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성취는 그만 묻고, 이제 행복을 묻고 싶다



주간경향

공유하기

  • 카카오톡

  • 페이스북

  • X

  • 이메일

보기 설정

글자 크기

  • 보통

  • 크게

  • 아주 크게

컬러 모드

  • 라이트

  • 다크

  • 베이지

  • 그린

컬러 모드

  • 라이트

  • 다크

  • 베이지

  • 그린

(24)성취는 그만 묻고, 이제 행복을 묻고 싶다

입력 2020.07.03 17:22

  • 성지연(국문학 박사·전 연세대 강사)

기원전 1200년경 이집트 무덤의 벽화가 있다. 황소 두 마리가 농기구에 매여 있고 인간이 채찍을 휘두른다. 유발 하라리의 <사피엔스>(2011)에 실린 그림이다. 하라리는 이 그림이 자유로이 돌아다니던 소들이 인간에게 길들여 겪는 고통을 보여준다고 말한다. 그리고 농부의 굽은 허리에 주목하라고 덧붙인다. 그가 보기에 농부도, 황소도 모두 자신의 육체와 마음, 사회적 관계를 압박하는 고된 노동을 하며 평생을 보냈다.

서울 암사동 선사체험마을을 찾은 어린이들이 원시인들의 의상을 갖춰 입고 신석기 시대 체험을 하고 있다. / 서성일 기자

서울 암사동 선사체험마을을 찾은 어린이들이 원시인들의 의상을 갖춰 입고 신석기 시대 체험을 하고 있다. / 서성일 기자

“우리는 누구인가, 어디에서 왔는가, 어떻게 해서 이처럼 막대한 힘을 얻게 되었는가.” 하라리는 <사피엔스>가 이런 질문들에 답을 구하는 데 도움이 되기를 바란다고 밝힌다.

<사피엔스>는 호모 사피엔스의 기원에서부터 시작한다. 인간은 호모속에 속하는 동물이다. 사피엔스는 이 속의 여러 종 가운데 하나다. 인간이 호모 에렉투스, 네안데르탈인, 호모 사피엔스로 진화했다고 생각하지만, 200만 년 전부터 1만 년 전까지 지구에는 다양한 인간종이 함께 살았다.

다른 인간 종을 물리친 호모 사피엔스

인류는 뇌가 크고 도구를 사용하며 학습능력이 뛰어나고 복잡한 사회 구조를 가졌다. 우리는 인간이 이런 특징으로 지구상에서 가장 강력한 동물이 됐다고 믿는다. 하지만 인간은 200만 년 동안 이런 특징을 가진 연약한 주변부 존재에 불과했다. 인간이 먹이사슬의 정점으로 뛰어오른 것은 10만 년 전 호모 사피엔스의 출현 이후였다. 문제는 호모 사피엔스가 너무 빨리 생태계의 최정점에 올랐다는 데 있었다. 생태계는 그에 적응할 시간이 없었다. 인간 자신도 마찬가지였다. 언제나 자신의 지위에 대한 공포와 걱정으로 가득 차 있었고, 그래서 두 배로 잔인하고 위험해졌다. 호모 사피엔스는 네안데르탈인과 데니소바인을 멸종으로 이끈 것으로 의심되기도 한다.

하라리는 ‘인지혁명’을 사피엔스가 지구 전체에서 다른 인간종을 몰아낸 가장 중요한 힘으로 꼽는다. 인지혁명이란 약 7만 년 전부터 3만 년 전 사이에 출현한 새로운 사고방식과 의사소통 방식이다. 언어능력의 가장 특별한 점은 허구를 말할 수 있는 능력이다.

서로 모르는 수많은 사람이 공통의 신화를 믿으며 성공적인 협력이 가능할 때, 사피엔스의 능력은 증폭된다. 의사소통만으로 결속할 수 있는 집단의 임계치는 대략 150명이다. 그 이상의 집단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허구가 필요하다. 원시부족·고대도시·중세교회·현대국가 등 인간의 대규모 협력은 모두 공통의 신화로서의 허구에 기반을 뒀다.

사피엔스의 역사에서 중요한 또 하나의 사건은 대략 1만 년 전에 일어났던 농업혁명이다. 그런데 하라리는 이 농업혁명이 ‘거대한 사기’라고 말한다. 농부들은 그저 더 많은 곡식을 얻으려고 열심히 일했다. 하지만 스스로의 결정이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 알지 못했다. 영구정착촌에 살면서 인구가 늘어났다. 아이들의 면역력이 약해져 영구정착촌은 전염병의 온상이 됐다. 단일식량원에 대한 높은 의존도는 자연재해에 대한 취약성으로 나타났다.

