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 퀴리 부인이라 불렀다. ‘라듐’을 발견한 여성 과학자 이야기다. 이름은 익숙하지만 자세한 사연이나 뒷이야기는 왠지 낯설다. 그녀를 가져와 창작 뮤지컬로 만들었다. 뮤지컬 <마리 퀴리>다.
제목이 퀴리 부인이었다면 쉽게 알려졌을지 모른다. 하지만 이 작품은 <마리 퀴리>다. 누군가의 배우자가 아닌, 그러니까 결혼하면 자신의 이름이 사라지는 존재가 아닌 당당히 한 시대를 상징하는 여성 과학자 마리 스크워도프스카를 주인공으로 삼았다. 프랑스의 물리학자이자 화학자로 알려진 그의 조국은 사실 폴란드다. 1867년생이었던 그가 살던 시대의 폴란드에선 여성에게 제대로 된 교육이나 사회 참여의 기회가 제한됐다. 뛰어난 재능과 명석한 두뇌의 소유자였지만 집안 형편이 넉넉지 않았던 그는 자신은 물론 언니의 학비까지 마련해야 했다. 우여곡절 끝에 프랑스 파리의 소르본 대학으로 와서 여성 최초로 이 대학의 물리학 박사가 됐다. 당시 소르본에는 6000여 명의 남학생이 있었지만, 여학생은 단 200여 명에 불과했으니 그가 겪었을 고난은 어렵지 않게 상상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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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를 이해하고 함께 연구를 진행한 것은 동료이자 남편이었던 피에르 퀴리다. 평생을 함께했지만 정작 첫 노벨상인 물리학상 수상 당시 연단에서 감사 연설을 할 수 있던 것은 남편뿐이었다. 1906년 불의의 사고로 피에르가 세상을 떠난 후에도 마리 퀴리는 라듐과 방사선에 관한 연구를 계속했고, 결국 1911년 노벨 화학상을 수상한다.
뮤지컬 <마리 퀴리>는 바로 그 여성 과학자의 일생을 소재로 했다. 극적인 긴장감과 이야기의 재미를 위해 가상의 인물을 등장시키는, 그래서 실제 역사(fact)와 가상의 이야기(fiction)를 버무리는 팩션(faction)의 재미도 더했다. 우연히 그를 만나 평생 우정을 나누게 되는 또 다른 폴란드 이민자 여성인 안느 코발스키다. 프랑스로 이민을 오는 기차 속에서 가방 속 깊숙이 넣어두었던 조국 폴란드의 흙을 나누는 장면이나 한참 세월이 지나 라듐의 부작용을 알게 되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에서 등장하는 두 여성의 우정 등은 꽤 묵직한 감동을 전한다.
극의 완성도를 위해 과학적 지식을 활용한 제작진의 아이디어가 신선하다. 극 중 칠판에 적는 주인공 마리 퀴리의 과학 공식이 대표적이다. 실제로 공학도이자 카이스트 출신인 김태형 연출이 진짜 공식을 외워 흑판에 적게끔 요구했다는 후문이다. 방송에서 따로 만난 주인공 리사가 “고등학생 시절 과학 시간보다 대사를 외며 더 진지하게 공식을 암기했다”는 너스레를 들려줬다.
과학은 실험과 결과, 과학적 사고에 기인한 인과관계의 증명을 중요시하지만, 무대를 통해 과학자의 인간적인 면을 이해하는 것은 우리가 왜 그리고 무엇을 위해 과학을 바라봐야 하는가에 대한 명제를 곱씹게 만든다. 여성 서사로 재구성된 마리 퀴리의 이야기가 우리에게 울림을 남기는 이유다. 코로나19의 위기를 뚫고 3월 말까지 공연을 이어갈 예정이다. 위대한 인간 정신의 승리를 간접으로나마 체험해보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