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정말 집에 가야 해요.” “자기야, 밖에 나갔다가는 꽁꽁 얼어 죽을 거예요.”
1944년 발표된 스윙재즈 듀엣곡 <Baby,
It’s Cold Outside>는 추운 날씨를 핑계로 마음에 드는 여성을 밤새 자기 집에 잡아두려는 남자에 관한 이야기다. 아직도 미국에서 크리스마스 시즌이 되면 어김없이 라디오에서 흘러나올 정도로 많은 사람에게 사랑받는 곡이기도 하다. 영화 <겨울왕국>의 주제곡
<렛 잇 고(Let It Go)>를 불러 국내에서도 친숙한 이디나 멘젤, 최고 인기의 팝스타 레이디 가가는 이 곡의 리메이크 버전을 불렀다.
그렇게 널리 사랑받았던 이 곡을 두고 최근 미국에서 논쟁이 벌어졌다. 인기 팝스타 존 레전드가 켈리 클락슨과 함께 부른 리메이크 버전의 가사를 바꾸면서다.
존 레전드의 지난해 크리스마스 시즌 투어 공연 포스터 사진.
레전드는 일부 가사가 데이트 성폭행을 연상시킨다고 보고 여성의 성적 자기결정권을 최대한 존중하는 내용으로 바꿨다. 원곡 가사에서 여성은 밤을 새우고 가면 가족들이 걱정할 거라고 말하며 수차례 거절 의사를 밝힌다. “술에 뭘 탄 거냐”고 묻는 구절도 있다. 바뀐 가사에서 여성은 가족 대신 친구들이 어떻게 생각할지 묻고, 남성은 “그들은 분명히 기뻐할 것”이라고 답한다. 이에 여성은 “한 잔 더 마시면 무슨 일이 벌어지는 거죠”라고 묻고, 남성은 “당신 몸이잖아요. 당신 결정에 달렸죠”라고 말한다.
레전드의 개사 결정은 성폭력 피해 사실 고발 운동인 ‘미투(Me Too·나도 고발한다)운동’의 여파를 의식한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운동의 시발점이 된 미국 영화계는 물론 세계 각국 문화계 전반에서 성폭력 피해 고발이 잇따랐다. 이런 흐름을 레전드가 무시하기는 어려웠을 것이란 해석은 충분히 가능하다. 실제로 지난해 11월 미국 오하이오주 클리블랜드 지역 라디오방송인 WDOK는 크리스마스 시즌에 <Baby, It’s Cold Outside>를 틀지 않겠다고 밝혔다. <뉴욕타임스>는 레전드가 이번에 노랫말을 바꾸면서 여배우 겸 작가 나타샤 로스웰의 조언을 따랐다고 보도했다.
하지만 정치적 올바름에 집착한 나머지 원곡자의 명예를 실추시켰다는 비난도 거세다. 이 곡을 부른 가수 중 한 명인 딘 마틴의 딸 디나 마틴은 오히려 원곡보다 더욱 성적인 가사를 만들었다고 지적하면서 “터무니없는 짓”이라고 말했다. 극우 매체 <브레이트바트>는 “원곡의 프로초이스(여성의 선택적 낙태권 찬성) 버전”이라고 비꼬았다.
이미 고인이 된 원곡 작곡가 프랭크 레서의 딸 수잔 레서는 지난해 12월 NBC와의 인터뷰에서 “아버지는 라디오 방송국들이 노랫말 때문에 자기 곡을 방송하지 않는다는 걸 하늘에서 알게 된다면 분노하실 것이다”라고 말했다. 그는 “아버지는 어머니와 함께 파티에서 부르려고 이 곡을 만들었을 뿐”이라면서 “술에 뭔 탄 거냐는 가사는 농담일 뿐, 약을 탔다고 의심하는 게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당시 캘리포니아주 샌프란시스코 지역 라디오방송 KOIT는 이 곡의 방송금지 여부를 청취자들 상대로 설문조사를 벌였고, 반대 비율이 77%에 달하자 다시 크리스마스 시즌 방송 레퍼토리에 복귀시키겠다고 발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