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시절과 앞으로도 내 삶의 방향타
유년기의 시간은 더디 흐르기만 했다. 아침에 일어나 밥 먹고 한참을 놀아도 여전히 아침이고, 간식을 먹고 또 놀아도 여전히 아침이고…. 하루만 긴 게 아니었다. 한 달도, 계절도, 학기도, 학년도 영영 지나지 않는 시간 같기만 했다. 학창시절도 마찬가지였다. 국어 수업 시간에 민태원의 <청춘예찬>을 배우며 “청춘! 이는 듣기만 하여도 가슴이 설레는 말이다”라는 문구를 따라 읽어도 아무런 감흥이 없었다. 젊다는 게 뭔지도 모르고 어영부영 청춘의 초입을 보냈다. 그러다가 미대 입시에 실패했다. 원서 넣은 곳 어느 하나 합격한 데가 없어서 꼼짝없이 아무 데도 갈 수 없었다. 소속된 곳이 없는 몸이 되어버리고 말았다.
그즈음에 우연히 들은 노래가 이상은의 <언젠가는>이다. ‘젊은 날엔 젊음을 모르고, 사랑할 땐 사랑이 보이지 않았네.’ 지금 들으면 전혀 다른 의미인데, 그땐 노래의 첫 소절을 내 멋대로 해석했다.
‘아, 젊어서 공부든 뭐든 바짝 열심히 해야 후회하지 않는다는 말이구나….’ 이렇게 해석하고 나니 그다음부터는 안달이 났다. 이미 친구들보다 1년 늦게 대학에 가게 생겼는데, 1년 더 준비한다고 해서 시험관이 내 그림을 제대로 평가해줄까? 실기시험을 잘 쳤다고 생각했는데 낙방을 한 나는 오만하게도 그림 단 한 장으로 평가되는 미대 입시는 공정하지 않다고 판단해버렸다. 순전히 객관적인 점수만으로 나의 ‘합격의 원천능력’을 증명해 보이겠다고 마음먹었다. 자존심에 상처를 입은 것이다.
그렇게 다소 엉뚱하게 진로를 바꿔 결국 법대에 들어갔다. 고시패스로 ‘합격의 원천능력’을 증명하고 말겠다는 열정도 잠시였고, 그즈음의 <언젠가는>은 또 달리 들렸다. ’아, 젊어서 바짝 놀아야 한다는 뜻이었네.’ 그때부터는 정말 앞만 보며 신나게 놀았다. 몇 년 후 사법시험 1차에 떨어졌다. 몇몇 친한 친구들은 합격했다. 미대 입시 실패와 재수 생활의 기억이 떠올랐다. ‘또 이렇게 1년의 젊음을 까먹나’ 싶어 뒤늦게 바짝 공부했다. 다행히 오래지 않아 모든 관문을 다 통과했다.
초반에 잠깐 놀았어도 나의 20대는 고시 공부, 사법연수원 공부와 함께 영영 떠나갔다. 서른이 넘어 듣는 <언젠가는>은 이제 허무함과 약간의 절박함마저 느끼게 했다. 이러다 젊음이 아예 떠나버릴 것만 같았다. 과감히 휴직 후 20대에 놀지 못한 한을 풀러 1년간 외국 여행을 했다.
젊음과 사랑을 단 한순간도 놓치지 않아야 하는데…. 그렇게 놀고 복직하니 내 삶은 결코 그 전과 같을 수 없었다. 게다가 연이은 유산으로 몸과 마음이 지쳐버려 결국 휴업을 선택했다. 휴업 직후 다시 임신을 준비하며 시골에 손수 집을 짓기 시작했다. 결코 게으른 생활이 아니었는데도 마음은 늘 불안했다. 법조인 동기 중에 나처럼 휴업하고 시골에 집 짓고 세월아, 네월아 하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아, 백수도 멘털이 강해야 할 수 있구나’라는 사실을 깨달으며 매일 조바심과 싸웠다.
이젠 더는 그런 조바심은 없다. 마흔을 코앞에 둔 지금에야 비로소 <언젠가는>을 온전히 즐기는 것 같다. 나와 남편은 젊고, 부모님은 건강하시고, 어린 아들은 엄마인 나를 세상의 중심으로 알고 있다. 칼럼도 쓰며 시골 생활과 사회의 끈을 잇고 있다. 그야말로 인생에서 가장 아름답고 행복한 순간, 화양연화의 시간이다. <언젠가는>은 앞으로도 젊은 날에 젊음을 알고 사랑할 때 사랑을 볼 수 있도록 내 인생의 방향타가 되어줄 것 같다.
젊은 날엔 젊음을 모르고
사랑할 땐 사랑이 보이지 않았네
하지만 이제 뒤돌아보니
우린 젊고 서로 사랑을 했구나
눈물 같은 시간의 강 위로
떠내려가는 건 한 다발의 추억
그렇게 이제 뒤돌아보니
젊음도 사랑도 아주 소중했구나
언젠가는 우리 다시 만나리
어디로 가는지 아무도 모르지만
언젠가는 우리 다시 만나리
헤어진 모습 이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