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불확실성의 시대, 편견에 휘둘리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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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불확실성의 시대, 편견에 휘둘리지 말자

입력 2020.02.28 14:07

  • 성지연(국문학 박사·전 연세대 강사)

오십 정도 되면 세상 풍파에 더 이상 휘둘리지 않고 자기중심을 딱 잡고 살 줄 알았다. 물론 그런 이도 많겠지만 나는 아닌 듯하다. 젊은 날 가볍게 생각했던 삶의 불확실성이 오히려 더 크게 다가온다.

코로나19 확산으로 2월 24일 오후 예정된 이화여대 졸업식이 전면 취소됐다. 예년 같으면 후배들의 축하 속에 북적이던 학생회관 앞쪽에 축하 문구만 걸려 있다./김기남 기자

코로나19 확산으로 2월 24일 오후 예정된 이화여대 졸업식이 전면 취소됐다. 예년 같으면 후배들의 축하 속에 북적이던 학생회관 앞쪽에 축하 문구만 걸려 있다./김기남 기자

지난해 11월 중국에서 페스트가 발생했다는 뉴스를 보았다. 놀랐지만 곧 잊었다. 12월엔 중국의 우한에서 원인불명의 폐렴이 발생했다는 뉴스를 보았다. 그리고 일상은 흘러갔다. 중국의 상황이 갑자기 심각해졌고, 국내에 확진자가 생겼다. 새로운 병은 처음엔 ‘우한 폐렴’, 이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으로 불리다가 얼마 전부터 ‘코로나19’로 불렸다.

졸업식과 입학식이 취소됐다. 이런 일이 있을 줄 모르고 몇 달 전에 만들었던 약속은 거의 다 취소됐다. 어쩔 수 없는 볼일을 보러 지하철을 타면 너나없이 마스크를 쓴 모습이 으스스했다. 확진자 수, 치명률, 확진자 이동 동선, 검사자 수, 자가격리 같은 데 귀를 기울였다. 중국만이 아니라 다른 나라에서 들려오는 뉴스를 주의 깊게 봤다. 상황은 점점 더 심각해져 가는데 할 수 있는 일이라곤 손을 씻고 마스크를 쓰는 것밖에 없다.

그저 일상을 꾸려가기도 쉽지 않은데, 살다 보면 사회가 휘청할 정도의 위험 혹은 위기를 마주할 때가 온다. 신종플루·사스·메르스 같은 전염병도 그렇고, IMF 구제금융이나 2008년 금융위기 같은 경제적 위기 상황도 그렇다. 처음에는 혼란스러운 소식과 두려움이 퍼진다. 차츰 상황을 해석하는 전문가들이 나타나고 국가적 대응이 시작된다. 개인 역시 어떻게든 주어진 정보를 해석해서 판단하고 행동하게 된다.

잘 알지 못하는 것을 판단하고 예측

해석과 판단에서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은 ‘불확실성’이다. 인과관계가 확실한 일이라면 애초에 해석과 판단이 문제가 되지도 않는다. 네이트 실버의 <신호와 소음>(2012)에 따르면 ‘불확실성’은 측정할 수 없는 위험이다. 그는 2008년 미국발 금융위기에서 신용평가사들이 불확실성을 위험처럼 보이게 왜곡했다고 지적한다.

이뿐만이 아니다. 실버는 2008년 금융위기에 네 가지 예측실패가 있었다고 분석한다. 첫째, 주택 소유자의 주택가격에 대한 확신이다. 하지만 미국에서 이런 주택가격 급등과 폭락이 이전엔 한 번도 없었다. 둘째, 은행들의 신용평가사 평가능력에 대한 확신이다. 하지만 신용평가사들은 부채담보부증권 같은 기묘한 증권을 평가해본 적이 없었다. 셋째, 경제학자들이 금융권이 버틸 것이라고 본 확신이다. 하지만 과거 금융권에선 그렇게 높은 레버리지를 동원하거나 주택에 제3자가 돈을 건 적이 없었다. 넷째, 경제가 이전 경기후퇴처럼 빠르게 회복할 것이라는 정책입안자의 확신이다. 하지만 금융위기는 이전의 경기후퇴와는 전혀 다른 종류였다.

이걸 한마디로 하면, 잘 알지 못하는 것을 아는 것으로 착각하고 판단하고 예측했다는 뜻이다. 미국 대선 결과 예측, 지진 예측, 전염병 예측 등 실버가 제시하는 부정확한 예측의 예는 많다. 그러나 실버의 견해는 그러므로 예측을 하지 말자, 또는 예측은 불가능하다가 아니다. 인간은 무작위의 소음 속에서 반복적 양상을 발견해 기회나 위협에 대응해왔다. 실버는 여전히 예측은 중요하고 우리가 어떤 태도를 취하는지에 따라 예측의 질이 달라질 수 있다고 주장한다.

