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상할 수 없던 변화들과 마주하면, 혹시 나만 뒤처지는 게 아닐까 하는 즉각적 두려움부터 인공지능이 인간을 잉여로 만들지 않을까 하는 근본적 두려움까지 피어난다.
새로운 기계를 쓰는 건 늘 늦어 남들이 다 써서 유별나 보일 때쯤이었다. 잠깐 삐삐를 사용하다 1997년께 핸드폰을 샀고 지금은 스마트폰을 들고 있다.
2016년 3월 9일. 이세돌 9단과 알파고의 맞대결이 벌어진 서울 포시즌호텔 기자실에 많은 내외신 기자들이 몰려 대국을 지켜보고 있다. / 김정근기자
예전에 약속은 수첩에 적어놓은 시간을 어지간하면 지켜야 했다. 바꾸기가 어려워서였다. 친구 집에 전화를 걸면 부모님이 받았다. 어색한 인사를 드리면 친구는 없기 일쑤였다. 약속이 어긋나 길에서 한두 시간 기다리는 건 흔한 일이었다.
각종 메신저로 언제든지 친구와 연락을 주고받는 요즘엔 상상할 수 없는 일이다. 이제는 ‘수천 명의 친구’들과도 즉시 소통이 가능하다. 적응하기 벅찼지만 사용자로서 새로운 기술들이 그리 나빠 보이지 않았다.
“세계 최대의 택시회사인 우버는 소유하고 있는 자동차가 한 대도 없다. 세계에서 가장 인기 있는 미디어기업인 페이스북은 콘텐츠를 생산하지 않는다. 세계에서 가장 가치 있는 소매업체인 알리바바는 물품 목록이 없다. 그리고 세계 최대의 숙박업체인 에어비앤비는 부동산을 전혀 가지고 있지 않다.”
정보경제학자 앤드루 맥아피와 에릭 브린욜프슨이 <머신, 플랫폼, 크라우드: 트리플 레볼루션의 시대가 온다>(2017)에서 인용하고 있는 현재다. 대동강 물을 판 봉이 김선달의 상술이랄까. 전통적인 기업들이 일정한 장소에서 눈에 보이는 상품들을 만들어 팔았다면, 이 기업들은 온라인에 서식하며 남의 것들을 판다.
변화를 이끄는 ‘트리플 레볼루션’
근대 벽두에 증기기관 발명으로 시작된 산업혁명은 세상을 크게 변화시켰다. 그런데 언제부턴가는 디지털혁명이 많은 것을 변화시키고 있다. 어떤 것이 바뀌고 있고, 그것이 왜 중요한 걸까. <머신, 플랫폼, 크라우드>는 이에 대한 설명서다.
이 책의 서두에도 나오는 2016년 알파고와 이세돌의 바둑대결을 지켜본 기억이 생생하다. 인간을 응원하는 마음으로 이세돌을 응원했다. 내리 지던 이세돌이 네 번째 판을 이긴 게 꼭 인간에게도 아직 희망이 있다는 증거처럼 느껴졌다. 하지만 결국 이세돌이 졌다. 기계가 무서워지기 시작했다.
바둑같이 고도의 정신적 능력이 필요한 영역에서 인간이 이길 수 없다면, 도대체 인간의 비교우위는 어디서 찾을 수 있는 걸까. 오랫동안 인간의 수고를 덜어주던 기계가 이제 인간의 머리 꼭대기에 앉게 되는 건 아닐까.
맥아피와 브린욜프슨은 앞선 저작들에서 이 기계와 인간의 경쟁을 다룬 바 있다. 첫 번째 책 <기계와의 경쟁>(2012)의 부제는 ‘진화하는 기술, 사라지는 일자리, 인간의 미래는?’이다. 두 사람은 기술 발전이 가져온 ‘고용 없는 성장’에 주목해 인간의 미래를 위한 교육제도와 정책을 고민한다. 두 번째 책 <제2의 기계 시대>(2014)의 부제는 ‘인간과 기계의 공생이 시작된다’이다. 이제 중요한 건 엄청나게 발달한 기계와 어떻게 공생하는지의 문제라고 두 사람은 강조한다.
