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니메이션 사상 최고의 오프닝’. 디즈니 픽사의 애니메이션 <업(Up)>에는 이런 찬사가 붙는다. 동심 가득한 어린 시절의 첫 만남, 애정 충만한 신혼생활, 서로에게 의지한 노년, 그리고 외로운 사별까지 한 부부의 50년의 세월이 단 4분에 담겨 있기 때문이다. 공동 연출한 피트 닥터와 밥 피터슨 감독은 단지 헬륨 풍선에 집만 매달아 올린 것은 아니었다. 삶·꿈·사랑·행복·추억과 같은 단어도 함께 하늘 높이 띄웠다.
애니메이션 <업>은 디즈니 픽사의 열 번째 장편 애니메이션 영화이자, 사람이 주인공인 픽사의 두 번째 작품이다. / 나무위키
탐험가 찰스 먼츠를 동경하던 소년 칼은 자신보다 더 모험적인 소녀 엘리를 만난다. 사랑에 빠진 두 사람은 가정을 이루고, 남미에 있는 파라다이스 폭포로 함께 떠날 꿈을 꾼다. 하지만 삶은 녹록지 않다. 여행을 가기 위해 모은 돈은 족족 생활비로 나가버린다. 노년이 된 칼은 마침내 파라다이스 폭포로 가는 항공권을 끊지만, 건강이 악화된 엘리는 동행하지 못한다. 홀로 된 칼은 주변과 단절된 괴팍한 노인으로 변해간다.
그런 칼에게 꼬마 러셀이 찾아온다. “오늘 제 도움이 필요하세요? 저는 할아버지가 길을 건너는 것을 도와줄 수 있어요.” 뜬금없는 제안. 칼은 “아니!”라며 단칼에 거절한다. 러셀은 물러서지 않는다. “할아버지가 앞마당을 지나는 것을 도울 수 있어요.”, ”아니!”, “할아버지가 베란다를 지나는 것을 도울 수 있어요.”, “아니!” 칼은 신경질적으로 문을 닫아버린다. 그런데 닫고 보니 조금 미안하다. 살짝 문을 여니 러셀이 그 자리에 그대로 있다. “도와드릴 것은 없나요.” 칼이 황급히 문을 닫으려 하자 러셀이 문틈으로 발을 집어넣는다. 칼은 할 수 없다는 듯 말한다. “계속 말해봐.”
세일즈맨이 낯선 소비자에게 물건을 팔려면 일단 말을 거는 게 중요하다. 소비자가 “필요 없다”며 문을 닫을 때 한 발 들이대면서 “사라는 게 아니에요”라며 대화를 이어가야 한다. 사지 않아도 된다는데 막무가내로 내치는 건 좀 미안해서 소비자는 일단 세일즈맨의 말을 들어보게 된다. 이를 경영학에서는 ‘풋 인 더 도어(Foot in the door)’ 전략이라고 한다. 일명 ‘문 안에 한 발 걸치기 전략’이다. 먼저 사소한 부탁을 해 거절하지 못하도록 한 뒤 정말 원하는 요청을 해 승낙받는 방법이다.
풋 인 더 도어 전략은 1966년 프리드먼 교수의 논문을 통해 널리 알려졌다. 조사관이 가정집에 찾아가 2시간 동안 집에서 요리할 때 쓰는 제품을 조사해도 되겠느냐고 물었더니 22%만 동의하겠다고 답했다. 하지만 조사관이 소비생활에 대한 설문조사를 해달라고 요청한 뒤 3일 뒤 다시 찾아가서 같은 요청을 했더니 “알겠다”고 답한 비율이 43%로 2배나 높아졌다. 기본 상품가격을 낮게 책정한 뒤 세부적인 옵션을 추가해 가격을 올리는 방법도 ‘풋 인 더 도어’를 이용한 마케팅 기법이다. 고가인 자동차 판매 때 많이 적용되는 방식이다. 작은 부탁을 들어줬을 뿐인데 왜 이어진 큰 부탁을 또 들어주게 되는 것일까? 심리학에서는 사람들이 일관성을 유지하려는 심리가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다시 애니메이션으로 돌아가 보자. 알고 보니 꼬마 러셀은 어른들을 도운 뒤 배지를 얻어야 했다. 배지 하나만 더 모으면 시니어 야생탐험대원이 될 수 있다. 성가신 러셀을 떼어내고 싶었던 칼은 러셀에게 매일 밤 앞마당에 있는 철쭉을 다 먹어버리는 도요새를 잡아 달라고 부탁한다. “제가 반드시 잡아드릴게요”라며 뛰어나가는 러셀을 보며 만족스러운 웃음을 짓는 칼 할아버지. 도요새는 멸종된 새다. 러셀은 과연 도요새를 찾을 수 있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