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 성공의 조건은 ‘운삼기칠’쯤 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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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성공의 조건은 ‘운삼기칠’쯤 되지 않을까

입력 2019.11.29 15:31

  • 성지연(국문학 박사·전 연세대 강사)

“우리가 성공에 대해 알고 있는 것은 전부 틀렸다.”

베스트셀러 작가 말콤 글래드웰은 자신의 책 <아웃라이어>(2008)의 메시지를 이렇게 요약한다. 글래드웰은 무엇이 성공인지는 묻지 않는다. 우리가 막연히 갖고 있는 성공에 대한 생각, 그러니까 성공에 대한 신화를 해체하려고 한다. 아웃라이어는 평균치에서 크게 벗어난 이른바 성공의 표본이다. 돈을 많이 벌거나 이름을 크게 떨치거나 자기 분야에 남다른 업적을 남겨 세속적인 성공을 이룬 사람들이 아웃라이어다.

성공의 조건 중에서 언제, 어디서 태어났는지는 중요하다. 마이크로소프트의 빌 게이츠와 애플의 스티브 잡스, 구글 CEO 에릭 슈미트(왼쪽부터)는 모두 1954~1955년에 태어난 동년배들이다./경향 자료

성공의 조건 중에서 언제, 어디서 태어났는지는 중요하다. 마이크로소프트의 빌 게이츠와 애플의 스티브 잡스, 구글 CEO 에릭 슈미트(왼쪽부터)는 모두 1954~1955년에 태어난 동년배들이다./경향 자료

<아웃라이어>에서 가장 잘 알려진 주장은 ‘1만 시간의 법칙’이다. 글래드웰은 탁월한 성취를 보인 사람들의 재능을 부정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탁월성을 얻는 데 최소한의 연습량을 확보하는 게 결정적이라고 그는 말한다. 구체적으로 ‘매직 넘버’로서의 1만 시간 정도를 투여해야만 성공에 이를 수 있다는 말이다.

10년이 걸리는 ‘1만 시간의 법칙’

1만 시간은 긴 시간이다. 대략 하루 세 시간 정도로 잡으면 10년이 된다. 선마이크로시스템 창업자 빌 조이, 20세기의 음악적 사건 비틀스, 마이크로소프트 창업자 빌 게이츠 등에서 볼 수 있듯, 글래드웰이 살펴본 사례들에서 예외는 없다.

글래드웰이 주목하는 것은 이들이 1만 시간에 도달하게 되는 ‘기회’다. 빌 조이는 운 좋게 선진적인 컴퓨터 시스템을 갖춘 미시간대학 컴퓨터센터에서 1만 시간을 채웠고, 비틀스는 독일 함부르크에서 매일 밤새도록 연주할 클럽을 만난 덕에 1만 시간을 채웠다. 그리고 빌 게이츠는 일찍이 1968년에 컴퓨터 터미널을 설치하고 아낌없이 재정을 지원하던 고등학교에 다닌 덕분에 1만 시간을 채웠다.

기회가 얼마나 결정적인지를 증명하기 위해 글래드웰이 내놓은 것은 캐나다 하키선수들이 태어난 달이다. 많은 이들을 제치고 하키팀 선수 목록에 오른 이들은 월등히 1월, 다음엔 2월, 다음엔 3월에 생일이 있다. 이건 어려서 처음으로 하키팀이 구성될 때 그해 1월에 태어난 아이들이 가장 성장이 빨라서 유리했다고밖에 설명이 되지 않는다. 이 아이들은 팀에서 계속 연습해 1만 시간을 채운다. 그 기회를 얻지 못한 다른 아이들은 재능을 확인할 기회조차 얻지 못한다.

언제, 어디서 태어났는지는 정말 중요하다. <포브스>는 인류 역사상 가장 부자였던 75명의 목록을 작성했는데, 여기에 19세기 중반에 태어난 14명의 미국 부자가 이름을 올렸다. 글래드웰에 따르면 그들의 공통점은 미국경제의 번영기였던 1860~1870년대에 전성기를 맞을 수 있게 1830년대쯤에 태어났다는 사실이다. 또한 글래드웰은 세계 최초의 상업적 미니컴퓨터 키트인 ‘앨타이어 8800’이 나온 1975년을 기준으로 보면, 1954~1955년에 태어나 이때 20대 초반에 이른 사람이 이상적이었다고 지적한다. 앞서 언급한 빌 조이·빌 게이츠뿐만 아니라 애플의 스티브 잡스, 구글의 에릭 슈미트 등 많은 IT 기업의 거물들이 바로 이즈음에 태어났다.