세 번째 책 <머신, 플랫폼, 크라우드>에서 맥아피와 브린욜프슨은 기계와 인간의 ‘표준적 파트너십’이 바뀌고 있다고 말한다. 인간의 마음은 많은 편견과 오류를 가지고 있고 심지어 전문가들조차 그러하다. 두 사람은 거래 예측, 가격 결정, 재판 판결 예측 같은 분야에서 전문가들이 알고리즘과의 대결에서 패배한 사례들을 열거한다. 인간이 기계의 협조로 판단과 결정을 내리는 게 아니라 기계가 데이터화한 인간의 판단을 바탕으로 결정을 내리는 게 더 나은 결과를 내놓는다는 의미다.
청림출판
이쯤에선 인간이 우위를 가질 만한 분야를 찾는 게 급해진다. 창의성을 발휘하는 데서는 여전히 인간이 우위에 있지 않을까. 맥아피와 브린욜프슨은 창의성에서의 인간의 우위에 대한 반박 사례들을 제시한다. 좌우대칭을 지키지 않은 자동차의 설계는 놀랍다. 이런 설계가 가능한 이유는 편견과 맹목성을 가지지 않은 기계가 인간이 제시할 수 없는 대안들을 내놓을 수 있기 때문이라고 두 사람은 설명한다.
하지만 다행히도 맥아피와 브린욜프슨은 인간이 결국 모든 분야에서 기계에 밀려날 것이라는 결론을 내리지는 않는다. 인간의 감정상태와 사회적 욕구를 연구하는 능력이 인간의 일로 남아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보건의료분야에서 컴퓨터에 의해 이뤄진 진단을 환자에게 전달하고 치료과정을 따르도록 하는 의료전문인의 역할은 여전히 사람이 주도적으로 할 수 있는 일이라는 것이다.
많은 것들을 변화시킨 디지털혁명
맥아피와 브린욜프슨은 이러한 변화를 이끄는 ‘트리플 레볼루션’으로 ‘기계, 플랫폼, 군중’을 제시한다. 두 사람에 따르면 1990년대 중반 컴퓨터를 비롯한 디지털 기술들의 급성장이 생산성을 빠르게 증가시키는 제2의 ‘기계’ 시대가 시작됐다. ‘플랫폼’은 ‘접근, 재생산, 유통의 한계비용이 거의 0인 점이 특징인 디지털 환경’이다. 기존 상품과 서비스는 무료, 완전성, 즉시성을 갖추지 않았기 때문에 경쟁에서 불리할 수밖에 없다. 다양성과 독립성을 가진 ‘군중’은 다양한 분야에서 전문가들의 핵심역량을 넘고 있다. 위키피디아와 리눅스처럼 이 군중들을 조직할 수만 있다면 그 능력은 어마어마할 것이라는 게 두 사람의 주장이다.
맥아피와 브린욜프슨은 컴퓨터가 인간을 능가하는 날을 걱정하기보다 마음과 기계의 협력을 통해 더 나은 결과를 만들어내는 데 주력해야 한다고 결론짓는다. “제2의 기계 시대에 성공하는 기업들은 현재 대부분의 기업이 하는 방식과 전혀 다른 방식으로 마음과 기계, 생산물과 플랫폼, 핵심역량과 군중을 결합하는 기업일 것”이라고 두 사람은 단호하게 전망한다.
이런 종류의 책을 찾아 읽게 하는 건 두려움이다. 상상할 수 없던 변화들과 마주하면, 혹시 나만 뒤처지는 게 아닐까 하는 즉각적 두려움부터 인공지능이 인간을 잉여로 만들지 않을까 하는 근본적 두려움까지 피어난다.
“‘기술이 우리에게 무엇을 할까’라고 묻지 말고, ‘우리는 기술을 갖고 무엇을 하고 싶을까’라고 물어야 한다.” 맥아피와 브린욜프슨은 질문을 바꾸라고 말한다. 기술이 무엇을 바꿀지를 두려워하지 말고, 기술을 어떻게 쓸지를 주체적으로 결정하자는 말이다.
결국 기술을 어떻게 사용할지는 그 사회의 선택이다. 그렇다면 그 선택은 더 나은 미래를 가져올 수 있을까. 우리의 미래는 유토피아일까, 아니면 디스토피아일까. 질문이 꼬리를 문다. 머리가 아파온다.
‘슬로 어답터’로 살아온 내가 ‘얼리 어답터’가 되기는 어려울 것이다. 하지만 늦게라도 찬찬히 변화의 결을 헤아려보는 것은 그것대로의 의미가 있다. 오십에 도달한 현재, 그렇다면 변화를 두려워하지 않는 ‘브레이브(brave) 어답터’가 되자고 결심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