웃음기가 사라졌다. 화면 속 공연장은 고요했다. 관객들은 온전히 한 사내의 음성에만 집중했다. 5년 전 불의의 사고로 세상을 떠난 고 신해철의 목소리였다. 지난 10월 26일 방송된 MBC <놀면 뭐하니>의 한 장면이다.
MBC
방송 내내 흐르는 눈물을 멈출 수 없었다. 영화나 드라마를 볼 때도 좀처럼 울지 않는 편인데, 예능 프로그램을 보며 울다니. 참으로 낯선 경험이었다. 아마 그건 신해철에 대한 부채의식 때문일지도 모른다. 초등학교 5학년이던 1991년 <슬픈 표정 하지 말아요>가 수록된 1집 앨범은 내가 산 최초의 카세트테이프다.
1집과 2집을 비롯, 넥스트와 라이브 앨범까지 신해철의 이름으로 발매한 카세트테이프를 모두 샀다. 사춘기 시절의 추억이 밴 보물들은 40세가 넘은 지금까지 보관 중이다.
2014년 9월 20일, 서울 연세대 대강당에서 열린 ‘신해철 & 넥스트 유나이티드 콘서트’를 관람했다. 신해철은 공연에 앞서 같은 해 6월 ‘리부트 마이셀프 파트 1(Reboot Myself Part 1)’을 발표했다. 수록곡인 <아따(A.D.D.A)>는 무려 1000개 이상의 녹음 트랙에 자신의 보이스를 중복 녹음해 만든 원 맨 아카펠라 곡이다. 시대를 훌쩍 앞서나간 음악이었지만 시장의 반응은 신통치 않았다. 그래서일까. 콘서트장에 기자는 나뿐이었다. 그날 따라 가요계 곳곳에서 여러 가수들의 공연이 열린 영향도 컸다. 그렇게 신해철의 마지막 공연을 지켜본 유일한 기자로서 그의 갑작스런 죽음은 무거운 빚을 안겼다. 왜 더 반짝이는 기사로 그의 깊이 있는 음악과 공연을 전하지 못했을까.
<놀면 뭐하니>를 보면서 흐르는 눈물과 별개로 묘한 안도감이 느껴졌다. 방송을 통해 공개된 ‘스타맨’ 제작과정에서 고인에게 부채의식을 가진 이가 상당히 많다는 사실을 알게 됐기 때문이다.
제작진이 ‘스타맨’ 프로젝트를 처음 맡겼던 가수 이승환은 팬들이 제안한 ‘마태승 콘서트’(마왕 신해철, 서태지, 이승환)를 너무 늦게 수락했다며 무거운 표정을 지었다. MBC <복면가왕>에서 신해철의 노래를 종종 불렀던 하현우도 “마음속 우상이던 신해철에게 데뷔 앨범을 전하고 싶었는데 불의의 사고로 끝내 앨범을 전달하지 못했다”고 했다. <놀면 뭐하니>의 주인공 유재석은 “힘든 시절 ‘날아라 병아리’를 듣고 위로를 받았다. 언젠가 날아오를 그날을 꿈꾸던 내게 그의 노래는 친구가 되어줬다”며 “언젠가 다음 세상에도 내 친구로 태어나줘. 내 마음속 영원한 마왕. 그대에게”라고 소개했다. 이렇게 그를 그리워했던 모든 이들의 간절함과 부채의식이 잠자는 하드디스크 속에서 발견된 고인의 내레이션과 합쳐져 ‘스타맨’이 완성됐다. 이들의 연대는 한편의 멋진 스포츠 경기이자 예술작품이었다.
신해철은 멋있는 말을 많이 남긴 가수였다. 나는 그가 했던 수많은 말들 중 마지막 콘서트에서 했던 말이 유독 기억에 남는다. “남자애들의 어릴 적 꿈이 뭔지 알아. 어릴 때나 지금이나 로봇을 타고 하늘을 나는 거야.”
“애아범이 돼도 철이 들질 않아 전혀”(<아따> 가사)라고 노래했던 그는 지금쯤 변신 로봇을 타며 마음껏 하늘 여행을 하지 않을까. 10월이 되면 신해철의 노래가 듣고 싶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