이렇게 되면 성공신화의 핵심 내러티브인 개인의 탁월함이 부서진다. 결국 글래드웰이 <아웃라이어>를 통해 보여주려는 것은 성공이 개인적 특성만이 아니라 ‘숨겨진 이점과 특별한 기회 그리고 문화적 유산의 혜택’이라는 점이다.

말콤 글래드웰 /김영사

말콤 글래드웰 <아웃라이어>/김영사

언제, 어디서 태어났는지

문화적 유산 역시 개인의 선택은 아니다. 우리가 언제, 어디서 태어났는지에 따라오는 객관적 조건이다. 여기에 대한항공 괌 추락 사고가 나온다. 글래드웰은 비행기에서 부기장이 기장에게 상황의 심각성을 알리는 것을 방해한 ‘완곡어법’을 사고의 원인 중 하나로 들고 있다. 괌 사고에는 사소한 기술적 잔고장, 나쁜 날씨, 피곤한 조종사가 있었고, 여기에 조종석에 있는 사람들의 실수가 더해져 사고를 촉발했다는 것이다. 이 실수가 비롯된 곳이 문화적 유산이다.

문화적 유산 자체에는 옳고 그름이 없다. 물과 공기처럼 개인에게 심원한 영향을 미친다. 글래드웰이 주목한 한국의 문화유산은 이중적이다. 높은 ‘권력간격지수’와 경어 등의 복잡한 언어체계가 부정적 문화유산이라면, 수학에 유리한 숫자체계와 노력과 끈기에의 존중은 긍정적 문화유산이다.

글래드웰이 성공신화를 해체하는 것은 성공한 사람들의 노력을 깎아내리기 위해서가 아니다. 성공으로부터 실질적 교훈을 얻기 위해서다. 글래드웰은 ‘키프 아카데미’란 실험적인 미국 공립학교의 성공을 예로 든다. 제도적으로 기회가 주어졌을 때, 그리고 문화유산을 극복할 수 있는 시스템을 설계했을 때 학생들의 성취는 분명히 달라졌다.

성공신화를 해체해 보면 재능이 자라날 수 있는 토양과 햇빛과 물이 보인다. 이는 사회가 해결해야 할 문제다. 다양한 모양과 크기의 씨앗들이 있다. 좋은 토양을 만나고 햇빛과 물이 충분하면 어떤 씨는 맛있는 채소가 되고, 어떤 씨는 아름다운 꽃을 피우고, 어떤 씨는 늠름한 나무가 된다. 그동안의 성공신화는 씨앗에만 주목했지 그 씨앗이 발아하고 성장하는 환경은 무시했다.

성공을 위한 기회와 문화가 중요하다는 글래드웰의 주장에 동의한다면, 성공한 사람들은 좀 겸손해질 필요가 있다. 그리고 더 중요한 교훈은 모든 씨앗이 신화를 품고 있다는 사실이다. 물론 그 신화가 현실이 되려면 모든 씨앗에 골고루 좋은 토양과 햇빛과 물을 줄 수 있는 사회가 필요하지만 말이다.

‘운칠기삼(運七技三)’. 이 말은 흔히 사람의 일은 재능과 노력보다 운이 필요하다는 것을 강조할 때 쓰인다. 젊어서는 이 말을 믿지 않았다. 열심히 노력해야 성공한다니까 좋지 않은 결과는 내가 열심히 하지 않은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이제 오십에 이르러, 사람의 일은 재능과 노력만으로 되지 않는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글래드웰의 ‘성공학’은 한 편의 재능 및 노력과 다른 한 편의 기회 및 문화를 모두 중요시한다. 그렇다면 글래드웰의 메시지는 ‘운오기오(運五技五)’쯤 되지 않을까. ‘운칠기삼’이든 ‘운오기오’든 이런 논리는 묘한 애증병존을 안겨준다. ‘그래, 성공하지 못한 것은 내 탓이라기보다 환경 탓이야.’ 이런 생각은 나름의 위로를 안겨주지만, 동시에 다른 한편으로 세상의 모든 걸 운명 탓으로만 돌리기엔 여전히 찜찜하다.

반고비에 도달한 지금 나는 ‘운삼기칠(運三技七)’ 정도를 믿고 싶다. 하는 데까지는 해보고 나머지를 운에 맡기는 ‘운삼기칠’이 바람직한 미래의 삶의 태도가 아닐까. ‘운칠기삼’을 얘기하기에는 나는 아직 젊다고 생각하고 싶다. 1만 시간을 채우려면 10년 정도 걸리는데, 이제 새로 시작하더라도 아직 그 시간이 충분하다고 나는 믿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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