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원동 골목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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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원동 골목길

입력 2020.06.05 16:49

수정 2021.06.04 14: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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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천 자유기고가

도시건축 연대기를 보여주는 공동주택

지하철 6호선 망원역 2번 출구에서 한강공원으로 이어지는 긴 주택가 골목은 그야말로 화제가 몰리는 ‘힙’한 곳이다. 텔레비전 예능프로그램의 단골 촬영지가 됐고, 맛집 탐방객들과 소위 ‘인싸’들의 놀이터가 됐다. 경리단에 빗대 망리단길이란 새로운 길 이름도 생겼다. 외부인의 발길을 빼고서도 이 일대 골목길은 주민들로 붐비고 길목 장터가 북새통을 이룬다.

역 주변에서 두릅을 파는 행상에게 장사는 어떠냐 묻자, “요새 잘 된다. 물건들이 다 잘 팔린다”고 했다. 긴급재난지원금이 풀린 효과는 골목 장바닥 가장 낮은 곳부터 확실히 보였다. 겨우 비를 피할 만큼 반자를 얹은 반 평짜리 가게에서 잡곡을 파는 상인은 “장사 안 된다는 얘길 한숨처럼 달고 살았는데, 요즘엔 잘 된다. 예전엔 구경꾼만 많았는데 이젠 손님이 많다”고 웃는다.

맛집 탐방객과 ‘인싸’들의 놀이터

주택가 골목에서 거의 사라져가는 동네 빵집, 이발소, 만둣가게, 공중목욕탕, 옷 수선집이 망원동 골목에는 살아 있다. 빵집 주인은 유모차를 끌고 가던 할머니와 손주 자랑에 자식들 뒷얘기를 나누며 빙긋이 웃는다. 팔자 좋게 남의 가게에 짐을 맡기고 일 보러 갔던 손님이 보따리를 찾아가며 먹을거리를 내놓고 가는 모습도 볼 수 있었다. 더덕과 부추 따위를 놓고 파는 노점엔 손님인지 친구인지 노인네들이 잔뜩 몰려 함께 찬거리를 다듬고 있다. 노점상은 눈이 마주치자 서슴없이 깎은 오이 한 토막을 먹으라고 건넨다. “길에서 만났으면 콩이라도 나눠 먹는 거지. 이게 뭐 비싼 거라고 나누지도 못하냐”는 것이 처음 본 행상 노인의 이야기다. 그러니 풋콩 한 되라도 사지 않을 도리가 없다. “장사 오래 한 사람들은 아저씨들한테 좋은 물건 더 많이 주는 법이다. 주부들이야 빠삭하니 잘 알아서 고르고 깎기도 하지만 남자들은 그러지 못한다. 잘못 사 왔다고 마누라한테 퉁 받으면 다신 안 오니 덤도 더 많이 준다”고 했다.

최근의 번영과 달리 망원동은 한때 그야말로 망한 동네의 전형이었다. 1970년대 초까지만 해도 한강 둑 너머로 분뇨를 퍼다 버리던 곳이었고, 화장실조차 없던 판자촌이 강둑을 타고 들어서 있었다. 장마철이면 물난리가 나고 외져 교통도 좋지 않았다. 인근 상암동 쓰레기장이 김포 매립지로 옮겨지고, 주변에 아파트단지가 들어섰다. 월드컵이 열리면서 도로와 공원이 정비되자 망원동에도 볕이 들기 시작했다.

골목이 정비되고 옛집들을 허물어 공동주택들이 들어서면서 주민들도 젊어졌단다. 인근 홍대 지역이 상업지구로 잘 나가면서 망원동으로 상권이 넓어진데다가 한동안 일대를 뒤숭숭하게 만들었던 재개발이 꺾이면서 동네가 살아났다고 한다. 부동산 업자는 “이 동네 땅값·집값·방값 다 올랐다. 골목 안 구옥도 개조해서 가게 만드는 게 유행이고 좀 낡은 연립주택들은 재건축 업자들이 눈독을 들인다”고 전한다.

동네가 뜨면서 주민들의 불편도 늘었단다. 골목마다 ‘주택가이니 밤늦은 시간 고성방가를 삼갑시다’라는 표지판이 붙어 있다. 공영주차장 입구에는 ‘주차장 만차로 대기행렬이 길어지면 주민 차량 통행을 위해 비켜주세요’란 간판이 눈에 띈다. 심지어 주민 일부는 ‘망리단길’이란 이름을 지워달라는 연판장도 돌렸다. 학자들은 상업지로 유명해지면서 임대료가 올라 원주민이 떠나게 되는 젠트리피케이션에서 더 나아가, 관광지로 유명해지면 그와 같은 현상이 벌어지는 투어리피케이션이란 새로운 조어도 만들었다. 투어리피케이션의 대표지로 망원동을 꼽는다. 젠트리피케이션이든 투어리피케이션이건 가장 큰 피해자는 그 땅에서 얌전히 살아가는 주민들이다.

