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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제2의 인생은 나의 의미를 찾기 위한 여정

입력 2020.06.19 15:22

  • 성지연(국문학 박사·전 연세대 강사)

역사학자들의 책을 읽으면 참 시간을 길게 쓴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역사학자들은 인간과 사회에 대해 깊은 통찰을 제공한다. 생물학자는 그보다 더 나간다. 35억 년 생명의 역사를 놓고 하는 말이니 무게가 참 남다르다.

최재천 초대 국립생태원장이 2016년 11월 과의 인터뷰에서 서천국립생태원 어린이 생태글방에서 벌집 모양의 서가에 들어가 책 읽는 포즈를 취하고 있다. / 박민규 기자

최재천 초대 국립생태원장이 2016년 11월 <경향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서천국립생태원 어린이 생태글방에서 벌집 모양의 서가에 들어가 책 읽는 포즈를 취하고 있다. / 박민규 기자

생물학자 최재천의 <당신의 인생을 이모작하라>(2005)의 부제는 ‘생물학자가 진단하는 2020년 초고령 사회’다. 2005년 책에서 우리나라는 2018년 65세 이상 노령인구가 14%를 넘어 고령사회에 속할 것으로 예견된다. 2020년에 보니 우리 사회는 그보다 1년 빠른 2017년 고령사회에 도달했다.

‘1분기 출산율 0.90명으로 추락… 사상 처음 5개월째 인구 자연 감소.’ 지난 5월 27일 <연합뉴스>의 기사 제목이다. 이제는 부부가 한 명도 채 낳지 않는다. 사망자 수가 출생자 수를 넘으며 인구가 줄어드는 중이다. 최재천은 자신의 경고가 틀려서 2020년에 비난을 받으면 기쁘겠다고 하지만, 비난은커녕 15년 전 그의 글을 꼼꼼하게 읽어봐야 하는 상황이다.

100세 시대, ‘번식기’와 ‘번식 후기’

최재천에 따르면 인간은 자신의 역사에서 대체로 인구 대체 출산율인 2명 남짓을 유지하며 살아왔다. 그런데 농업혁명 이후 ‘불과’ 1만 년 전부터 급속한 인구증가를 거치며 스스로 산아제한을 해야만 하는 ‘기이한’ 생물이 되었다. 그러더니 이제는 선진국부터 인구감소를 걱정하고 있다. 특히 우리나라는 선진국이 고령화(65세 이상 노령인구 비율 7% 이상)에서 고령사회로 가는 데 40~115년이 걸린 것에 비해 17년 만에 고령사회에 도달했다. 최재천은 생물이라면 번식이 최대의 목표인데 스스로 출산율을 낮추는 건 생물이기를 거부하는 거라고 말한다. 또 출산과 관련해 인간은 번식기가 지나서도 상당한 기간을 사는 특이한 생물이라고 덧붙인다. 초창기 인간의 평균수명은 50년을 넘지 못했는데 50세는 여성이 완경을 하는 시기다. 생식능력을 잃는 시기에 거의 죽었다는 뜻이다.

이제 상황은 다르다. 100세 시대가 되면 인간은 생식이 가능한 시간만큼 생식하지 않는 시간을 살아야 한다. 최재천은 이를 ‘번식기’와 ‘번식 후기’로 나눈다. 그는 평균수명 100세 시대를 맞이해 인생을 아예 둘로 나누어 살자고 제안한다. ‘두 인생 체제’에서 제2인생은 제1인생만큼이나 중요하다. 한국은 대략 2036년과 2037년 사이에 번식기 인구와 번식 후기 인구가 같아지는 ‘비생물학적’ 사회가 될 예정이다. 한 16년 후에는 50세 미만과 50세 이상 인구가 같아진다는 얘기다.

일단 고령화 속도를 조금이라도 늦추는 게 급하다. 관건은 저출산이다. 아이를 낳지 않는 것은 부부가 함께 내리는 이성적 결정인데, 번식기에 풍요로운 삶을 보장해 주지 않으면 이 추세를 돌이킬 수 없다고 최재천은 말한다. 여기에서 그는 조혼과 조기 출산의 장점을 소개한다ㅍ. 개체군생태학에서 첫 번식 시기를 앞당기면 출생률이 놀랍게 증가한다고 하니, 새겨들을 만하다.

