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신여대 골목-봄꽃같이 푸르고 아름다운 젊음의 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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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신여대 골목-봄꽃같이 푸르고 아름다운 젊음의 거리

입력 2020.03.27 15:36

  • 김천 자유기고가

골목 전체에 꽃이 활짝 피었고, 오가는 이들도 봄꽃 같다. 성신여대 인근 돈암동 골목길에 들어서면 젊고 환한 기운이 가득하다. 과거 미아리고개가 주던 무겁고 어두운 느낌은 어디에도 없다. 유난히 무거운 봄날, 이곳의 젊은이들은 그래도 봄 같은 모습을 제대로 보여주고 있다.

[골목 내시경]성신여대 골목-봄꽃같이 푸르고 아름다운 젊음의 거리

서울에 젊은이들이 모이는 몇몇 곳이 있다. 강남역, 신촌과 홍대 인근, 종로, 화양리 일대, 대학로와 성신여대 근처다. 대개는 큰길이 주를 이루나 골목골목 아기자기한 모습을 즐기려면 성신여대 부근 돈암동과 동선동 일대를 찾으면 된다. 인근에 고려대에서 성신여대, 그리고 한성대와 성균관대로 이어지는 대학벨트가 있다. 때문에 청소년과 대학생들이 주로 모이는 장소가 됐다. 대학교를 끼고 있어 유행에 민감하고 활발히 변화하는 곳이다. 지하철 4호선 성신여대입구역 바로 옆 하나로길은 인근에서도 가장 복잡하고 번화하다.

지금은 사라진 미아리 점집 골목

골목 입구부터 유행하는 옷을 걸어놓고 파는 노점상들이 줄을 이었다. 젊은이들이 좋아할 만한 브랜드의 스포츠 의류판매장도 보이고 장신구 가게들도 흔하다. 골목의 전체적인 분위기는 가볍고 감성적인 느낌이 강한 곳이다. 긴 골목 사이사이 동서로 난 골목엔 색다른 주점도 보인다. 골목이 끝나면 성신여대로 이어지는 큰길이 나온다.

지금은 지우개로 지운 듯 흔적이 남지 않았지만 일대는 개량한옥 주택들이 들어서 있었다. 동소문 밖 돈암동과 동선동에 중산층의 집들을 매매하기 위한 한옥촌이 있었지만 1990년대 이후 한옥은 대부분 헐려 나갔다. 그 자리는 중대형 빌라가 차지했다. 하지만 군데군데 한옥이 남아 있고, 요즘 분위기에 맞춰 잘 꾸민 한옥 카페로 바뀌었다.

북악 능선은 돈암동 일대를 성곽처럼 에워쌌는데 능선 안쪽은 시내가 확장되면서 주거지가 됐고, 이 일대가 서울의 심리적 경계로 여겨지던 때가 있었다. 1930년대부터 해방 무렵까지 미아리고개 너머는 공동묘지가 있었다. 고갯길은 북망산으로 이어진 길이 됐다. 한국전쟁 때는 미아리고개가 최전방 방어선이 되기도 했다. 유행가 <단장의 미아리고개>는 북으로 끌려간 납북인사들과 이별하던 불귀의 경계선으로 이 동네 일대를 지적하고 있다. 그만큼 멀고도 가까운 곳이 이 일대의 고갯길이었지만 지금은 옛 기억과 유행가 가사가 무색해졌다.

미아리고개 옆 동선동 골목은 점성가들이 밀집한 점집 골목이던 때가 있었다. 한국전쟁 이후 남대문 인근 남산자락에 모여 있던 시각장애인들의 점쟁이마을이 도시미관을 이유로 철거된 후 동선동 일대로 옮겨왔다는 것이 미아리 점집 골목의 기원이다. 길에서 보면 줄줄이 철학관 간판이 보인다. ‘대한민국은 철학을 사랑하는구나’ 싶지만 그 철학이 저 철학은 아니다. 한때 200여 곳의 철학관·운명감정소 등이 밀집했다는데 지금은 겨우 10여 개 업소가 문을 열고 있다. 간판이 있는 곳도 다가가 보면 굳게 문이 닫혀 있거나 쇠사슬로 문을 걸어 채워둔 곳이 많다. 사람 사는 기척이 보이는 가게는 손에 꼽을 만큼 드물게 보인다. 이 동네 점집들은 대부분 살림집과 업장이 함께 있다. 신세대 점쟁이들처럼 사무실에 출·퇴근하는 것이 아니라 대부분은 자신의 집에서 살면서 손님을 맞는다.