보행기에 의지해 골목을 걷던 노인은 “변하기도 참 많이 변했는데 요즘 10년 동안 변한 게 40년 동안 바뀐 것보다 더 크다”고 했다. 50년을 살며 지켜본 망원동이 이제 그에겐 낯선 곳이 됐단다. 골목 안 깊은 곳에도 커피콩을 볶는 세련된 카페가 문을 열었고, 딱 식탁 하나만을 놓고 손님을 가려 받는 스테이크집도 보인다. 손님들은 아무리 봐도 이 동네와는 무관한 외지의 젊은이들로 보였다. 노인은 “복잡해도 너무 복잡해졌다. 젊은이들이 늘어서 좋긴 한데 시끄럽고 꼭 남의 동네에 온 것 같다”고 했다. 그래도 동네 곳곳이 예쁘게 변해가는 것은 좋다고 한다.

모두 가게로 바뀐 단독주택들

동네 골목길을 깊이 들어서면 아주 예전의 망원동을 만날 수 있다. 빛바랜 시멘트 기왓장이 간신히 버티고 있는 블록 단층집이 골목에 비켜서 줄을 잇는다. 그 곁으로 어느 시절의 양식인지 알 수 없는 네모난 연립주택에 ‘비둘기주택’·‘천사주택’ 같은 간판이 크게 붙어 있다. 천사들이 비둘기처럼 모여 사는 곳이라는 뜻일까. 하지만 계단은 가파르고 덧칠한 외벽은 금세라도 부스러질 것 같았다. 위태로운 연립주택에 높이 솟은 붉고 하얀 신장기가 분위기를 더 숙연하게 만들고 있었다.

망원동 골목의 공동주택들은 도시건축의 연대기를 고스란히 보여준다. 1960년대식 블록집과 70년대 초의 네모반듯한 시멘트 연립주택에 이어, 80년대식 붉은 벽돌 다세대주택이 눈에 띈다. 90년대식 드라이비트 외벽의 다가구주택과 비교적 최근에 지어 필로티 양식으로 1층에 주차장을 만든 공동주택까지 다양했다. 낡은 레트로와 최신 공법이 한 골목을 만들고 있다. 대충 외관만 보아도 그 집에 사는 이들의 연령층과 살림살이까지 비쳐 보이는 민망함이 골목을 채운 것이다.

가뭄에 콩 나듯 살아남은 단독주택들은 모두 가게로 바뀌었다. 젊은 감각의 인테리어와 골목에 어울리지 않게 사치한 향수며 보석 등을 파는 곱게 꾸민 상점이 됐다. 감각의 차이가 골목의 색과 형태를 바꿔놓고 있다. 누가 어떻게 꾸미느냐에 따라 아주 낡은 마을은 최신 유행의 중심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쇼윈도를 배경으로 셀카를 찍는 젊은이들이 이 골목의 또 다른 장식품으로 보인다.

망원역 2번 출구의 곧게 뻗은 길이 시장골목처럼 보이지만 진짜 시장은 골목길 중간에 동서로 길게 뻗어 있다. 망원시장과 길 하나를 건너 계속 이어지는 월드컵시장. 이 일대에서 가장 크고 분주한 시장이다. 전통시장치고는 발 디딜 틈 없이 손님 많고 물건 많은 잘 나가는 시장이다. 한데 장 보는 인파는 시장 안보다 시장 밖 골목길에 더 많았다. 골목 과일가게에는 한낮에도 십수 명이 계산대에 줄을 서 있고, 채소가게며 생선가게도 분위기는 비슷하다. 심지어 좌판 행상조차 손님맞이에 눈코 뜰 새 없이 바빴다.

잘 정비된 시장 안 분위기도 사람이 많기는 마찬가지였지만, 동네 사람 반 외지인 반으로 보였다. 파는 물건들도 장바구니를 채울 만한 물건과 먹거리가 반반이다. 장 보러 오는 곳이기도 하지만 방송 탄 소문난 먹을거리 장터 분위기가 물씬했다. 방송프로그램에 나온 화면을 크게 붙여 광고하며 손님을 끌고 있는 3500원짜리 칼국숫집과 달콤한 맛과 매운맛으로 소문난 닭강정집도 손님이 줄을 서 있었다. 떡집이며 식혜집, 직접 곤 추어탕과 곰탕을 포장해서 파는 반찬가게도 있고, 엄마 손맛을 강조하는 밑반찬집도 눈에 띈다.

