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마다 이맘 때면 포털사이트에는 지상파 채널의 파일럿 예능 프로그램에 대한 홍보성 기사가 대대적으로 보도되곤 한다. 명절은 방송사들의 입장에서 일종의 ‘테스트베드’다. MBC <복면가왕>이나 <마이 리틀 텔레비전>, KBS 2TV <슈퍼맨이 돌아왔다>, SBS <불타는 청춘>도 파일럿 프로그램으로 시청자들을 만난 뒤 지금은 각 채널을 대표하는 예능 프로그램으로 자리 잡았다. 쉽게 말해 시청자들과 파일럿 프로그램의 ‘소개팅’을 명절이 주선하는 셈이다.
SBS
하지만 올해는 파일럿 프로그램 제작 소식이 가뭄에 콩 나듯 한다. SBS가 외식사업가 백종원씨를 내세운 휴게소 예능 프로그램 <만남의 광장>을 선보인다는 소식 외에는 딱히 힘을 준 프로그램을 보기 드물다. 파일럿뿐만 아니라 장기자랑이나 퀴즈처럼 명절 때마다 흔히 접할 수 있는 다양한 형식의 특집 프로그램도 <아이돌 육상선수권대회>처럼 시청률이 보장되는 프로그램을 제외하면 예년보다 확연히 줄어든 상태다.
지상파 채널의 파일럿 프로그램 다이어트의 주원인은 단언컨대 ‘돈’이다. 이미 KBS와 MBC는 대규모 적자로 비상경영을 선언했고 비용 대비 효율성이 떨어지는 월화드라마 제작을 잠정 중단했다. 시청률이나 경영면에서 상대적으로 사정이 양호한 SBS도 파일럿 프로그램 다이어트 대열에 살짝 발을 담근 상태다.
케이블 채널과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시청이 일상화되면서 굳이 특정 기간을 활용하지 않더라도 언제든지 파일럿 프로그램을 선보이는 게 일상화된 것도 명절 파일럿 프로그램 다이어트의 또 다른 원인이다. 실제로 MBC는 최근 <편애중계>, <공부가 머니>, <오래 봐도 예쁘다> 등을 선보였고 9월 5일 배우 한예슬이 출연하는 <언니네 쌀롱>을 방송한다. 드라마보다 저비용인 예능 프로그램을 상시로 제작해 월화드라마의 공백을 메우겠다는 심산이다.
방송가에서는 방송도 ‘생물(生物)’이라고 한다. 비록 전파와 화면을 통하지만 프로그램도 시청자와 소통하고 호흡하며 진화하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파일럿 프로그램 다이어트 및 특집 프로그램의 실종은 일종의 시대적 변화의 흐름이라고 볼 수 있다. 하지만 명절마다 접할 수 있던 재기 발랄한 아이디어의 프로그램이 줄어든다는 것은 어쩐지 서운하다. 지금은 다소 식상해졌지만 <마이 리틀 텔레비전>은 파일럿 방송 당시 신선한 충격이었고 백종원이란 예능계의 거물을 낳았다.
<슈퍼맨이 돌아왔다>의 추사랑은 ‘국민조카’로 사랑받았다. 좀처럼 방송에 설 기회가 없던 아이돌 그룹 멤버들이나 신인들도 명절 파일럿 프로그램을 통해 새로운 스타로 자리잡곤 했다.
올해 특선영화와 재방송으로 채워질 편성표를 떠올리면 그냥 OTT채널에서 최신 미드나 보는 게 낫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혹시 새로운 예능을 보길 원한다면 JTBC와 tvN으로 채널을 돌리길 권한다. JTBC는 <막 나가는 뉴스쇼>, <고스톱>, <괴팍한 5형제>를, tvN은 <브이원>, <아이앰 김치>를 파일럿으로 내보낸다.