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솜털이 떨어질 때 벚꽃도 지겠지/ 나는 져버릴 꽃이 되긴 싫어 I’m the tree.”
Mnet
Mnet <퀸덤>에서 보여준 AOA 지민의 ‘나무’ 선언은 소비되지만 성장하지 못하는 한국 걸그룹 시장에 신선한 경종을 울렸다. 당초 AOA는 같은 소속사 선배인 FT아일랜드와 씨엔블루를 잇는 여성밴드로 데뷔했지만 별다른 재미를 보지 못하자 댄스 위주의 걸그룹으로 방향을 선회했다. 섹시 콘셉트의 댄스곡이 인기를 끌었지만 AOA의 이름을 널리 알린 것은 단연 멤버 설현의 뒤태를 찍은 한 이동통신사의 등신대다. 예쁘장한 외모와 늘씬한 몸매, 몸에 착 달라붙는 의상과 아크로바틱한 댄스. 그리고 연기와 CF로 그룹의 이름을 알린 멤버까지. AOA는 한국 걸그룹의 전형이었다.
이는 비단 AOA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1997년 SES가 데뷔한 후 22년 동안 셀 수 없이 많은 걸그룹이 피고 졌다. 1세대인 SES와 핑클을 비롯해 2세대로 꼽히는 소녀시대, 투애니원, 카라, 원더걸스, 그리고 2.5세대로 분류되는 티아라, 시크릿, 씨스타, 포미닛, 미쓰에이 등이 화면 속의 예쁘장한 모습만 박제된 채 사라져갔다. 보이그룹이 자체 프로듀싱 능력을 지니며 진화하는 것과 달리 외모와 몸매, 보컬과 댄스실력 위주로 트레이닝 받는 걸그룹은 성장의 기회조차 받지 못했다.
<퀸덤>의 신정수 Mnet 국장과 조욱형 PD의 기획의도는 명확했다. 소비되며 사라지기 일쑤인 걸그룹에게 아티스트의 생명을 불어넣어주자는 것. 제작진이 1등 특전으로 내세운 1억원 상당의 컴백무대는 방탄소년단이나 엑소, 세븐틴 등 아티스트 반열에 오른 당대 최고의 보이그룹들에게만 주어졌던 무대다. MBC에서 한솥밥을 먹었던 두 사람은 이를 위해 <나는 가수다>의 걸그룹 버전을 떠올렸다. <나는 가수다>를 연출했던 신정수 국장은 당시 김영희 PD가 이소라를 가장 먼저 섭외한 뒤 다른 가수들을 섭외한 것을 기억하고 가장 먼저 마마무에게 러브콜을 보냈다.
신 국장의 눈은 정확했다. 2014년 데뷔한 마마무는 신인시절 트와이스와 양대산맥을 이뤘고, 트와이스가 한류시장으로 나선 뒤에도 자신들만의 정체성을 확립한 색깔 있는 걸그룹이다. 이들이 첫 무대에서 선택한 <데칼코마니>는 밝고 명랑한 ‘비글미’ 넘치는 걸그룹으로 인식되던 마마무가 당당하게 자신의 목소리를 내는 여성 보컬그룹으로 자리잡게 한 곡이다. 자신의 대표곡을 부르는 1차 경연대회에서 마마무가 1등을 차지한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결과다.
마마무의 무게감이 컸지만 <퀸덤>을 보는 재미는 여타 걸그룹들의 예상치 못한 도전이다. 앞선 경연에서 꼴찌를 한 오마이걸은 러블리즈의 <데스티니>를 국악 버전으로 편곡해 시선몰이에 성공했다. 홀로서기에 나선 박봄은 까마득한 후배들과 함께 경연을 치러야 하는 부담을 떨치기 위해 분투하는 모습이 역력했다. 러블리즈 역시 심기일전한 모습을 기대케 한다. TV 속 걸그룹이 스스로 자신들의 목소리를 내기 시작할 때, 이들의 성장 스토리가 펼쳐진다. 이미 <퀸덤> 속 걸그룹들은 프로그램명처럼 ‘여왕의 지위’를 획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