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덕동에는 오거리가 있다. 강 건너 여의도와 광화문 종로통을 잇는 남북을 관통하는 큰길, 용산과 신촌을 이어주는 동서로 난 길이 있고, 그 사이 서울역으로 가는 만리재길이 오거리를 이룬다. 20여 년 전부터 시나브로 변화하던 일대의 모습은 10년 전 확연히 달라졌다. 비탈에 줄줄이 보이던 낮은 시멘트 블록집은 모두 사라져 아파트단지와 대형 오피스텔 빌딩이 들어섰다. 길게 구획을 나누어 관통하던 경의선 철길도 어느 사이 사라지고 대신 넓은 공터와 공원이 자리를 차지한다. 오래전 이 언덕 달동네에 살던 이들은 어디론가 흩어졌을 터이다.
공덕역은 지하철 5·6호선, 인천공항철도, 경의중앙선이 촘촘히 이어진 거대 환승역이고 앞으로 신안산선도 이곳을 지날 예정이다. 그러니 사람이 모이고 돈이 흐르는 요지가 됐다. 돈이 넘쳐나는 덕분에 공덕역 일대는 말끔히 정비됐다. 땅값은 치솟고 주변은 세련된 모습으로 변했다. 오거리를 둘러싸고 빌딩들이 앞다투어 하늘을 향해 치솟고 있다. 복잡한 골목길들은 모두 사라졌다. 단 한 군데 만리재와 아현마루로 이어지는 길 사이의 삼각 지역에 옛 골목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 그 공간은 한국전쟁 직후부터 지금까지의 모습들이 쌓여 있는 시간의 단층지대이다.
사람 모이고 돈 흐르는 공덕동 오거리
공덕역을 나오면 골목길이 시작된다. 공덕시장이 그 시발에 있다. 공덕시장은 전통시장 중에서도 작지 않던 규모다. 아직도 활발히 사람들이 오가고 길목 가게들은 손님이 그치지 않는다. 떡집이며 과일가게, 반찬가게와 정육점이 손님맞이에 바쁘다. “더 깎아줘”, “어머니 매일 오니까 1500원이나 깎아줬어요”, “더 깎아줘” 실랑이 끝에 가게주인은 감자 두 개를 덤으로 담아서 부리나케 손님의 등을 떠밀었다. 전통시장을 이용하는 이들은 대개 장·노년층이고, 얼굴 알아봐 주고 속내를 들어주며 단골을 맺은 인연이 있다. 그러니 다투더라도 덤 하나 더 챙겨주는 전통시장을 자주 찾는다. “길 건너 아파트단지 사람들도 오긴 하는데 많지는 않다. 그쪽 사람들은 대부분 마트에서 계산하거나 집에서 주문한다. 여기야 오는 손님들이 뻔해서 얼굴도 기억하고 안 사도 인사하고 안부도 묻는 정이 있다”는 것이 채소가게 주인의 이야기다.
좁고 오래된 골목 뒤로 아파트가 보인다.
붐비는 길가 쪽에서 시장 안쪽 골목으로 들어서자 모습과 분위기는 사뭇 다르다. 불이 꺼져 골목은 어둡고 문 닫힌 가게들이 태반이다. 솥에서 순댓국을 퍼 담던 식당 주인에게 분위기를 물었다. “반은 문을 닫았고 반은 건성으로 문만 열어 놓았다. 손님 끊긴 지는 좀 됐고 코로나 사태가 닥치면서 명줄이 끊겼다”고 했다. 그의 식당도 대낮부터 대폿잔을 기울이는, 나이든 손님 두엇을 빼고는 을씨년스럽다. 요즘 곳곳마다 한창인 전통시장 살리기 정비사업도 이곳에서는 흔적을 찾기 어렵다.
골목길 한편에 옷을 걸어둔 가게에 “이곳은 재개발 안 하느냐”고 물었다. “재개발 이야기 나온 지가 30년이 다 돼간다. 잊을 만하면 한 번씩, 구청장 선거 때나 말이 나오는데 아무도 안 믿는다. 언젠가는 되겠지만 언제가 될지 모르겠다”고 했다. 아무리 봐도 옷걸이에 걸린 물건은 요즘 팔릴 것은 아닌 모양새다. 그래도 가게주인은 습관대로 문을 열고 일과에 맞춰 물건을 거둔다. 우리는 오늘도 시대의 변화를 비껴가며 살아가고 있다.
공덕시장은 활기차고 풍성한 전통시장이다.
