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시인은 생각대로 살지 않으면 사는 대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 말이 참이라면, 사는 대로 생각하지 않으면 생각대로 살 수 있다도 참이다. 그러니까 살아가는 틀을 벗어나 생각할 수 있으면 얼마든지 자유롭게 살아갈 수 있다는 얘기다. 어려운 점이 있다면, 살아가는 틀을 벗어나 생각하는 게 바다를 한 번도 보지 못한 사람이 파도를 상상하는 것과 같다는 정도랄까. 이럴 때는 내가 살아가는 틀에서 생각할 수 없는 다른 이의 삶을 들여다보고 싶다.
변산공동체 아이들은 ‘노는 것’에 충실하다. 교실도 이웃집이고, 선생님도 ‘이웃집 아저씨, 아줌마’들이다. 밭일을 마치고 돌아가는 변산공동체 아이들 / 김문석 기자
<흙을 밟으며 살다>(2010)를 읽으며 책을 지은 윤구병의 삶을 생각한다. 윤구병의 삶은 이채롭다. 월간 <뿌리깊은 나무> 초대 편집장이었고, 보리출판사에서 어린이책 기획을 했고, 충북대 철학과 교수를 했다. 1995년 53세, 15년 만에 교수직을 그만두고 전북 부안군 변산으로 들어가 농사를 지으며 변산공동체를 꾸렸다.
이 기획의 바로 앞글에서 숲으로 들어가 자급자족했던 헨리 데이비드 소로의 <월든>을 다뤘다. 소로의 월든과 윤구병의 변산은 살아가는 틀에서 벗어나 새로운 삶을 꾸리는 터전이 돼주었다. 차이가 있다면 소로는 새로운 터전에서 개인의 자유를 밀고 나갔고 윤구병은 공동체의 삶을 밀고 나갔다는 데 있다.
“예수나 석가의 행적을 보면 잘 알 수 있다. 혼자서 천국에 갈 수 있는데, 혼자서 극락에 가 잘 살 수 있었는데, 죄 지은 사람을 사랑해서, 대자대비심으로, 인류를, 중생을 구제하려고 그런 것이라고? 천만에 말씀!… 모두가 사람답게 사는 법을 알아서 실천에 옮기지 않으면 스스로도 사람다운 사람이라고 할 수 없다는 홀로 섬의 불완전함에 대한 의식이 이분들을 가장 사람답지 못한 삶을 살고 있는 이들 곁에 세운 것이다.”
혼자가 아니라 함께 어울려 살기
윤구병은 예수나 석가까지도 모두 함께 변하지 않으면 홀로 변할 수 없기 때문에 사람들 사이로 가야 했다고 주장한다. 그래서 그 역시 변산에서 혼자가 아니라 함께 어울려 살기 시작했다.
사람이 모여 사는 데 문제가 없었을 것 같지 않다. 서로에게 익숙지 않은 것들도 있을 거고, 새로 만들어야 할 약속도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책으로 들여다보는 공동체는 정겹다. 일 많은 봄·여름·가을을 보낸 겨울, 공동식당에 둘러앉아 수확한 고구마 같은 걸 먹으며 술도 한잔 마시고 밤늦도록 도란도란 이야기하는 광경이라니. 함께함의 온기가 책 밖으로 흘러넘친다.
윤구병이 바라보는 공동체가 변산공동체만은 아니다. 도시와 농촌도 더불어 살아가는 커다란 공동체고, 자연과 사람도 함께 살아가는 공동체다.
농부 윤구병은 ‘왜 우리가 당신들을 먹여 살려야 하는가?’를 묻는다. 그에 따르면 도시 사람들은 시골 사람들을 징검다리 삼아 자연을 일방적으로 착취한다. 손에 흙을 묻히지 않고 밥을 먹고 사는 도시 사람이 읽다가 찔끔했다. 정당한 돈을 치른다는 변명도 통하지 않는다. 내가 하는 모든 활동을 돈으로 환산하면 억울한 것처럼 농사에 드는 품을 그저 돈으로 치르기는 어렵다.
