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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간소화하고 간소화하라’는 소로의 충고

입력 2020.05.08 15:34

  • 성지연(국문학 박사·전 연세대 강사)

“왜 우리는 이렇게 쫓기듯이 인생을 낭비해 가면서 살아야만 하는가? 우리는 배가 고프기도 전에 굶어 죽을 각오를 하고 있다. 사람들은 제때의 한 바늘이 나중에 아홉 바늘의 수고를 막아준다고 하면서 오늘 천(千) 바늘을 꿰매고 있다.”

소로가 미국 매사추세츠주 월든 호숫가에 지은 오두막 / 경향자료

소로가 미국 매사추세츠주 월든 호숫가에 지은 오두막 / 경향자료

이렇게 말하는 청년은 28세에 미국 매사추세츠주에 있는 월든 호숫가에 집을 짓고 2년 정도를 자급자족으로 살았다. <월든>(1854)을 쓴 헨리 데이비드 소로다. 그가 생각하는 낭비는 우리가 생각하는 낭비의 반대다. 돈을 벌려고 열심히 일하면 인생의 낭비다. 호수를 바라보며 하루를 보냈다면 그게 실속있는 삶이다.

그의 계산 방식은 이렇다. 멀지 않은 휘츠버그로 가는 데 누가 빠른가 내기를 한다. 휘츠버그까지 거리는 30마일이고 차비는 90센트다. 이 돈은 하루 품삯에 해당한다. 소로는 당장 도보로 떠나 밤이 되기 전에 도착한다. 한편 상대는 차비를 버느라고 하루를 그냥 보낸다. 운이 좋아 봐야 밤에, 아니면 그다음 날에 휘츠버그에 도착할 수 있다. 결국 걸어간 소로가 이긴다.

28세의 젊은이가 숲으로 간 이유

<월든>을 여는 ‘숲 생활의 경제학’은 이런 방식으로 소박한 생활이 얼마나 남는 계산인지를 보여준다. 비싼 음식과 화려한 집과 입고 남을 옷 같은 걸 버리면 소로의 기준으로 훨씬 풍요로운 삶을 누린다는 거다.

배가 고프기도 전 굶어 죽을 각오를 하게 하는 건 미래에 대한 두려움이다. 미래에 대한 두려움에 휘둘렸다면 20세에 대학을 졸업하고 교사생활을 하다가 학교를 운영하고 잡지에 글을 싣던 28세의 젊은이가 숲으로 들어갈 수 없었을 것이다. 그는 먹고사는 것을 마련하는 일에서 여가를 얻어 인생의 모험을 떠나자고 말한다.

“내가 숲속으로 들어간 것은 인생을 의도적으로 살아보기 위해서였다. 다시 말해서 인생의 본질적인 사실들만을 직면해 보려는 것이었으며, 인생이 가르치는 바를 내가 배울 수 있는지 알아보고자 했던 것이며, 그리하여 마침내 죽음을 맞이했을 때 내가 헛된 삶을 살았구나 하고 깨닫는 일이 없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그래서 그는 숲으로 갔다. 그리고 그 경험은 괴팍한 젊은이의 실험으로 끝나지 않았다. 19세기의 <월든>이 21세기에도 읽히는 이유 중 하나는 그가 월든 호숫가의 생활을 통해 우리의 삶에서 과연 무엇이 가치 있는 것인지를 여전히 묻는 데 있다. 그의 숲속 생활은 고행이나 은둔이 아니라 그가 꿈꿔온 삶과 이상을 실천한 것이었다.

소로는 거친 음식을 먹고, 간소한 옷을 입고, 되는 대로 구한 재료로 오두막을 지었다. 밭에서 김을 매거나 글을 읽고 쓰면서 오전을 보내고, 오후는 완전한 자유의 시간을 보냈다. 농사도 남달랐다. 그는 경작하는 콩들이 자신만을 위해 자라는 게 아니라 우드척이란 야생동물을 위해서도 자라며, 게을리 김을 매 자라난 잡초들의 씨앗이 새들의 주식이라는 걸 주목한 농부였다.

“대자연 속에, 후드둑후드둑 떨어지는 비 속에, 또 내 집 주위의 모든 소리와 모든 경치 속에 너무나도 감미롭고 자애로운 우정이 존재하고 있음을 느꼈다. 그것은 나를 지탱해 주는 공기 그 자체처럼 무한하고 설명할 수 없는 우호의 감정이었다.”