삶의 불확실성에 대처하기 위한 전략으로 실버가 내세우는 것은 ‘베이즈 주의’다. 토마스 베이즈 목사는 어떤 사건이 일어났다는 전제 아래 가설의 참과 거짓을 따져 나가는 베이즈 정리를 내놓았다. 실버는 이런 통계적 추론을 진리에 다가가는 방법으로 제시한다. 즉 세상에 대한 주관적 인식이 진리에 대한 어림짐작에 지나지 않음을 인정하고, 확률적 추정을 하되 새로운 정보를 확보할 때마다 수정해서 조금 더 나아지게 하자는 것이다.

불확실성 앞에서 판단과 예측은 쉽게 얻어지지 않는다. 이때 중요한 것은 불확실성을 불확실성으로 인지하고 덜 불확실한 것으로 만드는 것이다. 내가 안다고 생각하는 것은 지속적으로 재검토되어야 하며, 활시위는 움직이는 과녁을 따라 새로이 메겨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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겸손한 여우형 전문가의 덕목

<신호와 소음>은 예측에서 어떤 자세를 가져야 하는지를 정치학자이자 심리학자인 필립 테틀록이 분류한 ‘고슴도치형’과 ‘여우형’ 전문가를 빌어 설명한다. 고슴도치형은 세상에 대한 지배적 원칙이 있다고 믿으며 커다란 한두 문제에 집중하는 유형이다. 대범하고 고집스러우며, 질서정연하고 자신만만하며 이론적으로 생각한다. 여우형은 수많은 사소한 생각을 믿으며, 관심이 다양하고 뉘앙스·불확실성·복잡성·대치되는 의견에 관대한 유형이다. 다양한 접근법을 추구하고 복잡성에 관대하며, 자기 비판적이고 조심스러우며 경험적으로 생각한다.

고슴도치형 전문가는 답도 시원하고 인기도 많다. 하지만 실버는 예측에 있어서 뛰어난 사람은 자료가 얼마나 소음에 물들어 있는가를 간파하는 여우형 전문가라고 말한다. 세상에 소음은 많고 유용한 정보는 적기 때문이다. 더구나 인터넷 시대가 시작된 이후 정보량은 기하급수적으로 늘고 있고, 유용한 정보는 상대적으로 더 적어지고 있다. 이제 빅데이터 시대에 점점 더 중요해지는 것은 이렇게 넘치는 정보 속에서 신호를 찾아내는 것이다.

여우형 전문가의 덕목을 생각해본다. 세상을 해석하고 판단하고 예측하는 데 여우형의 장점은 겸손함에 있다. 어쩌면 여우형이 겸손한 것은 세상을 설명해낼 만한 이론을 갖고 있지 않아서일 것이다. 고슴도치형 전문가들이 세상을 명쾌하게 설명해낼 수 있는 것을 부러워하며 삶에 닥치는 불확실성에 대응하기에 급급했던 것 아닐까. 나이를 먹어가며 점점 더 사는 게 참 알 수 없다고 생각했던 것인지도 모른다.

오십 정도 되면 세상 풍파에 더 이상 휘둘리지 않고 자기중심을 딱 잡고 살 줄 알았다. 물론 그런 이도 많겠지만 나는 아닌 듯하다. 젊은 날 가볍게 생각했던 삶의 불확실성이 오히려 더 크게 다가온다. 삶은 생각했던 것보다 더 복잡하고 알 수 없는 것이었고, 모든 문제를 해결할 하나의 해법은 보이지 않았다.

이제는 무슨 일에건 젊었을 때보다 더 조심스러워지고 빠른 결정을 내리기가 힘들다. 딱히 전문가가 아니더라도 고슴도치형과 여우형을 양극단으로 놓고 생각하면 고슴도치 쪽은 이제 글렀다. 다행히 <신호와 소음>이 자신 없어 보이는 여우의 손을 들어주고 있으니, 불확실성을 얼러가며 복잡하고 조심스러운 춤을 추는 여우의 덕목을 배워보는 게 낫겠다.

그러니 지금 내게 필요한 것은 삶의 불확실성을 제어해보겠다는 야심보다는 삶의 불확실성에 잘 대처할 수 있는 지혜다. 편견에 휘둘리지 않고 조심스럽게 소음과 신호를 가려낼 수 있는 지혜. 그래서 조금이라도 더 나은 판단을 내릴 수 있는 지혜. 무엇보다 내가 모르는 게 뭔지 알아낼 수 있는 지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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