윤구병은 ‘오무(五無)농법’으로 농사를 짓는다. 유기농법은 화학비료·제초제·농약을 안 쓰는 농사인데 여기다가 밭에 비닐을 안 깔고, 축산퇴비를 안 쓰는 농사라고 한다. 이 오무농법으로 지으려니 농사짓는 수고가 엄청나다. 그가 사람과 자연이 더불어 살 길이 트여야 사람과 사람이 더불어 살 길이 열린다고 믿는 사람이라 그럴 것이다.
변산공동체는 농작물만 아니라 사람을 키우는 교육공동체다. 윤구병은 모든 사람이 자유롭고 평등하고 평화롭고 협동하는 터전을 가꿀 자율적이고 창조적인 미래세대를 길러내 그들이 새로운 생산공동체의 주인이 되도록 하자고 말한다.
자유·평등·평화·협동 모두 쉽지 않은 말이다. 다 정리하고 시골에 가 농사나 지으면 어떨까, 하는 생각으로 읽다가는 참 머쓱해진다. 다르게 살면 다르게 생각하는 것은 맞지만 이 정도라면 애초에 다른 생각을 갖고 다르게 살기를 택한 것이다.
애초에 다른 생각을 갖고 다르게 살기
휴머니스트
모두가 당연하게 갖는 생각에 대한 윤구병의 거부는 근본적이다. 그가 보는 현대인은 노예의 도덕인 부지런함을 미덕이라고 생각하는 이상한 사람들이다. 현대인은 게으름을 피울 인간적인 특권을 잃었기 때문에 이웃과 이야기를 주고받고, 생각의 실타래를 풀어내고, 삶의 참뜻을 파헤칠 시간을 갖지 못한다.
“이 꿈도 한여름 밤의 꿈으로 끝나지 않고 구체적인 현실 속에서 뿌리내리려면 이 작업 자체가 죽음의 원리에 목숨을 걸고 맞서는 치열한 투쟁을 동반할 것이고, 그 과정에서 이 사회를 변혁하고 세상을 뒤집는 힘을 끌어내야 할 것이다.”
윤구병의 꿈은 농촌공동체에 들어가 실험학교를 세우는 것이다. 이 글에는 몇 해 뒤에 대학을 그만두고 실험학교로 가서 학생들을 맞을 것이라는 계획이 밝혀 있다. 결국 윤구병의 다른 삶은 오랫동안 익힌 다른 생각에서 출발한 게 분명하다. 자연과의 다른 관계에 대한 생각이 도시를 떠나 시골로 가게 했고, 사람과의 다른 관계에 대한 생각이 공동체를 꾸리게 했다.
<흙을 밟으며 살다>를 읽다 보면, 다르게 생각하는 것이 얼마나 힘이 센지도 알겠지만 생각대로 사는 게 얼마나 어려운지도 알겠다. 그리고 윤구병이 지적하는 대로 ‘자연과의 관계’와 ‘사람과의 관계’ 모두 근본적인 성찰을 요구하는 것도 알겠다.
삶의 터전을 떠나 새로운 공동체를 꾸릴 생각은 현재로선 없다. 모두가 각자의 삶을 충분히 누리며 느슨한 형태로 맺는 연대 정도면 나도 감당할 수 있을 것 같다. 삭막한 도시 생활이라 하더라도 동네 공동체도 있고, 온라인과 오프라인을 넘나드는 취향의 공동체도 있다. 오십을 넘어 내가 어울릴 만한 공동체들을 최근 눈여겨보고 있다.
더해, 도시 한복판에 앉아 자연과의 관계를 회복할 방법은 무엇이 있을까. 도시와 농촌과 자연이 모두 동떨어져 존재하지 않는다는 생각의 전환에서 시작해 소비자로서의 적극적인 역할이 있을 것이다.
유기농산물을 사 먹는 게 생색낼 일은 물론 아니다. 요새는 많이 편해졌지만 20년 전에는 쉽지 않았다. 종류가 적고, 맛이 덜한 물건도 많고, 품절이 잦았다. 유기농산물을 사 먹는 게 내 몸을 위해서인 건 맞다. 그래도 이 땅에 농약이나 화학제품이 조금이라도 덜 쓰이길 바라는 마음이 있었고, 먹거리를 이렇게 길러낸 분들의 수고를 생각하며 구매해 왔다. 그래서 그동안 무척 고마웠다는 말을 이참에 농부님들에게 꼭 전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