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의 정복>이라니. 암만 행복해지고 싶어도 이건 아니지 않나 싶게 허풍스러운 제목이다. 저자는 유명한 버트런드 러셀이다. 수학자·철학자·문필가·사회운동가로 노벨문학상까지 받은 인물 아닌가. 그 당당함에 끌려 책을 샀다. 이 책을 읽으면 행복을 정복할 수 있다고 믿어서가 아니라 행복해지고 싶은 마음으로 샀다. 그만큼 행복해지고 싶었다. 그러니까 나는 행복하지 않았던 것 같다.
이상훈 선임기자
읽다 그만두기를 반복하다 결국 다 읽지 않고 책꽂이 구석에 박아놓았다. ‘이런 부류의 여성들은’, ‘정신적으로 노예나 다름없는 여성들’ 같은 표현들을 마주하면 이 영국인 백인 남자의 말을 들을 필요가 있나, 최소한 21세기의 여성 들으라고 하는 말은 아니구나 하는 마음이 들어서였다. 그러다 몇 년 후, 몹시 행복해지고 싶었던 건지 다시 책을 집어 들었다.
관심을 외부로 돌려야
러셀의 남성중심적 시각은 여전히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러나 러셀이 독자의 행복에 관심을 뒀던 진심은 어느 정도 새롭게 다가왔다. 러셀은 행복이 무엇인가 같은 추상적인 분석을 하려는 게 아니었다. 그 시절 풍습에 휘둘리는 보통 사람들이 어떻게 하면 행복에 이를 수 있는지를 이야기하려고 했다. 그렇게 읽다 보니 러셀의 이야기에 귀 기울일 만한 점들이 다시 보였다.
러셀은 불행으로 고통당하는 많은 사람이 바람직한 방향으로 노력하기만 하면 충분히 행복해질 수 있다고 말한다. <행복의 정복>은 그 길을 안내한다. 달콤한 위안이 아니다. 러셀은 아픈 곳을 콕콕 찌르며 행복을 원하기부터 하라고, 그리고 행복을 원하면 당장 뭐라도 시작하라고 권한다.
<행복의 정복>은 불행의 원인에 대한 이야기부터 시작한다. 그리고 각각 다르면서 유사하기도 한 불행에서 벗어나기 위한 해법들을 제시한다.
러셀은 자기 자신에게 몰입한 사람은 행복할 수 없다고 말한다. 이런 사람은 외부로 관심을 돌려야 한다. 외부에 대한 관심이 우리를 활동하게 하고 권태에서 벗어나게 해줄 수 있기 때문이다. 또 러셀은 이 세상에 보람 있는 게 없다고 생각하며 자신의 불행을 자랑거리로 여기는 사람들을 주목한다. 이런 염세적인 사람들은 사실상 자신이 불행하기 때문에 세상의 불쾌한 특징에 집착한다. 자기도취나 과대망상에 빠지기도 하며 무엇에든 취해 고통을 망각하려고 한다. 이들에겐 행복이 소망스럽다는 확신부터 필요하다.
러셀이 보기에 불행과 행복이 개인만의 문제는 아니다. ‘경쟁의 철학’으로 오염된 세상이 일과 여가 모두를 망치고 있다. 생존을 위한 경쟁은 기실 성공을 위한 경쟁이다. 성공은 행복의 한 가지 요소에 불과하다. 나머지 요소들을 모두 희생한다면 행복에서 멀어진다. 삶을 승부로만 보게 되면 감성과 지성을 포기하고 의지만을 키우게 된다. 의지와 경쟁으로 가득 찬 현대판 공룡들은 행복한 삶을 누리지 못하기 때문에 멸종될 운명에 처해 있다.
<행복의 정복>을 발표한 것은 1930년이다. 1930년의 영국과 지금 여기가 크게 다르지 않다는 점만으로도 이런 지적이 내겐 놀랍다. 러셀은 일과 여가 모두에서 끊임없이 탈진하는 이 병을 고치기 위해선 건강하고 조용한 즐거움을 인생의 이상형의 하나로 받아들여야 한다고 조언한다. 권태를 견딜 수 있는 힘은 행복한 삶에 필수적이고, 사람은 어린 시절부터 단조로운 삶을 견디는 능력을 키워야 한다.