대부분 유행에 민감한 업종들이 골목을 채우고 있다.

대부분 유행에 민감한 업종들이 골목을 채우고 있다.

뒷골목 점집들은 이미 오래전 문을 닫았다고 한다. 어떤 집은 닫힌 문 앞에 수북이 쓰레기가 쌓여 있다. 폐관 휴업한 지 오랜 모습이다. 인근 부동산에 물어보자 “요즘 세상에 누가 점을 보러 다니나. 가게를 내놓아도 잘 안 들어오려고 한다”고 했다. 그의 말에 따르면 한창 경기가 좋을 때 점집도 장사가 잘되고 경기가 나쁘면 얼씬거리는 그림자도 보기 힘들단다. 경기 타는 업종 중에 으뜸인 것이 운명감정업이라니 남의 운명을 점치는 일도 자신의 운명을 내다보는 일도 쉽지 않은 일이다.

동선동 점쟁이촌의 쇠락과 달리 길 건너 성신여대 인근 골목길엔 한옥을 개량한 사주카페들이 몇몇 눈에 띈다. 신내림으로 공수를 받아 신의 목소리를 대신 전하거나, 산통을 흔들어 점괘를 짚어내서 운명의 진로를 이야기해주거나, 엽전과 쌀알을 던져 펼쳐진 형세를 해석해주는 전통적인 점집의 모습보다 타로 카드를 뽑는 일이 젊은이들에게 더 자연스러워졌다. 운명의 길도 새로운 유행을 좇아 개척해가야 하는 시대다.

미아리고개 옆 동선동 일대 골목은 점집이 밀집된 곳이다.

미아리고개 옆 동선동 일대 골목은 점집이 밀집된 곳이다.

도시괴담 무대였던 아리랑고개

성신여대 앞 골목길은 대학과 담을 맞대고 있어서 학생들의 고함이 고스란히 들린다. 가게 주인은 “요즘이 가장 바쁘고 복잡할 때인데 조용하다. 수업도 온라인으로 한다고 하니까 동네가 그렇다. 학생들이 오가야 장사도 되고 할 텐데 보다시피 아무도 없다”고 전했다. 드나드는 이삿짐 차량도 보기 힘들고 대문에 붙은 원룸임대 전단도 주인을 찾아 흔들리고 있다. 그래도 간간이 웃음소리와 친구를 부르는 목소리가 대학교 담 밖으로 흘러나온다. 3~4층 높이의 말끔한 공동주택은 학생을 상대로 한 임대주택들이 많았다. 예전 대학가의 하숙촌 모습과는 완벽하게 다른 세련되고 깔끔한 공용주택의 모습이다. 형편이 좋은 학생들은 그렇게 잘 갖춘 곳에서 자취를 할 것이고, 그렇지 못한 친구들은 근처와 멀리 떨어진 고시원이나 원룸에서 지낸다고 한다. 보기에는 평범한 주택가지만 일층 상가에 자리 잡은 가게를 보면 복사와 제본집들이 눈에 띄어 이곳이 대학가임을 실감할 수 있다. 커피를 볶는다는 아담한 카페, 갓 구운 빵과 과자를 내놓은 작은 빵집도 성신여대 골목길의 다양성을 수놓고 있다. 베트남 음식점이며 카레집, 수제 피자집도 눈에 띈다. 아기자기한 가게들을 구경하기엔 으뜸가는 골목길이다.

1년 365일 붐비지 않는 날이 없는 성신여대 근처 하나로길.

1년 365일 붐비지 않는 날이 없는 성신여대 근처 하나로길.

동선동 일대 골목길은 비교적 반듯하게 구획정리가 되어 있다. 고개 너머 달동네가 있던 곳의 구불구불한 골목 대신 바둑판처럼 곧게 뻗은 길들이 대학을 중심으로 이어져 있다. 남북을 관통하는 길은 넓고 동서를 잇는 골목길은 조금 좁아 한눈에도 방향을 알아볼 만하다. 대학생 혹은 젊은이들이 주로 사는 곳이라 아이들의 웃음소리나 뛰어다니는 모습은 보기 어렵다. 공동주택 사이로 오래전 터를 잡은 듯한 저택의 모습도 두어 채 눈에 띈다. 잘 정리된 정원수가 담을 따라 사열해 있고, 겉에서 보기에도 칠 하나 벗겨진 곳 없이 깔끔한 모습이라 그곳에 누가 사는지 궁금할 정도다. 하지만 새로 짓지 않은 대부분의 오래된 집들은 세월의 먼지를 두껍게 쓴 채 주저앉아 낡아가고 있었다. 이 골목이야말로 지난 50년의 시차를 한눈에 살필 수 있는 곳이다.

