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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자체보다 더 소중한 북클럽

입력 2019.10.25 17:51

  • 구정은 국제부 선임기자

10월 23일(현지시간) 미국 abc방송이 캘리포니아주 롱비치의 어떤 독서 모임을 소개했다. 어떤 목적을 가지고 모이기 시작했지만 나중에는 모임 자체가 만남의 목적이 돼버리는 일은 흔하다. 하지만 이런 북클럽은 흔치 않다. 동네 여성들 모임으로 시작해 자그마치 60년 넘게 함께 책을 읽어왔기 때문이다. 모임의 역사가 이렇게 흐르는 사이에 회원들은 이미 환갑을 훌쩍 넘어섰다. 모임을 제안한 루이즈 와일드는 지금 97세다. 1956년에 시작된 북클럽은 매주 토요일마다 여러 세대가 함께하는 ‘책과의 만남’의 장소가 됐다. 와일드는 abc의 <굿모닝 아메리카>에 출연해 “시작할 때에는 모임이 65년 뒤에도 계속될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올해 97세인 루이즈 와일드(왼쪽)와 초창기부터 북클럽을 함께해온 재니스 윌스.

올해 97세인 루이즈 와일드(왼쪽)와 초창기부터 북클럽을 함께해온 재니스 윌스.

1956년 만들어져 60여년째 모임을 이어가고 있는 미국 캘리포니아주 롱비치의 ‘에그헤즈 북클럽’ 멤버들. /에그헤즈 북클럽·abc방송 웹사이트

1956년 만들어져 60여년째 모임을 이어가고 있는 미국 캘리포니아주 롱비치의 ‘에그헤즈 북클럽’ 멤버들. /에그헤즈 북클럽·abc방송 웹사이트

와일드는 1954년 롱비치로 이사했고 거기서 다섯 친구를 사귀었다. 캘리포니아주립대 교수 부인들이었던 친구들은 독서를 좋아하고, 서로 뭘 읽는지 알고 싶어했다. 그렇게 해서 2년 뒤에 북클럽이 탄생했다. 모임의 이름은 ‘에그헤즈’. 대머리를 가리키는 속어이기도 하지만, 지식인이나 인텔리를 뜻하는 말이기도 하다. 그 이름은 1952년 대선에 민주당 후보로 나왔다가 드와이트 아이젠하워에게 패배한 애들라이 스티븐슨에게서 나왔다. 변호사·외교관 출신에 지적이고 머리숱이 없던 스티븐슨의 별명이 에그헤즈였단다.

주말 독서모임은 이들의 삶이 됐다. 멤버가 하나둘 늘어났다. 규칙은 단순했다. 장르에 상관 없이 한 명이 책을 한 권 고르면 모두 읽고 와서 토론한다. 집에서 만든 빵과 군것질거리는 덤이다. 자발적으로 모임에서 빠져나간 사람은 한 명도 없었지만 멀리 이사를 떠난 이들이 있고, 또 세월이 흐르면서 유명을 달리하는 이들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로리 윌스라는 여성은 초창기 멤버 재니스 윌스의 딸이다. 로리는 고향을 떠났다가 몇 해 전 고령의 어머니를 돌보기 위해 돌아왔고, 기력을 잃은 어머니가 더 이상 책을 읽지 못하게 된 뒤에도 어머니를 모시고 독서 모임에 나갔다. 지난해 어머니는 세상을 떠났으나 로리가 대를 이어 모임에 나가고 있다.

<로스앤젤레스(LA)타임스>의 지난 8월 보도를 보면, 롱비치에만 130개의 북클럽이 있다. 시 당국이 ‘롱비치 북클럽 프로젝트’라는 이름으로 이런 모임들을 활성화하려 하는 과정에서 확인된 숫자다. 프로젝트 팀은 20개 클럽을 골라 어떤 책을 읽는지 조사했다. 에이머 토울스의 <모스크바의 신사>를 가장 많이 읽었다. 두 번째로 꼽힌 것은 한국계 미국 작가 민진 리(이민진)의 <파친코>다. 지난 5월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이 페이스북에서 추천해 화제가 됐던 책이다. 8월에 한국을 찾은 나이지리아의 여성주의 작가 치마만다 응고지 아디치에의 <아메리카나>, 영국 작가 힐러리 맨텔의 <울프홀>, 미국인들의 고전인 하퍼 리의 <앵무새 죽이기>, 앤 패칫의 <벨칸토>, 스페인 작가 카를로스 루이스 사폰의 <바람의 그림자> 등이 뒤를 이었다.

와일드 할머니가 첫손에 꼽은 ‘기억에 남는 책’은 뭘까. 올해 맨부커상 수상자로 선정된 캐나다 여성작가 마거릿 애트우드의 <시녀 이야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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