이것저것 장을 본 할머니는 주인에게 “1305호야”라며 장바구니를 맡긴다. 물건을 사면 배달서비스를 하는 가게도 있었고, 아예 시장 중간쯤에 배달서비스를 도맡아 하는 사무실도 있다. 전통시장도 생존을 위해 점점 진화하고 있다. 시장 바로 곁에 공영주차장이 있어 시장의 골칫거리인 주차문제도 해결되는 셈이다. 이래저래 망원시장의 성공은 이유가 있어 보인다.

어린이부터 노인까지 다양한 연령층

시장을 오가는 인파 위로 길게 내걸린 현수막이 눈길을 끌었다. ‘축구장 32개 크기 상암 DMC 롯데복합쇼핑몰 강행 즉각 중단하라!’ 시장상인회가 내건 현수막이다. 2013년 서울시로부터 부지를 사들인 롯데는 복잡한 사정으로 쇼핑몰 건립을 미루고 있다. 쇼핑몰이 들어서면 전통시장의 위축이 불 보듯 뻔하다는 것이 시장 상인들의 주장이고, 그 위기감은 상권을 보장하라는 요구로 이어지고 있다. 이해관계의 차이는 골이 깊고 해결책은 쉽지 않아 보이지만 시장을 오가는 손님들은 무심해 보였다.

오히려 위기는 시장 주변에서 긴 그림자를 뻗치고 있었다. 시장 밖 채소가게가 시장 안의 가게보다 더 번창하고 오래된 주민들은 길목 상인들과 익숙하게 인사를 나누는 모습이 쉽게 보인다. 생물 낙지를 고르던 손님은 “망원시장은 외지인들한테 유명하지만, 이 골목 상인들은 예전부터 단골이다”라고 설명했다. 시장 안 가게들은 유행 따라 업종도 자주 바뀌고, 외지 구경꾼들 발길이 더 많다는 것이다.

시장 바깥 거리에 아주 오래된 소아과 병원 건물이 눈에 띈다. 건물 모양도 간판 글자체도 70년대식임을 한눈에 알 수 있을 만큼 오래된 곳이다. 아마 이 동네에서 태어난 병원을 드나들었을 어린이들은 이제 노인이 됐을 것이다. 병원은 굳게 문을 닫았다. 문 닫은 지 제법 시간이 흘러 보였다. 그 옆 가게 문에 ‘깔끔한 카페식 대기실, OO소아과’라는 안내판이 붙어 있다. 세련된 요즘 엄마들은 오래된 소아과보다 세련된 카페식 의원을 찾아갈 것이다. 세월은 흘렀고 문화는 바뀌었다. 소비에서 향유로 넘어가는 길목의 모습을 망원동 골목길에서 찾을 수 있다.

살아 있는 골목길의 특징은 주변의 시장과 장터의 번창에서 찾아볼 수 있다. 사람들이 떠나고 젊은이가 사라진 동네의 골목은 우울한 불황의 색을 짙게 입고 있다. 어린이부터 노년의 사람들까지 어느 연령층도 빠지지 않고 볼 수 있는 곳이 망원동 골목이다. 아이들은 재잘거리고 노인들은 느리게 걸으며, 청소년들은 1000원짜리 호떡 하나를 입에 물고 신나게 몰려다닌다. 젊은이들은 유행을 찾아 부지런히 골목길을 헤집고 있다. 시장은 번창하고 사람들의 주머니는 두둑해 보인다. 근래 보기 드문 서울의 골목길이 망원동에 있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목에서 가족을 위해 장을 보고 장바구니의 무게만큼 행복한 미소를 짓는 풍요로운 발길이 그 골목길을 걷는다. 어려운 시절이지만 견뎌낼 수 있는 힘을 사람들에게 돈이 풀린 골목길에서 찾아볼 수 있다. 세상의 평화는 사람들의 두둑한 주머니에서 나온다. 망원동 골목길이 보여주는 밑바닥 경제의 생생한 모습이다.

망원시장은 전통시장 활성화에 성공한 모습이다.

망원시장은 각종 맛집 탐방의 필수 코스가 됐다.

망원동 골목길은 옛 골목길의 정서가 고스란히 남아 있다.

새로운 업종과 가게들이 골목길의 분위기를 젊게 만들었다.

서울의 힙한 명소가 되면서 망리단길이라는 새로운 이름이 붙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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