북악 능선이 만든 고개는 미아리고개와 함께 아리랑고개가 유명하다. 나운규의 영화 <아리랑>을 내세워 고개 정상에 아리랑시네센터가 있고, 미아리고개 능선에는 아리랑아트홀이 있다. 아무튼 영화와 관련이 있다고 강변하며 여러 가지 문화사업을 벌이려고 판을 깔았지만 별 관심을 받지 못하는 것 같다. 영화 <아리랑>을 기억하는 세대는 별로 없고 나운규의 이름 석 자를 알아보는 이들을 찾는 일도 쉽지 않기 때문이다. 아리랑고개 인근 능선을 따라 아파트 단지들이 들어서 있어서 옛 모습을 유추하기도 어려운 일이 됐다. 그저 서울 주변부 동네 어디서나 볼 수 있는 아파트단지와 그 곁의 다세대주택이 들어선 골목길이 이 일대의 흔한 모습이다.

옛 한옥은 한옥카페로 새 생명을 찾았다.

옛 한옥은 한옥카페로 새 생명을 찾았다.

돈암동 랜드마크였던 고갯길 태극당

지금보다 이 부근 모습이 한적하던 시절 아리랑고개 골목길은 도시괴담의 무대가 됐다. 부슬부슬 비 오는 날 택시를 잡아탄 처녀가 아리랑고개 어디쯤 내려달라 하고 택시요금은 집에 와서 받아가라 했는데, 안에 들어가 보니 제사상 영정 속에 그 처녀의 사진이 있더라는 등 서울에 흔치 않은 도시괴담이 이곳을 배경으로 삼고 있었다. 지금 시절에 그런 이야기를 한다면 오싹하기는커녕 웃음과 함께 등짝을 맞을 일이다. 그만큼 그 시절 아리랑고개는 그 너머 공동묘지와 언덕 이편 산 자들의 공간을 가로지른 경계의 상징이었다.

미아리고개를 일컬어 경계를 잇는 사람의 길이란 뜻에서 ‘미인도’라는 정체불명의 이름을 붙인 곳이 있다. 언덕 아래 고가로 하부공간을 복합문화공간으로 만들어 ‘미인도’라는 명칭을 붙인 것이다. 미술전시도 하고 동네사람들의 이야기도 담고 영상 제작 교육도 하는 문화복합공간이라는데, 인근의 아리랑시네센터나 아리랑아트홀의 전철을 밟는 것은 아닐까 의문도 든다. 하지만 젊은 작가들이 활동할 수 있는 공간이 늘어나는 것은 좋은 일이다. 이 일대를 문화예술과 연관 지어 무엇인가를 해보려는 노력은 힘겨운 작업 같아 보인다.

하나로길이 요즘처럼 유명해지기 전, 사람들은 고갯길에 있는 빵집 태극당을 약속장소로 잡곤 했다. 요즘 말로 돈암동의 랜드마크였던 셈이다. 빵집은 그 자리에 그대로 있지만 예전만큼의 유명세는 누리지 못하고 있다. 대신 그 아래쪽 지하철역 근처 사거리 주변의 극장이나 하나로길 안의 커피집이 그 역할을 대신한다. 빵집 뒤에서 성신여대로 이어지는 골목의 바닥은 예사롭지 않다. 화폭을 여러 색으로 구분해서 칠한 구성화처럼 화려한 색채가 긴 골목을 채우고 있다. 검은색 단색 일색을 벗어나 붉고 푸르고 노란색이 걷는 이들의 발길을 이끈다. 그 골목을 처음 걷는 이에게는 신기하고 색다른 정취를 전해주는 길이다.

시대의 흐름은 언제나 당대의 젊은이들이 이끈다. 젊은이들은 과거를 돌아보지 않고 옛것에 집착하지 않기 때문이다. 미아리고개 일대 옛 기억의 무거운 흔적은 언제부턴가 젊은이들의 발길에 덮여버렸다. 골목은 활기차고 밝아졌다. 들어선 가게들도, 오가는 사람들도 모두 내일을 향해 눈과 귀를 향한다. 옛일을 후회하거나 과거를 곱씹으며 미련의 주변을 맴도는 망령은 오래전 성신여대 인근 골목길을 떠났다. 매 순간 젊은이들은 두려워한다. 앞날의 성패를 장담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도 과거에 매달리지 않고 용기를 내 걷기에 우리는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 매서운 봄날이지만 성신여대 인근 골목의 젊은이들은 꽃 같고 푸르고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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