김영사

김영사

이쯤 되면 왜 사피엔스가 농경을 포기하지 않았는지가 궁금해진다. 하라리는 변화가 축적돼 사회가 바뀌는 데는 긴 시간이 걸리고 그때는 과거의 삶의 방식을 아무도 기억하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인구증가 때문에도 이미 돌아갈 수가 없었다고 덧붙인다.

현재의 사피엔스라고 나은 건 없다. 하라리가 묻듯이, 주택대출금에다 자녀들 학자금을 지불하며 가끔 해외여행이라도 가야 제대로 사는 것처럼 느낄 때, 뿌리채소나 캐는 삶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 각종 사무와 집안일을 돕는 기계들이 시간을 절약해 주고 편지를 써서 부치고 답장을 받는 긴 시간을 e메일을 주고받는 몇 분으로 절약한 지금, 삶은 과연 느긋해졌을까.

진화적 성공이 행복을 낳지 않았다는 것은 역설적이다. 하라리는 오히려 사피엔스란 종의 번영이 개개인의 고통과 나란히 진행됐다고 통찰한다. 고대 농부는 수렵채집인보다 훨씬 많은 것을 가졌지만 그것이 행복을 보장하지는 않았다.

<사피엔스>가 다른 역사책들과 비교해 돋보이는 것은 바로 이 행복을 직접 다룬다는 데 있다. 기존의 역사서들은 인간의 행복을 묻지 않았다. 시대를 이끌었던 인물과 사회 구조의 변화가 기록되는 동안, 그 시대를 살아가는 개인의 삶의 질은 잘 보이지 않았다. 하라리는 우리가 과연 더 행복해졌는지, 인류가 쌓아온 부는 우리에게 새로운 만족을 주었는지를 묻는다.

진화적 성공이 행복을 보장하지 않아

지난 40억 년의 자연선택은 이제 생명공학·사이보그 공학·비유기물 공학 등을 통해 ‘지적설계’로 바뀔 가능성까지 보이고 있다. 인류의 가장 오래된 신화인 ‘길가메시 신화’는 죽음을 물리치려던 길가메시가 죽음이란 숙명을 받아들이는 이야기다. 그런데 이제 ‘길가메시 프로젝트’는 인류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려는 과학혁명의 선도적 프로젝트로 추진된다. 하라리는 이런 성취 앞에서 우리가 마주하고 있는 질문은 ‘우리는 무엇을 원하고 싶은가’라고 말한다. 다른 종들을 무자비하게 몰아냈고, 닿는 곳마다 대규모 멸종을 일으켰던 사피엔스다. 과거로 돌아가 바꿀 수 있는 건 없다. 하지만 과거를 거울삼아 새로운 출발을 할 순 있다. 사피엔스는 이제 다양한 종과 함께 살아갈 길을 원할 수 있다. 놀라운 성취를 보였지만 행복해지지 않았던 사피엔스다. 더 많은 것을 얻으려고 삶을 황폐화시키기 전에 행복을 원할 수 있다.

오십에 길을 묻는 이 기획에 <사피엔스>를 생각하는 까닭은 두 가지다.

하나는 발상의 전환이다. 이 책을 읽기 전엔 인류가 농업혁명을 통해 놀라운 발전을 이룬 줄 알았다. 그런데 하라리는 생존과 번식이라는 진화의 기준으로 보면 밀이 이 지구상에서 가장 성공한 식물이라고 말한다. 밀은 사람을 자신의 이익에 맞게 조작했고, 사람은 아침부터 밤까지 밀을 얻기 위해 고되게 일하게 됐다. 삶이든 그 무엇이든 어떤 시선에서 보느냐에 따라 그 평가가 달라진다. 그동안 나는 너무 관성적으로 삶을 이해하고 살아왔던 건 아닐까.

다른 하나는 행복에 대한 질문이다. 종의 번성을 묻는 것과 종의 행복을 묻는 것은 다르다. 마찬가지로 내가 무엇을 이루었는지를 묻는 것과 내가 행복한지를 묻는 것은 다르다. 돌이켜 보면 젊은 사피엔스로서 오랜 시간 성취에 대해 물어왔다. 행복은 성취에 자연스럽게 따라 오는 것인 줄 알았다. 더 이상 젊지 않은 지금, 이제 행복을 묻고 싶다. 남은 시간을 잘 살아가는 데 이것보다 좋은 질문은 없을 것 같다.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