 맞을 준비를 하고 있다. / 이준헌 기자

사회적 관계가 많을수록 오래 살아

사회역학자 김승섭의 <아픔이 길이 되려면>(2017)은 사회적 일로서 건강에 주목한다. 그에 따르면 건강은 원래부터 개인만의 일이 아니다. 김승섭이 인용하는 낸시 크리거의 논문 ‘역학과 원인의 그물망: 거미를 본 사람이 있는가’는 의학적으로 질병을 설명하는 ‘원인의 그물망’을 넘어 질병의 ‘원인의 원인’인 거미의 존재를 묻는다. 사회역학은 원인의 원인인 질병의 사회적·정치적 원인을 밝혀내려는 학문이다.

김승섭은 세월호 참사에 대한 ‘생존학생 실태조사’에 참여하기도 했다. 저자와 마찬가지로 배 안에서 방송했다는 ‘가만히 있으라’를 생각하면 마음이 여전히 아프다. 김승섭은 착한 학생들이 그 말을 곧이곧대로 따랐다는 것은 사실이 아니라고 말한다. 학생들은 침몰하는 배에서 자신들이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했다고 밝힌다. 울컥거리는 감정을 참으면서 김승섭은 이 기록을 꼭 해야 했다고 강조한다.

김승섭은 2014년 세월호 참사 이전의 1994년 성수대교 붕괴사고, 1995년 삼풍백화점 붕괴사고, 1999년 씨랜드 화재 참사, 2003년 대구 지하철 화재 참사에서 살아남은 이들에 대해 기록이라 할 만한 게 남아 있지 않았다고 지적한다.

이럴 줄 몰랐다. 나이를 이만큼 먹고 보니 이 모든 참사에 대한 기억이 생생하다. 연일 이어지는 현장중계를 통해 유족들의 통곡을 들으며, 이 사회의 대다수가 느꼈을 무력감·참담함을 나 역시 느꼈다. 날림 공사, 이익을 위해 무시한 안전, 충분하지 못한 구조 활동, 거칠었던 유족에 대한 배려. 우리는 왜 이것밖에 안 되나. 때마다 사회적 자책은 되풀이됐다.

김승섭은 아픔이 기록되지 않으면 대책이 있을 리가 없다고 말한다. 공동체의 책임은 이런 참사가 다시 일어나지 않도록 하는 데 있다. 또한 공동체의 책임은 생존자들을 보살피는 데 있다. 이 책에 기록된 대로 ‘고통을 증명하라고 말하는 사회’, ‘선량한 피해자의 롤모델을 요구하는 사회’, ‘피해자·유가족·일반인 사이의 갈등을 조장하는 사회’에서 치유의 길은 힘겨워 보인다.

사회적 관계는 몸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 <아픔이 길이 되려면>은 사회적 관계가 건강에 미치는 영향을 분석한 연구를 싣고 있다. 리사 버크먼과 레너드 사임에 따르면, 더 많이 연결될수록 더 오래 산다. 사회적 관계망의 정도에 따라 1.8배에서 2.7배가량 사망률에서 차이가 난다. 셸던 코헨에 따르면, 다양한 사회적 관계를 많이 가진 사람일수록 점액이 덜 만들어지고 코의 섬모가 더 활발히 활동해서 감기 바이러스를 덜 유포시킨다.

동아시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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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컬러스 크리스타키스와 제임스 파울러는 개인이 사회적 관계망으로부터 받는 영향을 분석한다. 본인이 비만일 가능성은, 친구가 비만인 경우 57%, 형제자매가 비만인 경우 40%, 상대방을 서로 가까운 친구로 인지하는 경우 150% 이상으로 나타난다. 1960년대 미국 펜실베이니아주 로세토 마을은 심장병으로 사망하는 숫자가 유독 낮았다. 이것이 의학적 요인이 아니라 공동체 활동에 적극 참여하고 상호부조하는 문화에 있었다는 연구가 발표된 바 있다.

사회적 관계와 공동체가 개인의 건강에 미치는 힘이 이토록 크다면, 이기적인 동기에서라도 이타적인 게 합리적으로 보인다. 음식을 차려놓고 혼자의 힘으로는 음식을 먹지 못하게 너무 긴 젓가락이 주어질 때, 서로 먹여주는 곳이 천국이고 자기만 먹으려고 굶는 곳이 지옥이라는 오래된 이야기가 있다. 타인에 대한 믿음이 단숨에 생겨날 수 없으니 천국으로 가는 길은 멀어 보인다. 하지만 튼튼한 사회적 연결망과 믿음직한 공동체가 있다면 개개인이 더욱 건강하고 행복할 것은 분명하다.

공동체의 안전과 행복에 관심을

그렇다면 어떤 공동체가 좋은 공동체일까. 김승섭이 <아픔이 길이 되려면>에서 강조하듯, 다양한 사회적 연결망으로 이어진 개인들이 공감하고 서로 돌보는 공동체가 좋은 공동체다. 촘촘하게 연결된 개인들이 바로 공동체일 테니, 개인과 공동체를 나누어 볼 필요도 없다.

오십 대의 몸이 예전 같을 리 없다. 오래 보지 못한 친구에게 인사로 ‘건강하지’를 건네는 게 적당한 나이다. 건강할 때 건강을 지켜야지 같은 결심을 할 새도 없이 건강문제는 불쑥 쳐들어온다. 그때마다 병원을 방문해 치료를 받고, 생활습관을 고쳐보려고 노력하고 그랬다. 그런데 <아픔이 길이 되려면>에 따르면 혼자서만 건강할 길은 없다.

일단 사회적 관계부터 가꿔야 한다. 가깝게는 당장 내 앞에 앉은 상대의 처지부터 이해하고 마음을 나누며 좋은 영향을 주고받아야겠다. 내가 잘 살기 위해서라도 내가 속한 공동체에 관심을 가지고 지속적으로 공동체의 안전과 행복을 물어야 한다.

<아픔이 길이 되려면>을 펼쳐본 까닭은 제목이 주는 울림에 있었다. 아픔 속에서도 길을 찾을 수 있다니! 아픔의 고통이 깨달음으로 이어지지 않으면 아픔으로부터 길이 보이지 않을 것 같았는데, 그 깨달음을 어떻게 찾을 수 있을지를 알고 싶었다. 그런데 생각한 것과는 다른 책이었다. 읽어가면서 차츰 생각이 바뀌었다. 내가 고려하지 않았던 것은 개인의 아픔과 사회의 아픔이 그리 먼 거리에 있지 않다는 점이었다.

“어떤 공동체에서 우리가 건강할 수 있는지에 질문을 던집니다. 개인이 맞닥뜨린 위기에 함께 대응하는 공동체, 타인의 슬픔에 깊이 공감하고 행동하는 공동체의 힘이 얼마나 거대하고 또 중요한지에 대해서요.”

김승섭의 말처럼 위기에 맞서는 공동체적 대응이 있어야 아픔이 길이 될 수 있다. 이에 못지않게 중요한 점은 타인의 슬픔에 깊이 공감하고 행동하는 것이다. 나는 과연 타인의 슬픔에 얼마나 가까이 다가서 왔을까. 인생의 절반인 오십에는 과거보다 깊은 슬픔에의 공감이 필요한 것 아닐까. 아픔에서 길을 발견하게 하는 깨달음도 슬픔에의 더 깊은 공감을 통해 얻어지는 건 아닐까. 슬픔에 더 큰 공감이 필요한 나이가 오십이라는 생각에 도달하니, 한편으로 서글프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대견하게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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