문예출판사
심리적인 문제들도 중요하다. 정신적 피로는 행복을 방해한다. 해법은 있다. 자기중심적 사고에서 벗어나면 자신이 세상에서 그리 큰 부분을 차지하지 못한다는 것을 알게 된다. 자아를 넘어선 것에 자신의 생각과 희망을 집중할 수 있는 사람은 일상의 걱정에서도 평화를 얻을 수 있다. 걱정은 최악의 경우를 생각하고 일어날 수 있는 불행을 직시하면 줄일 수 있다. 두려움은 피하려고 하면 더 심해진다. 이성적으로 침착하게 생각함으로써 물리칠 수 있다. 피로는 자극에 집착하지 않음으로써 해결할 수 있다.
질투 역시 불행의 원인이다. 질투하는 사람은 자신이 가진 것에서 즐거움을 얻지 않고 다른 사람이 가진 것을 보며 괴로워한다. 성자들처럼 욕망을 버릴 수 없는 평범한 사람이 질투를 치료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행복이다. 또 어린 시절에 주입된 불합리한 도덕에 따른 죄의식도 행복을 해친다. 해법은 이성에 근거한 합리적 판단과 그에 대한 믿음이다.
불행의 원인을 뒤집어 놓아라
행복을 해치는 것에는 피해망상도 있다. 피해망상에서 벗어나기 위해선 자신의 진짜 동기를 점검하고, 자신을 과대평가하지 않아야 한다. 또 남이 나만큼 자신에게 관심이 있다는 상상을 하지 말고, 사람들이 자신을 해치고 싶을 만큼 자신에게 골몰해 있다고 상상하지 않아야 한다.
이처럼 불행의 원인은 너무 많다. 오십 년을 살아오면서 내가 이걸 다 피해왔을 리가 없다. 당장 자신에게 몰입하는 사람은 행복할 수 없다는데 20~30대를 지나고부터는 활동반경이 점점 좁아졌고, 새로운 것에 대한 관심이 줄어들었다. 바쁘게 살다 보니 외부와의 소통을 자꾸 놓치고 더 내면으로 향하게 됐다. 경쟁을 부추기는 세상에 맞설 건강하고 조용한 즐거움을 갖고 있느냐 하면, 그것도 자신 없다. 행복을 목표로 살기에는 해내야 할 일들이 많았고, 마음의 평화는 쉽게 흔들렸다.
러셀에게 행복의 해법은 분명하다. 자신에게 빠져들지 말고 열정과 관심을 바깥세계로 돌리는 것, 그래서 권태에 빠지지 않고 활기 있는 삶을 사는 거다. 이걸 젊었을 때 알았으면 좋았을까. 그런데 젊었을 때라면 <행복의 정복>을 차분히 읽지 않았을 것이다. 삶에 대한 열정과 폭넓은 관심을 잃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지는 깊게 생각해보지 않았다.
아마도 그건 러셀도 마찬가지 아니었을까. 러셀은 사춘기 때 늘 자살할 생각을 품고 있었다고 고백한다. 러셀이 <행복의 정복>을 발표한 건 58세였다. 그렇다면 불행과 행복의 원인은 러셀이 58년을 살면서 마침내 깨달은 결론이 아닐까. 그래서 오십을 넘은 현재의 내가 공감하게 되는 것 아닐까. 그런 의미에서 <행복의 정복>은 꺾어진 100년을 살아버린 지금, 당장 행복하려면 어떻게 할까에 도움을 받기 위해 읽는 게 좋겠다.
러셀에게 행복의 원인은 불행의 원인을 뒤집어 놓은 것이다. 행복을 구하는 것에 앞서 불행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것이, 나처럼 불행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사로잡힌 이에게 더 설득력이 있다. 어떤 책이든 그 모든 내용을 받아들일 필요는 없다. 내게 가장 와 닿은 것은 자신에게 과도하게 몰입한 사람은 불행하다는 러셀의 충고다. 자기 사랑이든 연민이든 미움이든 이제는 벗어나야 하는 건 아닐까. 이것 하나만이라도 당장 시작해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