공덕시장에서 가장 인기 있는 가게들은 족발집과 전·부침개를 파는 가게들이다. 시장에 족발집들이 모이기 시작한 건 대략 10년이 조금 넘었다. 이북내기들이 무리를 이룬 장충동 족발집이나 매운 족발로 이름난 창신시장과 달리 공덕시장의 족발집은 푸짐한 양과 덤으로 유명하다. “족발을 시키면 순대에 돼지 부속 고기가 딸려 나가고 국물도 달라는 대로 준다. 직장인들 회식이나 주머니 가벼운 사람들 술 한잔하고 요기하기에는 푸짐하다”는 것이 족발집 사장의 이야기다. 그는 이곳에 가게를 연 지 13년이 됐다고 했다. 그 무렵부터 한 집 두 집 생긴 가게들이 이제는 공덕시장의 명물이 됐다.
명태전·동그랑땡·빈대떡 등 가지가지 전 따위를 입맛대로 골라 담는 부침가게도 마찬가지로 손님이 줄었단다. “처음엔 버틸 만했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겁이 난다. 이 사태가 지나도 다시 예전처럼 장사가 될지 모르겠다”는 것이 전집 주인의 이야기다. 그나마 공덕시장의 활기를 살리던 족발집이며 전집, 국밥집에서 어려운 탄식이 새어 나오니 다른 상인들의 사정이야 불을 보듯 뻔한 이야기다.
공덕동 곳곳에 60년 넘은 식당들도 남아 있다.
돼지갈빗집 이어 족발집과 전·부침가게
족발이 평정하기 전 공덕동 일대의 주인공은 돼지구이집들이다. 한국전쟁 직후부터 문을 열었다는 최대포집 등 돼지갈빗집들이 마포의 대명사가 됐다. 유명한 가게들은 아직도 번창 중이다. 숯불을 정리하던 종업원에게 사정을 묻자 예전만 못하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영광은 늘 옛날에 있고 앞날은 언제나 불안하기만 한 것일까. 그래도 골목길엔 손님들의 발길이 끊어지지 않고 이어진다.
공덕시장을 지나 초등학교를 지나면 옛날 드라마의 세트장 같은 풍경이 펼쳐진다. 대략 50년도 넘은 연립주택들이 사이사이 박혀 있고, 1990년대 이후 지어진 다가구주택들도 오래된 도시의 골목길 정경을 보여준다. 가게 밖에서 담배를 피우던 세탁소 주인은 “저 건넛마을이 재개발되는 바람에 이리 옮긴 지 10년이 넘었다. 그 사이에도 인심이 변하는 모습이 확확 느껴진다”고 했다. 가게 앞 골목 하나가 재개발된다는 이야기도 들려줬다. 그래도 소규모 재개발이라 동네 분위기는 크게 바뀌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공덕시장은 전 등 부침가게와 족발집들로 명성을 얻었다.
그만그만한 동네 상점들 사이로 교과서와 아동서적으로 유명한 출판사 건물이 크게 자리를 잡고 있다. 1965년 처음 문을 열었을 때부터 자리를 잡고 있었다니 이 골목이 성공의 터전인 셈이다. 골목이 깊어지고 아현마루를 향해 비탈의 기울기가 점점 가파르게 될수록 집들의 모습은 옛 형태로 거슬러 올라가고 있었다.
만리재 방향의 집들은 바깥에서도 재봉틀 돌아가는 소리가 쉼 없이 들려서 눈을 감고도 봉제공장이 있음을 알 수 있다. 객공 구한다는 종잇조각이 어지러이 붙어 있고 오토바이 짐꾼들도 골목 안에서 기다리고 있다. 짐꾼은 “이 동네 공장들이 많이 빠져나갔다. 공장 자리 빈 데가 나도 이쪽으로는 안 들어오려고 한다”는 사정을 들려준다. 몇 해 전 서울역 고가차도가 철거되고 길이 끊긴 다음부터 만리동과 공덕동 일대 봉제공장들이 빠져나갔단다. “짐 싣고 고가 타면 5분이면 가던 길이 이제는 30분도 더 걸린다. 돌아가는 길도 복잡하고 밀리면 기약이 없다”는 것이 요새 사정이라고 했다. 덕분에 가내 공장들이 줄줄이 빠져나갔다. 공장주인이나 세를 놓던 집주인들은 고가차도 철거 결정에 대해 원한이 만만치 않다는 것이다. 누구나 자기 욕망을 통해 세상을 보게 되고 이해관계는 이성보다는 감정의 편에 서게 만든다.