삼성경제연구소

삼성경제연구소

고령사회의 가장 큰 문제는 노동인력 감소다. 이를 위해서는 여성의 경제활동 참여를 보장할 제도부터 손봐야 한다. 지금처럼 여성이 주로 낮은 임금의 비정규 노동을 담당하고 구조조정의 1순위가 되어서는 경제활동 참가가 어렵다. 출산율도 높이기 어렵다. 성적으로 평등한 사회문화, 믿고 맡길 보육시설, 신뢰할 수 있는 교육 등 사회가 갖춰놓아야 할 것은 너무도 많다.

제2인생을 위한 제도적 설계도 필요하다. 복지·은퇴·연금·재교육·취업 등에서 사회가 해야 할 일이 많다. 여태까지의 사회는 한편으로 정규교육을 받고 사회에 나가 일을 배우고, 한편으로 결혼을 하고 자식을 낳아 기르던 제1인생에 맞춰져 있었다. 현실이 빨리 변하고 있으니 그에 맞춰 빠른 변화가 필요하다. 개인도 제2인생에 대한 대책이 필요하다. 낡은 몸으로라도 할 수 있는 일을 해야 한다.

최재천은 고령화에서 제일 중요한 것이 건강이라고 말한다. 나이를 먹어가는 ‘노화’보다 노년기에 신체기능이 약화되는 ‘노쇠’에 주목해야 한다는 그의 말은 날카롭다. 노년의 건강은 의료비 지출만의 문제도 아니다. 고령인구가 늘수록 국민 전체의 면역력이 감소해 전염병이 기승을 부릴 수가 있다는 지적은 코로나19로 비상인 지금 정말 와닿는다.

낡은 몸의 제2인생에 대한 대책 필요

최재천은 제2인생을 위해 40대부터 교육을 새롭게 받아야 한다고, 인생의 이모작을 해야 한다고 말한다. 이미 50대에 들어선 나는 좀 늦었다. 여태까지의 교육은 제2인생에 맞춰져 있지 않았다. 50대 이후를 진지하게 생각해보지도 않았다. 그런데 50대가 되고 보니, 지금까지의 신통치 않은 성적표만 문제가 아니라 거의 살아온 만큼의 시간을 살아가야 하는 게 문제였다. 인생을 번식기와 번식 후기로 나누어 보면, 50대 이후는 이전과는 다른 방식으로 살아야 한다.

일단 현실을 받아들이는 것부터 해야겠다. 몸이나 정신이나 제1인생에서처럼 팔팔하지 않다. 새로 거창한 일을 벌일 생각은 하지 않는다. 어쩌면 이게 제2인생의 더 좋은 점인지도 모르겠다. 번식과 양육 같은 번식기의 과제를 훌훌 던지고 나면 크게 욕심을 부릴 것도 없다.

50대 이후 어떻게 살지의 고민이 이 연재의 출발이었다. 지금 나는 어디에 있는지, 어디로 가야 하는지를 들여다보고 싶었다. 어렸을 때 본 어른들은 삶에 뭔가 답이 있는 것처럼 굴었다. 어른이 되고 보니 답 같은 건 없었다. 누구나 처음 가는 길을 가끔 나타나는 신호에 의지해 가는 거였다. 잡지 못한 신호는 이내 시야에서 사라져버렸다.

50대의 선 자리를 둘러보며 쓸쓸하고 아쉬운 게 나만은 아닐 게다. 오전반 오후반까지 있던 과밀학급의 초등학교를 나온 우리, 대학교에 들어가려고 도시락 두 개씩 싸가지고 다니며 사지선다의 학력고사를 준비하던 우리, 최루탄이 매캐한 대학을 졸업해 워라밸도 모르고 일을 해온 우리. 거칠었지만 제1인생에서 삶의 경로는 선명한 편이었다. 내가 잘하고 못 하고의 문제였지 주어진 선택지는 어쩌면 단순했다.

“제1인생이 성공이란 목표를 위해 땀을 흘린 시기라면 제2인생은 삶의 의미를 찾기 위한 새로운 여정이다.” 책을 읽고 다이어리에 이 말을 적어두었다. 그리고 덧붙였다. ‘제1의 인생이 가족을 위해 땀을 흘린 시기라면 제2의 인생은 나의 의미를 찾기 위한 여정이다.’ 같이 늙어가는 친구들과의 단톡방에 이 말을 올릴까 말까 고민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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