은행나무

은행나무

소로는 ‘간소화하고 간소화하라’로 얻은 자유 안에서 대자연의 존재를 깨닫는다. <월든>이 여전히 읽히는 또 다른 이유는 바로 <월든>이 펼쳐 보이는 이v 자연에 있다. 숲 생활이라고 해서 소로가 고립됐던 것은 아니다. 방문자들도 있었고, 마을까지 산책도 더러 했다. 하지만 대부분의 시간을 고독 속에서 호수와 숲과 식물과 동물을 사귀었다.

도시에서 태어나고 자란 나 같은 사람도 <월든>을 읽으며 호숫가의 풍경에 빠져든다. 어느 겨울밤 기러기 울음소리를 듣고 밖으로 나와 호수를 가로지르는 기러기들을 보고, 그 소리에 화답하는 올빼미 울음소리를 듣는 풍경은 어떤가. 호수의 얼음이 우는 소리가 들리고, 여우들은 눈 덮인 땅을 돌아다니며 짖는다. 찬찬한 관찰자 앞에서 사계절이 천천히 흘러간다.

자유는 유혹과 두려움에서 벗어나야

소로는 이런 자발적 고독을 통해 각자 자신에게 더 가까이 다가가자고 말한다. 세계를 향해서가 아니라 ‘지도 위에 공백으로 남아 있는 자신의 내부’를 향해서 ‘신대륙을 발견하는 콜럼버스’처럼 모험을 떠나자고 말이다.

소로는 우리 각자가 ‘하나의 왕국의 주인’이므로 ‘새롭고 보다 자유스러운 법칙’을 스스로 세워야 한다고 주장한다. 개인에 대한 소로의 옹호는 국가의 제한까지 넘어버릴 정도로 강력하다. 실제로 국가의 잘못을 들어 세금납부를 거부하고 감옥에 갇힐 만큼 그의 기세는 대단했다. 같은 맥락에 놓인 <시민의 불복종>(1848)도 이후 큰 영향을 미쳤다.

소로의 자유는 물질의 유혹과 미래에 대한 두려움에서 벗어난 자리에서 주어졌다. 이런 자유를 그리워하는 사람들이 무엇을 추구해야 하는지가 분명하다. 열심히 일해 돈을 많이 벌면 이런 자유, 이런 인간적인 삶을 살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은 틀렸다. 물질적 풍요에 끝이란 건 없기 때문이다. <월든>에서 큰 감명을 받았다는 간디의 말대로, 모든 사람의 필요에 넉넉한 곳인 지구도 한 사람의 탐욕에는 불충분하다. 맛있는 음식을 먹으려는 시골 농부까지 힐난하는 소로가 좀 과격해 보이지만 물질에 대한 욕망에는 분명 절제가 필요하다.

미래에 대한 두려움은 어떤가. 우리는 지금 알 수 없는 미래의 아홉 바늘을 상상하며 천 바늘을 꿰매느라 헉헉거리고 있는 건 아닌가. 20대의 내가 50대의 아홉 바늘을 위해 꿰매놓은 건 계산이 맞았나. 50대의 나는 그럼 70∼80대를 위해 얼마나 많은 바늘을 꿰매야 하는가. 소로가 숲속 생활을 통해 우리에게 알리고 싶었던 것이 바로 지금 어떤 바늘을 꿰매야 하는지다. 월든 호숫가에서 살던 젊은 청년은 그런 건 남들이 일러주는 게 아니라 자신의 삶과 마주해 알아내는 거라고 강조한다. 이제 어떤 곳에서 살아야 할까. 남은 삶에서 내게 중요한 건 무엇일까. 대체 어디까지가 필요이고 어디까지가 탐욕일까. 죽음 앞에 후회하지 않는 삶을 살려면 무엇부터 해야 할까.

이 나이에 소로처럼 모든 것을 버리고 숲으로 갈 자신은 없다. 하지만 ‘간소화하고 간소화하라’는 소로의 충고는 따르고 싶어 지난 몇 년 동안 미뤄왔던 서가 정리를 시작했다. 한때는 유용했을지 몰라도 의미 없는 책들이 적지 않았다. 그동안 내 마음의 숲을 채워왔던, 이제는 그다지 쓸모없는 지식을 정리한다고 생각하니 그 숲이 환해지는 것 같았다. <월든>이 안겨준 선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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