골목길 한쪽에 제법 큰 규모의 고물상이 자리 잡고 있다. 어디서 그리 많은 폐지와 고물이 흘러들어오는 것인지 굴착기 집게손이 종이 더미를 차곡차곡 쌓고 있다. 한쪽에선 병과 플라스틱을 나누고, 또 한쪽에선 의자에 걸터앉아 잡지를 뒤지는 노파도 보인다. 바쁜 틈으로 한가로운 모습이다.
공덕동 골목은 반세기 동안 변해온 시간의 흔적이 존재한다.
재개발 이야기 나온 지 벌써 30년
부동산 업자 두 명이 뜰 넓은 집 앞에서 수작을 부리고 있다. “건물을 올리면 분양 대가로 상가 세 채를 넘겨받게 된다. 그게 대략 5억 정도 보면 될 거다”며 열심히 꿈을 파는데 듣고 있는 이의 표정은 무심했다. 오래된 골목엔 곳곳에 개발을 시도하려는 흔적들이 눈에 띈다. 연립주택 단지에는 재개발추진협의회 간판이 붙어 있으나 그 간판의 나이도 대략 10년을 한두 번은 넘긴 것처럼 보였다. 욕망은 부지런하고 꿈은 화려하나 현실은 언제나 낡은 담 안에 갇혀 있다.
소박하게 이어지던 골목은 아현마루 경사 앞에서 서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길고 곧게 난 골목을 빠져나가면 서부지방검찰청과 서부지방법원이 나온다. 그 뒤편으로 난 골목은 이제껏 보던 공덕동의 골목풍경과는 많이 다르다. 소박한 식당보다 횟집과 일식집, 신을 벗고 들어서는 가옥형 한정식집이 눈에 띈다. 골목길을 지나쳐 오며 만났던 떡볶이집과 된장찌개 백반집이 아니라 삼계탕과 장어구이, 모듬스시가 이 골목의 주메뉴다. 건강식품 전문점도 눈에 띄는 것을 보면 법을 다루는 이들은 유난히 몸이 허약한가 보다.
검찰청과 법원 주변답게 변호사 사무실들이 건물과 골목을 점령했다. 주택가 골목에 어울리지 않는 골프연습장에서 한낮에도 투명한 타격음과 골프공이 그물망에 안기는 둔탁한 소리를 들을 수 있다. 어느 시절 이 일대를 싹 다 밀어버린 채 자를 대고 가로세로를 이어 골목을 만든 듯 반듯한 도시계획의 흔적을 볼 수 있다. 골목길은 좁으나 어디 하나 굽은 데 없이 곧고 길게 대로를 향하고 있다. 법을 다루는 출세한 이들이 걸어왔을 탄탄한 삶의 경로를 골목길조차 닮은 것일까. 어디에도 굽고 험한 길은 보이지 않는다. 법원을 사이에 두고 아주 오래된 교회가 서 있다. 이 시대의 죄악을 구원할 힘을 잃은 탓인지 교회의 철문은 굳게 닫혔고 건물은 폐허의 얼룩을 뒤집어쓰고 있다.
잘 뻗은 골목길은 너무나 쉽게 끝나버렸다. 다시 골목은 복잡하고 비틀어진 모습으로 이어졌다. 사람 하나 겨우 지나갈 좁은 길도 나타났다. 낮은 지붕의 집들, 오래도록 방치된 보도블록의 울퉁불퉁한 골목은 이 마을에서 가장 강하게 버텨온 이들의 터전이다. 좁은 골목 한편에 흙을 실어오고 화분을 이어 붙여 등짝만 한 밭을 만들어 고추며 상추며 가지 따위를 심었다. 이 도시가 잊어버린 농경과 흙의 기억을 이 골목 사람들은 기억하고 있다.
공덕동 일대는 개발과 개발되지 않은 모습이 겹쳐 있다. 큰길 주변으로 높은 건물과 군데군데 새로 세운 아파트가 에워싸고 있지만, 그 안에는 아직 서울의 오랜 골목길들이 남아 있다. 골목에 서서 길의 끝을 보면 이 도시의 욕망이 세운 높은 벽이 우뚝 서 있다. 그 울타리에 싸여 공덕동 골목길은 용케 버티고 있다. 번잡한 세상의 사정에서 한 발 떨어져 언제고 돌아와 쉴 수 있는 집이 있는 곳. 공덕동에서 만날 수 있는 골목길의 정경이다.
<김천 자유기고가 mindtemple@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